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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컷칼럼

‘망천’소리 들어 마땅한 민주당 공천 난맥상

중앙일보

입력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요즘 ‘개딸’(강성 이재명 지지층)들 문자 폭탄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16일 아침 방송 인터뷰에서 “같이 자냐” 등 성희롱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에 대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당의 현실을 정면 비판했기 때문이다. 박 의원은 “이재명 대표가 심각하게 판단해야 하는데, 방치하는 양 보인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면 즉각 조치했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상민·조응천·김종민·이원욱 등 쓴소리를 내온 의원들의 탈당으로 ‘친명 천지’가 된 민주당에서 거의 유일하게 터져 나온 ‘다른 목소리’였다.

비위 의혹 친명 검증위 통과 논란
쓴소리 박용진은 개딸 공세에 곤욕
이대로면 ‘야당 심판론’ 터질 수도

이게 먹혔는지 현 부원장은 그날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전날까지 “피해자와 합의 중”이라면서 출마 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그였다. 그러나 피해자 이름을 적은 합의문 초안 공개로 2차 가해 논란까지 불거지며 여론이 악화한 가운데, 박 의원이 “한동훈이었다면”이라며 이 대표의 아킬레스건을 직격하자 뜻을 접은 것으로 보인다.

 “당이 현 부위원장 감찰을 개시한 게 지난주 초인데 엿새가 지나도록 결론이 안 나오는 거다. 복잡한 사안이 아닌데도 긁어 부스럼 만든 것 아니냐. (친명 좌장) 정성호 의원도 컷오프 대상이라 했지 않나. 그래서 한마디 했는데 결과가 있었다. 당에 상식이 살아있다고 본다.”

 박 의원 얘기다. 맞다. 그런데 왜 현역 의원이 목소리를 낸 뒤에야 상식이 실현되는지 의문이다. 그제 활동을 끝낸 민주당 선출직공직자 검증위원회의 검증 결과도 상식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다. 뇌물 혐의로 재판 중인 노웅래 의원, 울산시장 선거개입 혐의로 1심 유죄 판결을 받은 황운하 의원, ‘미투’ 파문이 불거졌던 정봉주 민주당 교육연수원장 등이 죄다 적격 판정을 받았다.

 검증위는 시장 재직 시절 기혼녀와의 불륜 의혹이 논란이 돼온  곽상욱 전 오산시장에 대해서도 결정을 내리지 않고 공천관리위원회로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청와대를 포함해 청와대에 장기 재직한 전직 간부 A씨는 “배우자 B씨와 곽 전 시장의 불륜으로 가정이 파탄 났다”는 탄원서와 B씨의 부정행위를 인정한 법원 판결문을 이 대표에게 보냈다고 한다. 곽 전 시장은 2019년 국민의힘이 B씨의 진술을 확보하자 보도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으나, 수원지법은 “(진술) 녹음 파일엔 수년간 곽 시장과 여성 간 있던 일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진술돼있다. 현직 시장의 불륜 의혹은 공적 관심 사안”이라며 기각했다. 이에 대해 곽 전 시장은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불륜설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했다. 그는 “불륜은 없었다”는 요지로 B씨가 당에 보낸 탄원서도 공개했다.

 진실 여부를 떠나,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논란에 판단을 유보하고 공관위에 공을 넘긴 검증위의 행태부터 검증 대상감이다. 곽 전 시장은 이 대표의 경기지사 시절 경기도 시장 군수협의회 회장을 맡아 도정을 뒷받침하는 등 친명계로 분류된다. “친명이라 검증위가 눈치 본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 외에도 공천 잡음이 난 인사들은 상당수가 친명계다. 검증위는 뇌물 혐의로 유죄 판결받은 뒤 사면 복권된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도 부적격으로 판정했는데, 그의 지역구(동작갑) 현역은 검증위원장인 친명 김병기 의원이다. 역시 동작갑 출마를 준비해온 이창우 전 동작구청장도 검증위의 부적격 판정을 당했다. 김 부총장의 유력 경쟁자 2명이 연달아 부적격 판정을 당했으니 ‘선수가 선수를 쳐낸 것’ ‘셀프 단수 공천’이란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이런 조치들에 대해 “당헌·당규에 벗어나지 않았다”고 해명하지만, 유권자가 납득할 수 있겠나. 선출직 공직자는 남다른 도덕성이 요구된다. 뇌물·성비위는 혐의·의혹만으로도 자격에 흠결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유무죄를 따질 여지가 있다지만 상식적 잣대로 문제가 있다면 조치하는 게 공당의 도리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 민주당 사무총장을 맡았던 안규백 의원은 불륜 논란이 불거진 친문 후보가 찾아와 읍소했지만 “사실 여부 이전에 논란만으로도 일벌백계 감”이라며 컷오프했다. 이런 결기가 기본 아닌가.

 여당이 아무리 인기가 없더라도 ‘망천’이란 소리까지 듣는 ‘친명 공천’ 잡음을 민주당이 잠재우지 못하면 여당 아닌 ‘야당 심판론’이 얼마든지 대두할 수 있다. 이제 민주당의 공천을 매듭지을 역할은 공천관리위원회로 넘어갔다. 그런데 공관위 부위원장부터 친명 핵심 조정식 사무총장이니 걱정이 앞선다. “계파 배려 없다”는 임혁백 공관위원장의 다짐이 실현되려면 온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공관위의 결정 과정을 감시해야 할 듯하다.

글 = 강찬호 논설위원 그림 = 임근홍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