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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대통령실 사퇴요구...국민 보고 나선 길, 할 일 하겠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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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4년 신년 인사회에서 한동훈(오른쪽)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인사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4년 신년 인사회에서 한동훈(오른쪽)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인사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을 포함한 이른바 ‘김건희 리스크’ 대응과 총선 공천 등을 두고 여권이 대혼란에 빠졌다. 용산 대통령실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정면 충돌하는 모양새다.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에 따르면 21일 오전 한동훈 위원장 등 여당 지도부와 대통령실 이관섭 비서실장이 비공개 회동을 했다. 한 위원장이 최근 김 여사 명품백 수수 논란에 “아쉬운 부분 있다” “국민 눈높이”라고 말하면서 여권 내 난기류가 형성되자 이를 수습하기 위한 자리였다. 대통령실에선 한 위원장의 최근 공천에 대해서도 우려를 전달했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이날 회동을 두고 '여권에서 한 위원장 사퇴 요구가 나왔다'라는 보도가 오후 늦게 나왔다. 이에 한 위원장은 보도 내용을 부인하지 않고, 대신 “국민 보고 나선 길, 할 일 하겠다”는 입장을 기자단에 공지했다. 그러면서 사퇴설에 대해선 “(사퇴를 요구한 건) 여권 주류가 아니라 대통령실”이라고 강조했다.

한 위원장의 입장이 나오자 대통령실도 즉각 “비대위원장 거취 문제는 용산이 관여할 일이 아니다”라고 대응했다. 다만 “이른바 논란이 되는 ‘기대와 신뢰’ 철회 관련해선 이 문제는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 공천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이날 한 언론은 ‘김경율 비대위원의 낙하산 공천 논란으로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에게 보냈던 기대와 지지를 철회했다’는 취지의 보도를 했다. 한 위원장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출한 것이다.

실제 대통령실에선 한 위원장이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서 김경율 비대위원을 서울 마포을 출마자로 깜짝 소개할 때부터 우려를 표명했다. 기존 당협위원장인 김성동 전 의원으로부터 강한 반발을 부르는 등 한 위원장의 ‘자객 공천’이 사천(私薦) 논란으로 번지자 “당에서 전략공천이 필요하다면 특혜 논란을 원천 차단하며 원칙과 기준을 세우고 지역 등을 선정해야 할 것”(대통령실 고위 관계자)이라고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

반면에 국민의힘에선 “김경율 비대위원이 연일 김 여사를 공격한 게 대통령실의 반발을 불렀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김 비대위원이 지난 17일 유튜브에 출연해 윤 대통령과 김 여사의 사과를 요구하며 “프랑스 혁명이 왜 일어났을까. 당시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 난잡한 사생활이 하나하나 드러나면서 감성이 폭발된 것”이라고 말한 게 대통령실과 친윤계의 강한 반발을 샀다는 것이다.

이처럼 여권은 최근 김 여사 논란을 두고 분열하는 모양새다. 명품백 수수 의혹과 관련해 한 위원장 측이 "사과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펴는 반면에 친윤계에선 "사과해선 안된다"며 한 위원장을 직·간접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김 여사 사과 불가론’에 불을 지핀 건 부산 수영에 출마하려는 장예찬 전 청년최고위원이었다. 그는 지난 20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김 여사는 사기 몰카 취재에 당한 피해자고,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이용당한 파렴치한 범죄 피해자”라며 “왜 피해자에게 사과하라고 하느냐. 사과는 가해자가 해야 한다”고 했다.

21일엔 국민의힘 의원 단체 채팅방에 지난 대선 당시 윤 대통령을 수행한 이용 의원이 이날 ‘윤 대통령의 한 위원장 지지 철회’ 취지의 언론 보도를 공유했다. 전날에도 이 의원은 ‘사과해서는 안 된다’는 글을 올렸다. 단체 채팅방 상황과 관련해 영남권 의원은 “이 의원 글이 올라오자 몇몇 의원이 동조하는 글을 올렸다”며 “김 여사를 옹호하는 글 외에 이견은 공개적으로 표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에 대한 공개 반발로 읽히는 이런 움직임은 이례적이다. 게다가 이날은 현역 의원 컷오프(공천 원천 배제)를 결정하는 여론조사를 시작하기 하루 전이라 4·10 총선에 출마하려는 예비 후보자들이 한 위원장에게 대놓고 반기를 들기는 쉽지 않은 시기였다.

친윤계가 한 위원장을 향해 각을 세운 건 김 여사 논란에 대한 태도가 미묘하게 바뀐 뒤부터다. 한 위원장은 취임 전엔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해 “정치 공작”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지난 18일 오후 “기본적으론 함정 몰카이고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라면서도 “전후 과정에서 분명히 아쉬운 점이 있고 국민이 걱정하실 만한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와 동시에 한 위원장의 이른바 ‘자객 공천’에 대한 불만도 국민의힘에서 커지고 있다. 앞서 한 위원장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 지역구인 인천 계양을에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을,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 지역구인 서울 마포을에 김경율 비대위원을 내세운다고 공표했다. 수도권 의원은 “현역 의원 반발을 한 위원장이 부추긴 꼴”이라고 말했다.

총선을 80일가량 남겨두고 터져나온 혼란상에 대해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실과 한 위원장이 갈등을 봉합하지 않고 문제를 더 키우면 여권이 모두 공멸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 혼란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지역별 의원 모임도 열린다. 경북 의원들은 송언석 의원 주도로 22일 오후 긴급 회의를 열어 의견을 모은다. 비주류인 유경준 의원은 21일 밤 페이스북에 지난해 6월 지방선거 공천 과정을 거론하며 “국민을 보고 나선 길, 할 일 하면 된다"며 한 위원장을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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