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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게임의 룰’ 표류 총선, 다시 야합과 꼼수로 뒤덮이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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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4·10총선을 앞두고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선 보인 투표 퍼포먼스 모습. 뉴스1

4·10총선을 앞두고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선 보인 투표 퍼포먼스 모습. 뉴스1

군소 정당 “비례연합정당” 제안에 민주 “논의 가능”

위성정당 또다시 줄 이을 듯…선거구 획정도 지연

총선이 목전(D-84)인데도 비례대표 의원 선출 방식 등 ‘게임의 룰’이 표류하면서 야합과 꼼수가 다시 고개를 들 조짐이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그제 “여당과 협의가 안 이뤄지는 상황에선 현행 제도로 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BBS 라디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례대표 47석의 절반은 병립형(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으로, 나머지 절반은 현재의 준연동형으로 가는 방안을 거론했다.

기본소득당 등 야권 군소 정당은 이날 “비례연합정당을 공동 추진하자”고 민주당에 제안했다. 홍 원내대표는 “위성정당 제도를 방지할 수 없을 때 불가피한 선택지 중 하나”라며 “논의해 볼 만한 상황”이라고 화답했다. 4선 중진인 우원식 민주당 의원은 아예 “비례연합정당 제안을 지지한다”며 공개적으로 거들고 나섰다. 안 그래도 문제투성이인 선거제가 누더기로 전락할 지경이다.

준연동형은 4년 전 21대 총선 때 여당이던 민주당이 소수 정당에 문호를 넓힌다며 군소 정당과 합작해 강행 처리한 제도다. 제1 야당이던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논의에서 배제됐고, “여러분(기자)은 이해하지 못한다”(당시 심상정 정치개혁특별위원장)는 말이 나올 정도로 표와 의석 계산법이 복잡해졌다. 특히 지역구 의석이 많을수록 비례 의석이 적게 배정되도록 설계되자 비례만을 노린 정당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민주당은 더불어시민당을, 자유한국당 후신 미래통합당은 미래한국당을 각각 내세웠다. 심지어 제2 위성정당도 생겨났다. 기형적 제도가 떴다방식 정당의 온상이 됐고, 김의겸·윤미향 의원과 최강욱 전 의원 등 문제적 인사들이 국회에 입성했다.

이번에도 위성정당과 자질 미달 인사들이 활개칠 게 뻔하지만, 민주당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시간만 허비했다. 그사이 ‘위성정당 금지, 연동형 비례제 유지’를 외치던 이재명 대표는 지난해 말 돌연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 있냐”며 다시 이전의 병립형 회귀 쪽으로 방향을 바꾸기도 했다. 결국 선거가 닥쳐오자 병립형·연동형 ‘반반’ 방식이 현실적 카드라는 구실로 슬그머니 꼼수를 꾀하고 있는 국면이다. 당내에선 “비례 앞 순번은 소수 정당에 주고, 뒷 순번은 민주당 후보를 배치하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조국 전 장관 등도 같은 방식으로 민주당 우군 노릇을 하게 될 가능성 또한 열리게 된다. 정책·비전 논의는 뒷전인 의석 늘리기 야합일 뿐이다.

병립형 회귀만을 고수하는 여당도 책임이 작지 않다. 협상 지연 속에 선거구 획정도 시한을 훌쩍 넘겼다. 정치 신인에겐 극히 불리하다. 유권자의 알권리는 무시되고 예측 가능한 정치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여야는 낡은 정치를 혁신하는 방향으로 선거제·선거구 문제를 속히 매듭지어야 한다. 심판을 벼르는 민심은 정략적 셈법과 꼼수에 더는 관대할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