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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수순은 NLL 도발?…김정은 '바다 화약고' 콕 찍어 시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연일 전쟁 불사론을 꺼내들고 위협 수위를 높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번엔 북방한계선(NLL)을 걸고 넘어졌다. 자신의 엄포에 무게감을 더하고 남남 갈등을 유발하기 위해 남북 대치의 취약 지대를 콕 짚은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5일 최고인민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노동신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5일 최고인민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노동신문

김정은 “불법무법 NLL 허용 못해”

김정은은 지난 15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불법무법의 북방한계선을 비롯한 그 어떤 경계선도 허용될 수 없으며 대한민국이 우리의 영토, 영공, 영해를 0.001㎜라도 침범한다면 그것은 곧 전쟁도발로 간주될 것”이라고 밝혔다. 해당 발언은 북한 헌법에 영토나 영해를 명시한 조항이 없어 주권 행사영역을 정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대목에서 나왔다. 결과적으로 NLL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NLL을 넘는 구역에서도 영해 자위권 행사로 포장한 도발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최근 ‘전쟁 준비’, ‘남조선 영토 평정’ 등을 언급한 김정은으로선 특정 지역을 공략해 위협의 효과를 높일 필요도 있다. 남북의 해상 화약고로 불리는 NLL의 민감성을 현재 국면에서 한껏 활용하겠다는 의도다.

김정은 엄포 뒷받침하려는 北, NLL 논란 재점화 

실제 북한은 NLL을 놓고 수시로 시비를 걸어왔다. 이는 사실 북한이 주장하는 NLL의 태생적 허점과도 맞닿아 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을 통해 한반도엔 육상분계선이 그어진 반면 해상분계선은 합의되지 않았다. 유엔사는 정전협정의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해 서해 5도(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 북단과 북한 측에서 관할하는 옹진반도 간의 중간선을 설정해 NLL이라고 칭하고 해상분계선으로 삼았다. 사실 당시엔 한국의 우월한 해군력을 고려해 북진을 막는 목적도 담겼다.

해군 고속정이 순찰하는 모습. 연합뉴스

해군 고속정이 순찰하는 모습. 연합뉴스

북한은 NLL이 정전협정이나 국제법에 근거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선포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사실상 한국의 ‘자기제한’을 염두에 둔 선인 만큼 20년간 별다른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 70년대부터 북한은 NLL에서 무력도발을 감행하고, 영해권을 주장하는 등 입장을 바꾸기 시작했다. 급기야 1999년 서해 해상분계선에 이어 2000년대 ‘경비계선’ 등 NLL을 대체하는 선을 규정하기 이르렀다.

한국 정부의 입장은 명확하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16일 정례 브리핑에서 "NLL은 우리 장병들이 수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사수해온 실질적인 해상경계선"이라며 “어떠한 경우에도 NLL을 지키고 수호하겠다는 것은 우리 군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말했다.

유엔사가 NLL을 획정한 이후 20년간 관행으로 준수된 데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남과 북의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1953년 7월 27일자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고 했기 때문에 NLL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이번에 NLL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시사한 건 남남 갈등의 목적으로도 해석된다. NLL에 대한 입장을 미묘하게 바꿔가면서 한국 내 여론을 유리한 쪽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전례도 있다. 2018년 9·19 군사합의에서 “북방한계선(NLL) 일대에 평화수역을 조성한다”는 문장이 포함됐다는 점을 들어 당시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북방한계선 인정은 정리된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2018년 10월 국방부 당국자)고 주장했다. 대북 유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북한이 입장을 양보한 것처럼 NLL을 활용한 셈이다. 북한도 당시에는 명시적으로 반발하지 않았다. 그러다 이제와 또 ‘불법무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NLL 무력화 본격 시도…한국 여론 분열 노릴 가능성도

실제 지금처럼 남북 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NLL 논란은 한국 사회 분열의 소재로도 활용될 수 있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센터장은 “북한이 지속적으로 NLL 무력화를 언급하면서 9·19 합의 파기의 책임을 한국에 떠넘기고 국민 불안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북한은 지난 5일 서해에 해안포 사격을 가하면서 포탄을 NLL 이북 7㎞ 지점에 떨어뜨리기도 했다.

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안포 사격을 실시한 지난 5일 백령도에서 우리 군 K9 자주포가 해상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국방부

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안포 사격을 실시한 지난 5일 백령도에서 우리 군 K9 자주포가 해상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국방부

북한이 남북 관계의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기 위해 1999년 제1연평해전, 2002년 제2연평해전처럼 NLL 인근에서 무력 충돌이라는 무리수를 선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조성렬 북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는 “남북간 대규모 군사적 충돌이 벌어진다면 NLL이 유력하다”며 “NLL에서 도발이 벌어질 경우 북한은 정전협정이나 국제법 위반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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