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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빙에 LED 조립까지…삼성·현대차·두산 이유있는 '로봇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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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삼성전자·현대차 등 대기업들의 로봇 투자에 가속도가 붙었다. 조 단위 투자는 물론, 기업공개(IPO)를 준비하는 곳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특히, 제조·물류·서비스 산업이 ‘로봇 굴기’의 주 무대다.

지난해 국내 로봇 벤처 레인보우로보틱스 투자(870억원)로 화제를 모은 삼성전자는 이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4에서 레인보우로보틱스의 로봇 팔을 전시했다. 마이크로LED 제조 공정에 투입된 로봇 팔이 제품 품질 검사를 하는 과정이 일반인에 공개됐다. 특히,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이 CES 전시회 중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생성 AI(인공지능)을 적용한 로봇과 가전 사업을 적극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혀 삼성의 로봇 행보에 다시 관심이 집중됐다. 일각에선 삼성전자가 연내에 콜옵션(주식 매수 권리)을 행사해 레인보우 지분을 추가 확보할 가능성이 크다고도 본다. 삼성전자는 현재 2대 주주(지분 14.83%)다. 이정호 레인보우로보틱스 대표는 “서빙·조리 로봇이 삼성웰스토리 등에서 쓰인 데 이어, 향후 반도체·가전 제조 공정의 자동화 추진 방안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 1년 새 이 회사 주가는 7배 상승했다.

 CES 2024 삼성전자 부스에 레인보우 로보틱스 로봇팔이 전시돼 있다. 마이크로LED 제조 공정에 투입돼 제품 검사를 담당하는 모습이다.

CES 2024 삼성전자 부스에 레인보우 로보틱스 로봇팔이 전시돼 있다. 마이크로LED 제조 공정에 투입돼 제품 검사를 담당하는 모습이다.

로봇에 대한 과감한 투자로 치면 현대차그룹이 더 먼저다. 현대차그룹은 2021년 6월 소프트뱅크 그룹으로부터 미국의 로봇 업체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80%를 약 9960억원에 사들였다. 당시 인수에는 현대차(지분 30%), 현대모비스(20%), 현대글로비스(10%)가 참여했고, 정의선 회장도 개인 투자로 지분 20%를 샀다. 당시 현대차그룹은 물류·제조·건설 현장에서 로봇 수요가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지난 3년 새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로봇은 전 세계 산업 현장으로 확산됐다. 로봇개로 유명한 4족 보행 ‘스폿’과 물류로봇 ‘스트레치’는 DHL을 비롯해 GAP와 H&M 등 산업 현장에 배치돼 상업화에 성공했다. 특히 DHL서플라이체인은 지난해 1월부터 스트레치를 의류 물품 하역장에 도입해 업무 효율성이 전보다 40% 향상됐다고 밝혔다. 잇따른 수주로 적자 상태이던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실적이 개선되며, 상장 계획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지분 인수 계약 당시 현대차그룹은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미국 증시 상장 시점을 2025년으로 정한 바 있다.

두산그룹은 지난해 로봇 계열사의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에 성공했다. ‘협동 로봇’ 시장 1위인 두산로보틱스다. 2015년 설립 이후 산업 현장에서 인간 작업자를 돕는 협동로봇을 주로 생산했다. 기계 산업에 뿌리가 깊은 그룹의 영향이 컸다. 이 회사 지분 68.2%를 보유한 ㈜두산 관계자는 “그룹이 주목하는 신사업인 만큼 로봇 산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M&A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기업들의 ‘로봇 러시’에는 제조·물류·서비스업에서 로봇 수요가 급증할 것이란 계산이 깔려 있다. 공장에서 인간 노동자는 3교대로 근무해야 하지만, 로봇은 24시간 쉬지 않고 일할 수 있다. 물류 현장에서도 로봇은 이미 필수가 된지 오래다. 국제로봇연맹(IFR)은 로봇시장이 연평균 13% 성장해 2030년이면 831억달러(약11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로보틱스 비전 발표를 위해 로봇개 스팟과 함께 무대 위로 오르고 있다. 사진 현대차그룹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로보틱스 비전 발표를 위해 로봇개 스팟과 함께 무대 위로 오르고 있다. 사진 현대차그룹

서비스 로봇 시장에선 LG전자와 한화그룹이 적극적이다. LG전자는 공항 등에 배치된 청소·안내 로봇 시장에 일찌감치 진출했다. 최근에는 태국 등 동남아 6개국 골프장·리조트·호텔 진출 계획도 발표했다. 한화로보틱스도 그룹 내 호텔, 백화점, 외식 사업에 서비스 로봇을 접목할 계획이다. 최근 경영 보폭을 넓히고 있는 김동선 한화 부사장이 총괄한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특히, 고령화 시대에는 인간을 위한 반려 서비스 로봇의 수요가 커질 전망이다. 이번 CES 2024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나란히 집사 역할을 하는 가정용 반려 로봇을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양승윤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결국 노동력 부족이 심각한 분야에서 로봇 수용성이 높을 수 밖에 없다고 본다며 제조, 물류, 외식 뿐 아니라 농업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우리 생활 전 분야에 로봇이 함께하는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테슬라에서 개발 한 휴머노이드 로봇 '테슬라봇'이 전시되어 있다. 김종호 기자

테슬라에서 개발 한 휴머노이드 로봇 '테슬라봇'이 전시되어 있다. 김종호 기자

전문가들은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혁신적인 로봇 기술 기업이 계속 배출되어야 대기업의 자본 투자로 규모있는 성장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정구민 국민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로봇 산업 생태계 조성이 가장 중요한 만큼, 부품, 소프트웨어 등 기초 기술에 대한 투자와 산업 적용 확대를 위한 안전기준 및 규제 완화 노력이 뒷받침 돼야 한다”고 말했다.

마침 정부도 지난 16일 2030년까지 민관이 3조원 이상 투자해 로봇 100만대를 보급하겠다는 로봇 산업 진흥 계획을 발표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21년 국내 로봇 산업은 5조6000억원 규모인데, 부품 국산화율은 44% 수준이다. 정부의 목표치인 80%에 한참 못 미친다. 부품·소프트웨어 등 기술 경쟁력은 일본·독일 등의 3분의 2 수준이다. 특히, 액추에이터, 센서, 감속기 등 핵심 부품의 해외 의존도가 57%로 높다. 국내 수요가 제한적이어서 부품 업체들이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로봇 산업 정책의 연속성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여준구 한국로봇융합원구장은 “전문성과 현장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기구 등을 활용해 로봇 산업을 꾸준히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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