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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기독교 가치 훼손돼 미 쇠락"…'바이블 벨트' 공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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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3호 10면

[김동석의 미 대선 워치] 막강 파워 기독교 극우파

지난 11일 뉴욕 기자회견에서 지지자들에게 답례하는 도널드 트럼프 후보. [AP=연합뉴스]

지난 11일 뉴욕 기자회견에서 지지자들에게 답례하는 도널드 트럼프 후보. [AP=연합뉴스]

2016년 2월 1일 실시된 공화당 아이오와 전당대회(코커스)는 12명의 후보가 난립한 경선이었다. 정치권 밖에서 공화당 후보로 뛰어든 도널드 트럼프의 돌풍이 유권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당연히 트럼프의 승리가 예상됐다. 그런데 이를 뒤엎고 텍사스 출신의 테드 쿠르즈 후보가 트럼프를 제치고 일등을 했다. 트럼프 캠프는 크게 당황했다. 도대체 테드 쿠르즈가 아이오와 코커스를 어떻게 준비했는지에 관심이 쏠렸다. 미국 대통령 선거 전의 경선에서 아이오와주는 대의원 수로는 아주 작은 주에 불과하지만 대선 레이스의 시작을 알린다는 면에서 뉴스의 가치와 관심도는 여느 일반 주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또 전 세계인이 주목하는 이벤트다. 그래서 각 후보는 선거판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수 개월 전부터 아이오와 코커스에 각별히 공을 들인다. 아이오와에서 패한 트럼프가 테드 쿠르즈의 아이오와주 전략에 관심이 쏠린 것은 당연하다.

바튼,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자 중 한 명

같은 날 론 디샌티스 후보(왼쪽)와 니키 헤일리 후보(오른쪽)는 아이오와에서 유세를 벌였다. [AP·AFP=연합뉴스]

같은 날 론 디샌티스 후보(왼쪽)와 니키 헤일리 후보(오른쪽)는 아이오와에서 유세를 벌였다. [AP·AFP=연합뉴스]

2016년 테드 쿠르즈는 가장 먼저 대권 도전을 선언했다. 그는 자신이 아주 강력한 기독교 보수주의자임을 명확하게 밝히면서 기독교 극우파들의 본산인 버지니아의 리버티 대학에서 성경을 들고 기도를 하면서 “정치와 종교는 분리할 수가 없다. 신앙인들이 공공기관을 장악하고 성경적 원칙에 따라 통치하라는 창세기의 명령에 따르겠다”며 출마선언을 했다. 여기에는 우파 복음주의 교단의 설교자(목사)인 그의 아버지가 한몫을 했다. 아들을 위해 텍사스 복음주의 교단의 목사들을 선거운동원으로 끌어들였다. 자기 아들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미국을 다시 신의 나라로 만들자는 그의 구호는 기독교 우파들에게 어필했다. 적지 않은 숫자의 목사들과 신학교 학생들이 테드 쿠르즈의 선거운동원이 됐다. 테드 쿠르즈의 아버지는 이들을 이끌고 일찌감치 아이오와주를 휩쓸고 다녔다. (당시 필자는 아이오와주 경선장에서 여기에 동원된 한인 목사 몇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이들은 아이오와주의 99개 카운티에 있는 모든 교회를 방문했다. 이런 선거운동으로 아이오와주에서 테드 쿠르즈가 도널드 트럼프의 돌풍을 잠재웠다.

데이비드 바튼

데이비드 바튼

이 승리는 테드 쿠르즈 선거운동의 책임을 맡은 기독교 우파 활동가인 데이비드 바튼(David Barton)의 작품이었다.

