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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인수의 미래를 묻다

우주항공청, 국민 가슴 뛰게 하는 ‘시그니처 미션’ 만들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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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전인수 NASA 제트추진연구소 우주방사선 연구센터장

전인수 NASA 제트추진연구소 우주방사선 연구센터장

한국 우주항공청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제 한국에도 전문적인 우주 개발, 탐사를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우주 시대가 왔다. 얼마 전 자체 개발한 로켓 누리호의 발사를 성공시켰으며, 궤도선인 다누리호를 이용한 달 탐사는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한국도 여러 나라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출발점에는 다다르지 않았나 싶다. 우주항공청이 일을 시작하게 되면 다른 일도 많겠지만 우주 탐사 혹은 과학이 주요 임무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주항공청에서 주도할 한국의 우주 탐사·과학의 철학과 미래는 어떤 모습이면 좋을까. 지난 수년간 여러 한국 우주과학자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23년 넘게 일하면서 많은 우주 미션에 참가해 본 필자의 경험에 따라 개인적인 생각을 세 가지 정도 적어 본다.

한국도 독자 추진 우주 시대 도래
NASA도 설립 뒤 존재 의미 논쟁
국민에 영감 주는 비전 갖추고
과학·산업 생태계 균형 이뤄야

정부·의회·국민 납득할 수 있어야

달 표면에 남겨진 인류의 첫 발자국. 닐 암스트롱과 함께 1969년 7월 인류 최초로 달에 도착한 버즈 올드린이 남긴 흔적이다. [사진 NASA]

달 표면에 남겨진 인류의 첫 발자국. 닐 암스트롱과 함께 1969년 7월 인류 최초로 달에 도착한 버즈 올드린이 남긴 흔적이다. [사진 NASA]

첫째, 한국 우주항공청의 정체성을 정의할 수 있고 국민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비전이 있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 미국의 NASA 초창기의 모습으로 돌아가 본다. NASA가 옛 소련과 냉전 중 경쟁 때문에 시작되었고 그 일환으로 케네디 대통령이 1961년 아폴로 미션을 시작한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로 NASA 존재에 대한 논쟁은 1958년 NASA의 설립 직후부터 있었다. 정부의 신생 조직이었던 NASA는 자신들이 계속 존재해야 할 이유와 정체성을 확립해야 했다. 즉 앞으로 어떻게 조직을 꾸려나가고 어떤 일들을 해야 할지 미래의 청사진을 설계해 행정부와 입법부, 그리고 막대한 세금을 내는 국민을 납득시켜야 했다. 우주 탐사와 개발로 국력을 과시하고 다른 국가보다 기술적 우위를 점하는 국가적 자긍심을 고취하는 것과 같은 정치적인 이득에 중점을 둘 것인가, 아니면 ‘전 우주에 우리는 혼자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나’와 같은 인류가 궁금해하는 과학적 호기심에 대한 지식을 쌓아 올리는 것에 이바지해야 하느냐는 이슈에 대하여 치열한 논쟁을 거쳤다. 이러한 건전하고 건설적인 논의가 한국에도 필요한 시점이다.

둘째, 우주항공청은 앞으로 민간이 주도하는 ‘뉴 스페이스’(New Space)와 같은 우주산업 생태계 개발과 과학 연구를 목표로 하는 우주 탐사가 균형 있게 이루어질 수 있는 정책을 펼치기를 바란다. 필자는 우주 미션을 성공함으로써 파생되는 국가적 자부심이나 과학 탐사가 낳는 데이터 등을 발사체나 우주선을 의미하는 하드웨어(우주 개발)에 대응하는 소프트웨어(우주 과학)라고 정의하고 싶다. 이제 한국은 하드웨어적인 부분은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우주 탐사로부터 생기는 경제적 이득은 당장은 확실하게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먼 미래엔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한국에서는 2023년 다누리호 성공을 기반으로 하여 2032년 달 착륙선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고, 또 2045년 착륙을 목표로 화성 탐사 계획도 있다고 한다. 또한 NASA의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와 협력의 일환으로 한국 주도 태양 관측 미션이 초기 기획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소행성 탐사도 계획에 있다. 다 중요한 미션이다. 하지만 밖에서 보기에는 이런 우주 탐사 미션들이 어떤 국가적인 비전과 모토에 따라 기획되었는지 불분명하다. 발사체와 우주선 개발은 목적지 도달에 중점을 두고 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어떤 작업을 왜 할 것인지, 목표와 이유에 대한 논의가 부족해 보인다. 미션을 계획하면서 어떤 소프트웨어를 창출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좀 더 필요하다는 얘기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합쳐져야 완전한 우주 미션이 되지 않을까.

무엇을, 왜 하는지 고민 필요

셋째, 우주항공청 시작에는 한국 고유의 ‘시그니처 미션’(singnature mission·대표 임무)이 필요할 것이다. NASA를 특별하게 하는 것은 세계인의 가슴을 뛰게 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NASA의 우주 탐사 미션에 있다. NASA는 아무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우주 탐사를 계획하고 우주선을 보낸다. 이것이 아마 많은 세계인이 NASA를 선망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인류 최초로 유인 탐사선을 달로 보내면서 NASA의 존재를 전 세계에 알린 아폴로 계획부터, 국제 우주정거장, 1970년대에 지구를 떠나 지금은 태양계 밖에서 활동하고 있는 보이저호들, 화성을 누비고 있는 로버와 헬리콥터, 그리고 최근에 발사된 제임스웹 우주망원경(JWST)에 이르기까지 남들이 못하는 우주 탐사를 성공시켜왔다.

한국 우주항공청의 첫 번째 시그니처 미션도 우주항공청을 세계에 알리고, 향후 한국 우주 개발·탐사에 중요한 초석이 될 역할을 할 것이다. NASA가 추진하는 중요한 미션은 ‘10년 계획’(Decadal Survey)이라 불리는 공정하고 투명한 과정을 통해 결정된다. 미국 우주 개발·탐사에 종사하는 산·학·연 전체가 참여하고 10년마다 한 번씩 수행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국 우주항공청의 첫 번째 시그니처 미션도 소수의 몇몇 관료나 전문가의 의견으로 정해지기보다는 한국 전체 우주 관련 산·학·연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치는 게 좀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한다. 국민적 합의를 거치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잘 어우러진 미션들이 한국 우주항공청의 독특한 브랜드를 창출하고 국민이 자랑할 수 있는 미션들이 되지 않을까.

◆전인수=1963년 인천 생.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재학 중 도미, 1991년 UCLA에서 핵융합 및 응용 플라스마 물리 분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산업계 등에서 9년을 보낸 뒤 2000년에 NASA 제트추진연구소에 합류했다. 우주환경이 태양계 행성체에 미치는 영향을 주로 연구한다. 화성탐사 로버와 아르테미스 달 우주정거장 미션 등의 과학팀원으로도 일하고 있다.

전인수 NASA 제트추진연구소 우주방사선 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