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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김경율과 통화 뒤 결정…이게 한동훈표 시스템공천? [현장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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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1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1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지난 17일 오전 서울 마포구의 한 행사장에서 열린 국민의힘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서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인사말 도중 김경율 비대위원을 마포을이 지역구인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맞상대로 소개하면서다. 한 위원장은 “김 위원은 진영과 무관하게 공정과 정의를 위해 평생 싸웠다”며 그를 추켜세웠다.

무대에 오른 김 위원은 “어젯밤 (한 위원장과)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고 했고, 한 위원장도 “어제 제 부탁을 김 위원이 수락하자마자 말씀드린다. 그의 마음이 변할까봐서다”라고 말했다. 비대위원장이 지도부라 할 수 있는 비대위원의 출마지를 당사자와 늦은 밤 전화로 논의한 뒤, 그 바로 다음 날 발표한 것이다. 전날(16일) 밤 당 공천관리위원회가 ‘시스템 공천’을 표방하며 경선룰을 확정·발표한 지 18시간만의 일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이 17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 행사장에서 열린 국민의힘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서 김경율 비대위원과 함께 주먹을 쥐고 있다. 뉴스1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이 17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 행사장에서 열린 국민의힘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서 김경율 비대위원과 함께 주먹을 쥐고 있다. 뉴스1

비슷한 상황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지역구인 인천 계양을에서도 벌어졌다. 지난 16일 인천시당 행사에서 한 위원장은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을 무대 위로 불러 “이 대표가 출마하는 지역이라면 정정당당하게 승부하고 싶어하는 분”이라고 소개했다. 계양을 출마를 공식화한 것인데, 당사자인 원 전 장관은 행사 후 기자들과 만나 “어제(15일) 한 위원장에게 전화로 제 뜻을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두 지역은 각각 김성동(마포을)·윤형선(계양을) 당협위원장이 출마를 준비해온 곳이다. 한 중진 의원은 “출마를 준비해온 사람이 있는데 이런 식으로 후보를 발표하는 것은 정치적 도의가 아니다”고 비판했다. “공정을 말하고는 불공정을 행한다”(김성동), “‘낙하산 공천’에 주민 반감이 커지고 있다”(윤형선)는 두 사람의 반응도 예사롭지 않다. 두 사람 모두 경선에 나서면 파열음이 커질 거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과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16일 인천 계양구 카리스 호텔에서 열린 인천시당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총선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과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16일 인천 계양구 카리스 호텔에서 열린 인천시당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총선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 우려되는 건 ‘사천(私薦)’ 논란이 불붙고 있다는 점이다.『조국흑서』저자인 김경율 위원은 2022년 5월 한 위원장의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에 여당 측 증인으로 출석해 민주당 의원을 강하게 몰아세웠다. 팔짱을 낀 채 발언해 박광온 법제사법위원장과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가 마포을에 공천될 기류에 야당은 “한동훈표 시스템 공천 도입을 발표한 지 하루 만에 한 위원장 입으로 시스템을 다운시킨 것”(권칠승 수석대변인)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국민의힘에선 최근 불공정 경선을 우려한 예비출마자가 탈당하는 일도 있었다. 지난 2일 경기 수원에서 열린 경기도당 신년인사회에서 수원병에 출마예정이던 방문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단상 앞에서 자신을 소개한 뒤 한 위원장과 격하게 악수했다. 8일 국회에서 열린 입당식 때 방 전 장관은 한 위원장이 입혀주는 빨간색(국민의힘 상징색) 점퍼를 입었다.

김용남 전 국민의힘 의원이 1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탈당 및 개혁신당 합류를 선언하고 눈물을 닦으며 나서고 있다.   오른쪽부터 개혁신당 이기인·허은아 공동창당위원장, 김 전 의원, 천하람 공동 창당준비위원장. 연합뉴스

김용남 전 국민의힘 의원이 1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탈당 및 개혁신당 합류를 선언하고 눈물을 닦으며 나서고 있다. 오른쪽부터 개혁신당 이기인·허은아 공동창당위원장, 김 전 의원, 천하람 공동 창당준비위원장. 연합뉴스

이런 소식을 접한 김용남 전 의원(전 수원병 당협위원장)은 12일 국민의힘을 탈당하고 개혁신당에 합류했다. 그는 중앙일보에 “공정한 경선은 불가능해 보였다”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당협위원장은 “불공정 경선 논란이 생기고, 불복한 분들이 무소속 출마하거나 개혁신당에 합류하면 우리 당 후보 당선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런데도 한 위원장은 18일 비대위 비공개회의에서 “시스템 공천은 우리 당에서 해보지 않은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익명을 원한 중진 의원은 “제대로 시작도 안 한 공천을 ‘잘했다’는 듯이 자평하는 건 난센스”라며 “공천은 종합예술인 만큼 이기는 후보를 내는 것도, 매끄럽게 과정을 일궈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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