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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외고 존치 결론에도 ‘평등주의 vs 서열화’ 갈등은 계속

중앙일보

입력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정부가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와 외국어고·국제고 등을 유지하기로 결론을 냈지만, 갈등은 이어지고 있다. 이들 학교를 없애면 ‘지나친 평등주의’로 공교육이 약화한다는 찬성론과 사교육 과열·고교 서열화를 우려하는 반대론이 여전히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 선택권·자율권 줘야 사교육 의존도 낮아져”  

자사고, 외고, 국제고를 존속시키는 내용의 시행령(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된 16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에서 “지난 정부는 전문 인재 양성을 위한 외고·국제고와 다양하고 창의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자사고·자율형 공립고(자공고)를 2022년부터 폐지하기로 해서 학생·학부모의 교육 선택권을 제약했다”며 “교육부는 학생·학부모의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고 공교육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확대하기 위해 다양한 학교 유형을 유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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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7월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숭문고등학교 학부모들이 자율형사립고등학교 재지정 취소 철회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지난 2019년 7월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숭문고등학교 학부모들이 자율형사립고등학교 재지정 취소 철회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자사고·외고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한 교육계 일각에선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당연한 결정”이라며 반겼다. 서울의 한 자사고 교장은 “고교 선택권이 사라지고, 공교육이 지나치게 획일적 평등주의에 빠져버리는 바람에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상위권과 하위권 학생 모두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졌다”며 “자사고, 외고와 같은 고교가 사교육을 부추긴다고 하는데, 이는 학교에 자율권을 제대로 주지 않아서 그렇지, 오히려 학교에 자율권을 준다면 해결될 문제”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자사고 교장도 “학교 존치 결정은 환영할 일이지만, 여전히 교육과정·교사채용 등을 일반고와 크게 다르게 운영할 수가 없게 돼 있어 한계가 있다”며 “학교에서 더 공부를 시키겠다, 보충·심화학습을 한다 해도 수능과 연계된 과목은 ‘안 된다’고 하는 상황이라 답답한 구석이 있는데, 이런 부분들이 해소될 수 있다면 오히려 사교육이 줄어들 수 있다”고 했다.

“내신 부담 적어져, 쏠림 현상 나타날 수도”

반면 우수 학생의 자사고·외고 쏠림 현상으로 고교 서열화 현상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서울의 한 자사고 교사는 “그동안은 내신에 대한 부담 때문에 자사고·외고에 지원하는 학생들이 적은 경향이 있었는데, 내신 부담이 줄어든 데다가 존치까지 확정되면서 앞으로는 교육 환경과 대학 진학 실적이 좋은 우리 학교로 오려는 학생들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2028 대입제도 개편’에 따라 올해 3월 중학교 3학년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고교 진학 후 내신 평가 체제가 기존 상대평가 9등급에서 상대평가 5등급으로 완화된다. 지금까지는 상위 4%만 1등급을 받았는데, 앞으로는 상위 10%가 1등급을 받을 수 있어 내신 경쟁이 다소 완화되는 셈이다. 게다가 사회·과학 융합선택 등 일부 과목은 절대평가를 시행해 내신 부담이 더 줄어든다.

'일반고 전환 뒤엎는 교육부 규탄하는 전국 교육 시민단체 연대' 회원들이 지난해 11월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교육부의 고교서열화 존치 입법예고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일반고 전환 뒤엎는 교육부 규탄하는 전국 교육 시민단체 연대' 회원들이 지난해 11월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교육부의 고교서열화 존치 입법예고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입시업계에서도 자사고와 외고·국제고 경쟁률이 현재보다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올해 입시에서도 중3 학생 수가 전년보다 2만5213명 감소했는데 전국 자사고·외고·국제고 지원자 수는 951명 증가해 평균 경쟁률이 1.37대 1을 기록했다. 전년(1.32대 1) 대비 소폭 상승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2027학년도까지 주요 대의 정시 선발 비중이 40% 이상인데다 2028학년도 이후부터 적용되는 대입도 내신은 5등급으로 부담이 줄고 수능이 중요성이 높아져 수능 경쟁력이 있는 이들 고교의 선호도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대학정보공시에 따르면 2023학년도 서울대 입학생 3511명 중 자사고 졸업생은 604명(17.2%), 외고·국제고 졸업생은 316명(9.0%)이었다. 일반고 졸업생은 1724명(49.1%)으로 전체 신입생의 절반을 넘지 못했다.

“사교육비 늘어나고 경쟁 심화…교육 목표에 맞나”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교육계 일각에선 자사고·외고 쏠림 현상이 ‘사교육비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지난해 3월 발표한 ‘2022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보면, 일반고 진학을 희망하는 중학생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41만5000원인데, 자사고 희망 학생은 69만6000원, 외고·국제고 희망 학생은 64만2000원이었다. 일반고 진학 희망 학생보다 20만원 이상 많았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자사고·외고 등을 존치하는 게 우리 교육의 핵심 과제인 경쟁 완화에 부응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교육부가 ‘선택권’이라는 이름으로 ‘특권교육’을 조장하고 있다”며 자사고·외고 존치 철회를 요구했다. 사걱세 측은 “학생들은 높은 서열의 고교로 진입하기 위한 경쟁과 사교육에 내몰리고, 상위권 학생이 빠져나간 일반고는 부정적 여건이 가중되는 구조적 황폐화를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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