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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주의 '노 레이블스' 독자 후보 추진, 바이든 캠프 비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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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3호 10면

[김동석의 미 대선 워치] 선거 변수 제3후보

2011년 7월 18일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노 레이블스 그룹의 집회 모습. [AP=연합뉴스]

2011년 7월 18일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노 레이블스 그룹의 집회 모습. [AP=연합뉴스]

미국 대통령 선거가 1년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미국 정치가 초유의 하원의장 축출 사태 등 극단적 진영 대립으로 인한 혼란을 빚고 있는 가운데 2024년 11월 5일 치러질 선거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간의 리턴매치가 될 것이란 전망이 유력합니다. 중앙SUNDAY는 미국 정치 시스템에 해박하고 워싱턴 정가의 동향에 밝은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가 전해 오는 현지 리포트를 정기적으로 게재합니다. 그 첫 순서는 중도주의를 표방하는 정치단체인 노 레이블스가 내년 선거의 향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편집자 주

제3후보, 바이든 패자로 만들 가능성 커

왼쪽부터 낸시 제이콥슨 노 레이블스의 설립자, 브라이언 피츠패트릭 연방하원의원, 조시 고트하이머 연방하원의원. [AP·AFP=연합뉴스]

왼쪽부터 낸시 제이콥슨 노 레이블스의 설립자, 브라이언 피츠패트릭 연방하원의원, 조시 고트하이머 연방하원의원. [AP·AFP=연합뉴스]

2008년 11월 4일 제 44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가 승리했다. 흑인 대통령 탄생이란 사상 초유의 상황에 당황한 미국의 우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대중이 스스로 결성한 우파 시민정치조직인 티파티(Tea Party)가 출현했다. 공화당 후보였던 존 매케인은 자신의 러닝메이트인 새라 페일린의 극우주의를 염려해 이렇게 조언했다. “당신을 공화당의 미래라고 우파 정치꾼들이 몰려 올텐데 절대로 그들에게 넘어가지 말라.” 그러나 페일린은 극우정치의 중심이 되었고 전국적으로 티파티를 이끌었다. 이는 훗날 ‘트럼프 정치’가 공화당을 접수하는 시발점이었다. 2010년 오바마 대통령 임기 중의 첫 중간선거에서 티파티는 자신들의 영향력으로 60여명의 하원의원을 당선시켰다. 순식간에 워싱턴 정국은 여소야대로 뒤집혔다. 티파티 의원들의 목표는 흑인 대통령 오바마 행정부가 어떠한 정치적 성과도 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공화당내 우파 의원들의 강한 목소리는 민주당의 중심을 왼쪽으로 이동시키는 ‘좌클릭’ 작용을 했다. 공화, 민주 양당의 중도파 의원들이 급격하게 감소되어 연방의회에 당파적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졌다. 타협과 협상이 실종되어 의회의 기능이 극도로 저하되었다. 연방의회 내 양당주의(bipartisanship)가 실종되고 이념적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졌다.

공화당의 가파른 우경화를 염려하는 자본가들의 분위기를 눈치 챈 민주당의 중도우파계 활동가들은 중도주의(Centrism)와 양당주의 슬로건 아래 모였다. 연방의회의 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중도주의의 기반을 확대해야 한다는 데에 뜻을 모았다. 정치자금 운영의 귀재로 소문난 낸시 제이콥슨이 앞장서 중도주의와 양당주의 실현을 사명으로 하는 시민정치조직 ‘노 레이블스(No Labels)’를 설립했다. 노 레이블스는 자금을 모아서 선거에 직접 개입하는 것이 허용되는 초당적 비영리 시민단체다. 노 레이블스를 만든 제이콥슨은 오랫동안 민주당내 모금책으로 큰 성과를 낸 정치활동가로, 1984년 민주당 대선경선에서의 게리 하트 캠페인을 이끌었고 1991년엔 빌 클린턴의 캠프에서 선거자금을 모으고 운영한 책임자였다. 클린턴 재임 동안 민주당의 재정을 총 관리하면서 민주당의 중심을 진보적인 북동부에서 남부지역 중도계쪽으로 이동시켰고, 클린턴 계보인 민주지도자회의(DLC:Democratic Leadership Council)를 조직한 핵심이기도 하다. 클린턴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린 전설적 여론조사 전문가 마크 펜이 제이콥슨의 남편이다.

노 레이블스는 돈의 중심인 뉴욕 맨해튼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조직의 취지에 동의하는 기업가들을 동원해 정치자금을 만들고 양당주의와 중도주의에 동의하는 후보를 지원해 하원에 입성시키는 일에 집중했다. 그 결과 2012년 선거에서 10여명을, 2016년 선거에서는 20여명의 후보를 당선시켰다. 노 레이블스는 공화당에 가까운 민주당 의원과, 민주당에 가까운 공화당 의원을 보완해 하원 내에 초당적 그룹인 문제해결위원회(PSC·Problem Solvers Caucus)를 하원 내에 조직했다. 2017년 출범한 PSC는 양극화 현상이 극심해진 지금의 미국 정치 현실에서 그나마 의회가 돌아가도록 양당의 접점을 만들고 있다. PSC는 민주·공화 30명씩 60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민주·공화 각 한 명씩의 공동의장제로 운영한다. 현재 민주당 공동의장은 뉴저지 출신의 조시 고트하이머 의원이고 공화당 공동의장은 펜실베니아 출신의 브라이언 피츠패트릭 의원이다. 한국계 재선 의원인 캘리포니아의 영김 의원도 이 위원회 소속이다.

