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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에즈 운하는 반군, 파나마는 가뭄…위기의 글로벌 통상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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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3호 08면

긴장 고조되는 ‘물류 길목’

글로벌 통상로가 위태롭다. 세계 경제가 저성장·고물가·공급망 등의 문제로 몸살을 앓는 가운데 글로벌 지정학적 급소(Choke Point)로 불리는 수에즈 운하와 파나마 운하의 가동이 동시에 위협받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군사적 긴장 고조와 가뭄으로 인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BBC·CNN·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수에즈 사태는 지난해 10월 7일 시작된 가자전쟁의 여파로 중동국가 예멘의 친이란 시아파 후티 반군이 이 운하로 이어지는 홍해 남쪽 입구의 바브엘만데브 해협 인근을 항해하는 선박을 위협하면서 시작됐다.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아라비아 반도의 예멘과 동아프리카의 지부티·에리트레아에 둘러싸인 최대 길이 약 50㎞, 최소 너비 약 26㎞의 좁은 해역이다. 후티 반군 장악 지역인 예멘 서부가 이 해협에 접한다.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이란의 군사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 후티 반군은 2014년부터 중앙 정부와 내전을 벌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 등은 수니파 연합군을 결성해 내전에 참전하면서 중앙 정부를 지원해왔다. 지난 9년 동안 37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예멘 내전은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UAE 등의 대리전으로 평가돼 왔다.

1990년대 예멘에서 태동한 이슬람 시아파 정치·군사 단체인 후티는 이란 혁명의 영향을 받아 ‘신은 위대하다. 미국에 죽음을. 이스라엘에 죽음을. 유대인에게 저주를. 이슬람에 승리를’이라는 정치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후티 반군은 가자전쟁이 발발하자 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인 하마스(종교적으로 수니파)에 대한 연대를 강조하고 이스라엘과 서방을 위협했다.

후티 반군은 이슬람 세계의 다른 조직과 달리 엄포에 그치지 않았다. 10월 19일 이스라엘 남부로 탄도 미사일과 드론을 발사하면서 군사 공격을 시작했다. 첫 공격은 홍해에서 작전 중인 미국 해군 구축함과 이스라엘 방공망이 미사일과 드론 요격에 나서면서 저지됐다. 글로벌 물류 급소인 홍해와 수에즈 운하가 졸지에 ‘위험한 통로’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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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후티 반군은 수에즈 운하와 연결되는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항해하는 선박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세계 2위의 해운사인 덴마크의 머스크와 영국의 에너지 기업인 BP 등은 자사 선박의 홍해 운항을 중단했다. 고객 화물의 안전한 수송이 생명인 해운사로서는 이 항로를 기피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약 1만9000척의 선박이 통과한 수에즈 운하는 유럽 수입 물량의 약 15%, 글로벌 컨테이너 운송량의 약 30%가 지나는 세계 해운의 급소다. 특히 유럽에서 필요로 하는 중동산 석유와 가스를 선박으로 운송하려면 반드시 지나가야 한다. 한국·일본·중국 등 아시아의 제조업 강국들이 유럽으로 수출하는 자동차·기계류 등의 핵심 운송로이기도 하다. 한국과도 관련이 크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는 선박이 바브엘만데브 해협-홍해-수에즈 운하를 우회하려면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거쳐  대서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런던-싱가포르 항로를 기준으로 거리는 약 9500㎞, 운송 기간은 약 2주가 추가된다. 이로 인해 아시아-유럽의 물류비용은 치솟을 수밖에 없다. 이는 보험·조선 등으로 연쇄반응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미국은 홍해에서 영국 등과 다국적군을 결성해 후티 반군이 발사하는 탄도미사일과 드론을 요격하고 있다. 인근 아덴만에 배치된 한국 청해부대 구축함의 동참도 언제든지 요구받을 수 있다. 하지만 후티 반군은 물론 가자사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이스라엘과 미국 등이 유엔안전보장이사회나 유엔총회의 결의에도 눈도 깜빡하지 않는 상황에서 사태의 조기 해결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주목할 점은 이란 변수다. 후티 반군이 사용하는 탄도미사일과 드론은 이란이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후티 반군은 2014년 이후 예멘 내전에 참전한 사우디아라비아·UAE를 향해 이를 사용해왔다. 그러다 가자전쟁 이후에는 이스라엘과 서방은 물론 공해인 홍해와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지나는 화물선도 공격 대상으로 삼고 있다.

후티 반군은 중동에서 이란의 대리자(Proxy)로서 반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반이스라엘·반서방의 기수 역할을 맡은 셈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사태의 배후에 있는 이란에 대한 정치적·경제적 압박을 강화할 가능성이 커지는 이유다. 서방은 단순하게 후티 반군을 응징하는 수준을 넘어 그 배후로 지목하고 있는 이란에 대한 압박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맞서 이란은 세계 에너지 해상수송로의 급소인 호르무즈해협(이란과 오만 사이의 좁은 해역)에 대한 봉쇄 위협으로 대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럴 경우 실제 이란의 국력이나 군사적 실력과는 별개로 위협만으로도 전 세계 경제가 출렁거릴 수 있다. 아울러 미국 등 서방은 가자사태 조기해결을 위해 이스라엘에 대한 정치적 압박을 강화할 수도 있다. 중동을 중심으로 국제정세가 더욱 복잡해지고 위험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파나마 운하도 몸살을 앓고 있다. 파나마 운하는 지난해 여름부터 일일 통과선박을 35→31→21척으로 각각 줄여왔다. 올 2월에 다시 18척으로 축소할 계획이다. 엘니뇨로 인한 가뭄으로 수량이 부족해지면서다.

파나마 운하는 대서양과 태평양의 수위가 각각 달라 배가 통과하려면 도크에 물을 채우면서 계단식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선 다량의 물이 필요한데 가뭄으로 수량이 감소하자 통과 선박을 줄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글로벌 물동량 5%, 화물선의 약 40%가 통과하는 파나마 운하의 통과 선박 감소는 글로벌 물류, 특히 이 운하 통과 선박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의 무역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이는 전 세계 각국에 연쇄적으로 악영향을 줄 수 있다.

파나마 운하와 수에즈 운하에서 동시에 물류 동맥경화 현상이 벌어지면서 각국은 글로벌 경제에 먹구름이 몰려올까 우려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두 운하에 문제가 동시에 발생하면 글로벌 해상통상로가 (무역선들이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과 남미 남단의 마젤란 해협으로 돌아가야 했던) 18세기로 퇴행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파나마·수에즈 사태는 18세기로의 퇴행까지는 아니더라도, 글로벌 물류에 부분적으로 악영향을 주면서 글로벌 경제의 포스트 코로나 회복을 더디게 할 가능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세계는 가자사태라는 국지 분쟁과 기후변화라는 변수가 글로벌 경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시대를 맞고 있다. 무역을 먹고 사는 한국에도 주요 국가의제가 될 수밖에 없다.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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