2017년 대통령에 취임한 트럼프는 이를 기억하고 4년 후 재선을 위한 준비 작업의 일환으로기독교 우파를 겨냥했다. 테드 쿠르즈를 도왔던 데이비드 바튼 목사를 캠페인 캠프에 영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블 벨트인 딥 사우스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을 적극 옹호하는 입장을 취했다. 이민자들로 인해 기독교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면서 반이민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민자들의 활력에 밀리는 저학력 백인들의 불평과 불만이 이민자들을 향한 증오심으로 나타나도록 유도했다. 기독교 가치가 훼손되어 미국이 쇠락의 길로 가고 있다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슬로건을 강하게 외쳤다. 그는 기독교 가치를 사수하기 위해 연방 대법관 3명을 보수주의자로 임명했다. 연방 대법관의 이념적 비율이 6대 3이 돼 보수 우위로 그 균형이 깨어졌다. 미국 사회가 트럼프가 구사하는 극단적 혐오 정치의 장이 된 것이다. 종교적 우파들은 트럼프에 열광했다. 2020년 트럼프의 재선을 위한 공화당 전당대회에 기독교 근본주의자인 리버티 대학의 총장인 제리 폴웰 주니어 목사가 동원되었고, 거대 복음주의 교단의 본체인 빌리 그레이엄 재단의 프랭크 그레이엄 목사가 트럼프 당선을 위해 기도를 했다. 2021년 1월 6일에는 트럼프의 명령에 따라 의사당을 공격한 군중들의 손에는 십자가가 들려있었다. 그래서 일부에선 그들을 폭도 대신 십자군으로 부르기도 한다. 트럼프는 2020년 선거에서는 졌지만, 기독교 우파를 자신의 지지층으로 견인했다. 흔들리지 않는 가장 충성스런 지지 세력이다. 기독교 우파 목사들의 설교에서는 “하나님이 악인의 손을 들어서 우리를 지켜주신다”고 트럼프를 페르시아의 키루스 왕(바빌론에 포로로 잡힌 유대인들을 해방시켜준 페르시아의 왕)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데이비드 바튼은 기독교 우파 목사이며 정치운동가다. 미국을 기독교 국가로 만들기 위한 기독교 민족주의 정치 운동을 한다. 미국의 헌법, 도덕적·종교적 유산과 관련한 역사 연구에 초점을 맞춘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고 수정헌법 제1조의 종교 조항이 기독교에만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데이비드 바튼은 시사지 타임이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자 25인 중 한 명이다. 미국의 주류 역사학자들이 그를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지만, 그는 이미 수백만 명의 행동을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를 영웅으로 떠받드는 사람 중에는 대권 후보를 포함한 힘 있는 정치인들도 많다. 2024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는 미국 성인 4분의 1인 기독교인 전체를 모두 유권자로 등록해 트럼프에게 투표하도록 전국적인 운동을 벌이고 있다. 트럼프의 정치 이념을 백인 민족주의와 기독교 민족주의를 결합시켜 설명하면서 그를 칭찬하고 있다. 데이비드 바튼은 텍사스 공화당 부위원장을 지냈으며 테드 쿠르즈의 정치 참모 역할도 했다. 2016년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될 때 도왔고 이후 트럼프 정치의 중심에 있다. 닉슨의 남부전략 이후 바이블 벨트의 맹주는 빌리 그레이엄, 제리 폴웰, 그리고 팻 로버트슨을 거쳐서 2024년 대선에서는 데이비드 바튼으로 이어졌다.

2021년 의회 습격 군중 손엔 십자가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미국의 기독교 우파가 정치권으로 얼굴을 내밀게 된 것은 1960년 대선 때부터다. 1960년 민주당이 가톨릭 교도인 존 F. 케네디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하자 가톨릭에 대한 해묵은 반감이 되살아나 많은 남부의 백인 개신교도들이 공화당 후보인 리처드 닉슨 쪽으로 옮겨갔다. 이들은 1964년 선거에서 역시 공화당의 배리 골드워터를 지지했다. 1968년엔 남부 출신의 독자 후보이자 극단적 인종차별주의자인 조지 월리스로 몰렸다. 1976년엔 닉슨의 워터게이트 여파로 민주당의 지미 카터를 지지했다. 침례교 신자인 지미 카터는 보수 기독교 우파의 기본 정서를 손상하지 않으면서 진보정책을 옹호했다. 지미 카터의 당선은 기독교 우파의 정치 세력화에 강력한 증거가 되었다. 이때부터 기독교 우파의 독자적인 정치 조직화 작업이 본격화되었다. 닉슨의 남부전략을 추진하는 사회·정치적 우파 활동가들이 남부지역의 범기독교 보수주의 세력을 정치 영역으로 끌어 들였다. 미국판 뉴라이트다. 기독교 근본주의 제리 폴웰 목사는 정당 수준의 정치단체인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를 조직했다. 한 해에 수천 명씩 기독교 우파 목사를 양산하는 그 유명한 버지니아의 리버티 대학이 여기서 출발했다. TV 부흥사인 팻 로버트슨 목사는 ‘기독교 연맹(Christian Coalition)’을 창설해 1986년 직접 대통령에 출마하기도 했다. 세계적인 복음주의 부흥사인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설립한 빌리 그레이엄 재단도 정치 참여에 적극성을 띠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정치 세력화된 기독교 우파의 거점을 소위 ‘바이블 벨트’라고 칭한다. 2000년 대통령에 당선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빌리 그레이엄 목사 설교를 듣고서 회심해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반복해서 신앙 고백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정치 세력화된 미국 기독교 우파 정치 세력은 2001년 9·11 테러를 거치면서 전국적으로 더욱 확대되었고 정치권력 깊숙이 들어오게 되었다. 오바마 대통령 때 나타난 강력한 우파 정치 운동인 ‘티파티(Tea Party)’와 결합했다. 최근에는 트럼프 정치에서 양산된 극우파 성향의 공화당 연방 하원의원들이 거의 강제적으로 케빈 매카시 의장을 자리에서 쫓아냈고, 그 자리를 차지한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하나님이 이 자리까지 이끌어 주셨다”는 취임사를 하기도 했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 강원 춘천 출신.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가 학업을 마치고 1996년 한인유권자센터를 설립해 한국계 교민·교포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활동해 왔다. 2008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대선 캠프에 참여하는 등 워싱턴 정계에 인맥이 두텁다. 한·미관계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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