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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간격 30분 줄였다”…국토부도 믿는 23세 버스박사 정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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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세종시 버스 박사’로 불리는 김강산씨가 세종시 버스노선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세종시 버스 박사’로 불리는 김강산씨가 세종시 버스노선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50개가 넘는 세종시 버스 노선 정보를 깨알같이 알고 있다. 그에게 버스 번호를 대면 시·종착지와 정류장 위치, 배차 간격, 환승지가 바로 나온다. 고등학생이던 2019년부터 6년째 홀로 세종시 버스 노선을 연구해 온 덕분이다. 버스 사진이나 노선 정보를 블로그에 기록하고, 연간 버스 승차량 통계를 만들어 시청과 시의회에 제공한다. 세종시에서 ‘버스박사’로 통하는 대학생 김강산(23)씨 얘기다.

김씨 제안으로 세종시 남북을 가로지르는 991번 배차 시간이 1시간에서 30분으로 단축됐다. 세종터미널에서 멈추던 정부세종청사 방향 ‘B0’ 순환버스를 완전히 순환하도록 개선했다. 구도심인 조치원읍 내 공공자전거 ‘어울링’ 대여소와 스마트 횡단보도를 설치를 이끌어냈다. 한국교통연구원 자문회의에선 도시건설 게임을 활용한 ‘세종시 자동차 정체 시뮬레이션’을 발표해 관계자를 놀라게 했다.

한국교통대 4학년(행정학과)에 재학 중인 김씨는 일찌감치 교통 전문가로 진로를 정했다. 어릴 때부터 자동차와 기차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신발 끈 묶는 법은 1시간 넘게 배워도 끙끙댔지만, 서울 지하철 노선은 몇 번 만에 줄줄 외워서 집안 어르신께 ‘박사’ 소리를 들었다”며 “꼬마 때부터 자동차나 버스 사진을 찍고, 교통공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관련 영상을 자주 찾아봤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부산에서 살다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인 2010년 아버지 고향인 세종시 조치원읍으로 이사했다. 새 아파트가 들어서고, 버스 노선이 하나둘 뚫리는 모습이 신기했다고 한다. 세종고 2학년 때 ‘청년의 시각으로 세종을 기록하다’란 블로그를 개설해 버스 사진을 올렸다. 현재 이 블로그 게시글은 509개, 누적 방문자 수는 87만 명 정도다.

김씨는 “대학 진학을 고민하던 고2 때 어머니께서 ‘네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뭔지 고민해 봐라’고 조언해주신 게 출발이었다”며 “계획도시인 세종시 모습을 기록한다는 마음으로 블로그에 버스 사진뿐만 아니라 노선 정보, 정류장, 환승장, 주차장 위치 등을 게시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2019년 1월 세종시 홈페이지 ‘시문시답(市問市答)’ 코너에 버스 노선 문제점을 지적한 일을 시작으로 다양한 정책 제안을 해왔다. 김씨는 “당시 991번 버스는 신도시 남쪽 끝(반곡동)과 옛 연기군 북쪽 동네를 연결하는 직통 노선이었음에도 배차 시간이 1시간 정도로 길었다”며 “세종시 소정면 사람들은 이 버스를 놓치면 한참을 기다려 조치원이나 신도심을 가야 했다. 배차 시간을 단축해달라는 글을 올려 8개월 뒤엔 간격이 30분으로 줄었다”고 했다.

그는 대학진학 후에도 버스 정책 자문단으로 활약했다. 세종시 시민주권회의 건설교통분과 위원, 세종도시교통공사 시민참여위원회 청년대표, 한국교통연구원 국토교통빅데이터 자문위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교통관련 자문 등을 맡았다. 지난해까지 국토교통부 청년정책위원단 광역교통분과장을 맡아 알뜰교통카드 청년 마일리지 도입을 성사시켰다. 이는 대중교통을 타러 가는 이동 거리를 계산해 350원~650원을 되돌려 주는 제도다.

김씨는 “좋아하는 일을 찾고, 이를 기록으로 남기다 보니 어느새 세종시 교통 전문가가 된 것 같다”며 “대학원에 진학해 교통 정책을 계속 연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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