노 레이블스, 수퍼화요일 이후 후보 내기로

왼쪽부터 노 레이블스가 앞장세우는 정치권 인사 래리 호건, 마이클 블룸버그, 영 김. [AP=연합뉴스]

왼쪽부터 노 레이블스가 앞장세우는 정치권 인사 래리 호건, 마이클 블룸버그, 영 김. [AP=연합뉴스]

노 레이블스는 후원기업들을 비공개로 한다. 알려진 후원자 중에는 영화·호텔·담배·에너지·시계 등 다양한 사업으로 돈을 번 로우스 코퍼레이션의 앤드류 티쉬, 북미 지역에 2000개의 매장을 둔 파네라 브레드의 론 사이치, 페이스북의 고위 간부를 역임하며 큰 돈을 모은 데이브 모린 등 맨해튼의 갑부들이 있다. 또 3차례 뉴욕 시장을 지낸 마이클 블룸버그가 노 레이블스의 뒷 배경으로 알려져 있다. 기부자와 총액을 공개하지는 않지만 지난해 중간 선거를 치르고도 남은 자금이 수천만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노 레이블스가 앞장 세우는 정치권 인사로는 블룸버그를 비롯, 2000년 대선에서 앨 고어 후보의 러닝메이트였던 조지프 리버맨, 공화당에 더 가까운 정치적 입장을 취하는 조 맨친 상원의원(웨스터버지니아)과 거스틴 시네마 상원의원(애리조나), 한국의 사위라고 한국 언론이 자주 언급하는 래리 호건 전 매릴랜드 주지사, 오바마 정부 때 국가정보국장을 역임한 데니스 블레어, 흑인민권운동 지도자이자 종교지도자인 벤자민 차베스 등이다.

1년 앞으로 다가온 2024년 대선에서 노 레이블스는 독자 후보를 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대선에서 제3의 후보는 종종 있었다. 1992년 아버지 부시 대통령과 클린턴 후보가 경쟁했을 때 로스 페로가 제3의 후보로 등장했다. 그는 예상을 깨고 전국적으로 20%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당시 주로 공화당 지지층이 로스 페로 쪽으로 이탈한 것이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재선 실패 원인이었다. 2000년 선거에서도 제3 후보가 승패에 영향을 끼쳤다. 공화당 후보는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 민주당 후보는 고어 부통령이었고 제3 후보는 환경운동가인 랠프 네이더였다. 네이더가 300만 표 이상을 획득해 민주당 표를 끌어간 것이 고어가 근소한 차이로 패한 원인으로 꼽혔다. 매번 대통령선거 때마다 제3 후보의 등장이 비상한 주목을 받는 것은 이런 사례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6일 워싱턴 DC의 노 레이블스 사무실에 4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보좌관을 비롯해 전직 상·하원 의원, 이제 막 출범한 바이든 대통령 재선 전략팀원들, 그리고 민주당의 최고 캠페인 전략가들이 참여했다. 민주당 계열의 인사들뿐만 아니라 2020년 선거전에서 반트럼프 운동을 추진한 공화당 내 링컨 프로젝트(Lincoln Project) 대표, 네오콘의 거두로 위클리 스탠더드 발행인을 역임한 빌 크리스톨의 모습도 보였다. 이들의 관심은 노 레이블스가 제3의 대통령 후보를 내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의 보좌관들과 민주당 전략가들은 2024년 대선전이 트럼프와 바이든의 리턴매치가 될 경우 제3의 후보가 바이든을 패자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2024년 대선이 다가오면서 유권자들에게 점점 더 바이든의 나이가 심각하게 소환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의 저명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이그나티우스는 지난 9월12일자 워싱턴포스트에 “바이든 대통령은 2024년에 다시 출마해서는 안된다”라고 썼다. 그 첫 번째 이유가 그의 나이다. 이그나티우스의 주장은 간곡하고도 강력하다. 새로운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7%가 바이든이 4년 더 임기를 추구하기에는 너무 늙었다고 답했다. 민주당원으로만 좁혀도 69%가 같은 답을 했다. 바이든은 대통령직 수행에 적합한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는 백악관의 반복적인 발표가 있어도 여론은 부정적이다. 바이든-해리스 팀에 관한 부정적인 여론이 수면위로 확산되자 제3후보를 내겠다는 노 레이블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노 레이블스는 내년 3월 5일 수퍼화요일 이후에 후보를 낸다는 입장이지만, 이들의 확고한 친기업적 입장으로 인해 벌써부터 대선자금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는 소문이다. 바이든 캠프에 비상이 걸렸다. 노 레이블스가 선거판의 큰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가 학업을 마치고 1996년 한인유권자센터를 설립해 한국계 교민·교포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활동해 왔다. 한·미관계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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