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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강 대 강’ 일변도로만 한반도 비핵 평화 가능한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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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연말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올해 정책 방향을 밝히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 회의에서 한국을 민족이 아닌 적대관계의 교전중인 국가라고 주장했다. [사진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연말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올해 정책 방향을 밝히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 회의에서 한국을 민족이 아닌 적대관계의 교전중인 국가라고 주장했다. [사진 뉴스1]

국방부 “단호 대응” 외엔 대책 없는 외교·통일부

국정 최고책임자도 차분하게 메시지 관리해 가야

그제 대만 총통 선거에서 민주진보당(민진당)의 라이칭더(賴淸德) 후보가 승리했다. 라이 당선인은 한때 대만 독립을 추구하거나, 영어를 공용어로 추진하는 등 친미 성향의 인물이다. 중국은 그가 민진당 후보로 정해진 뒤 “배신자”로 규정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2월 ‘하나의 중국’ ‘대만과의 통일’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라이칭더의 당선으로 중국과 대만(양안) 관계의 갈등이 격화될 경우 미·중 관계는 물론 동북아의 안보 지형도 긴장 국면으로 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도다.

문제는 이런 어수선한 상황에서 북한이 중국과 밀착하며 안보 상황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다. 당장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동족이 아닌 적대적·전쟁 중인 교전국 관계”라고 선언했다. 그간 북한이 추구했던 1민족, 1국가, 2체제, 2정부 등 연방제 통일 방안은 물론, 남북이 ‘특수한 관계’라고 했던 남북기본합의서(1991년 합의)와도 배치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공통성이 있다”는 6·15 공동선언에 서명했다. 이런 ‘유훈’을 거역하고 김 위원장이 남북을 ‘교전 중인 2국가’로 규정해 영토를 평정하겠다는 건 핵무기로 한국을 공격할 수 있다는 선전포고에 가깝다. 북한 전문가인 미국의 로버트 칼린 연구원과 지그프리드 해커 교수가 “한반도 상황이 1950년 6월 초반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더 위험하다”고 평가할 정도다.

북한이 도발할 경우 ‘즉시, 강력하게, 끝까지’ 보복한다는 신원식 국방부 장관의 단호한 입장은 당연하다. 그러나 정부는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는 국민의 불안감에 유념한 상황 관리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지금처럼 대통령실을 비롯해 모든 관련 부처가 국방장관처럼 ‘강 대 강’ 목소리만 낸다면 국지 충돌이나 분쟁 가능성 역시 높아져 갈 뿐이다. 더욱이 ‘한반도 평화’를 유지·관리할 외교부와 통일부의 목소리는 요즘 전혀 들리지 않는 상황이다. 국정의 최고책임자 역시 보다 신중하고 안정적인 메시지가 필요하다. 모든 책임이 그 자리에 머무르니 한번 내뱉은 최고책임자의 거친 말은 거둬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극단의 언어’는 가장 비외교적이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대만 선거 직후 중국을 의식해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며 상황 관리에 나서지 않았는가.

보수 일각의 핵 무장론 역시 시기상조다. 우리는 비핵·평화라는 국가적 목표를 포기한 적이 없다. 침묵의 외교부는 비핵·평화를 위한 창의적 정책 유연성을 적극 발휘해야 한다. 북한이 남북을 두 국가라고 한 건 하나의 민족이라는 기존 원칙과 충돌한다는 점에서 통일부의 지혜로운 역할과 해법도 필요한 시점이다. 비핵·평화를 위해선 강력한 한·미·일 군사 공조와 확장 억제 전략의 고도화가 물론 병행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