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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의 순간' 직면한 바이든, 8년 전 힐러리 악몽 재현 우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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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7호 11면

[김동석의 미 대선 워치] 특검 ‘기억력 감퇴’ 언급 파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 오벌오피스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다. 그의 국가안보 관련 기밀 유출 의혹을 수사한 로버트 허 특별검사가 전날 발표한 보고서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기억력 나쁜 노인”으로 판단한 게 대선 이슈가 되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 오벌오피스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다. 그의 국가안보 관련 기밀 유출 의혹을 수사한 로버트 허 특별검사가 전날 발표한 보고서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기억력 나쁜 노인”으로 판단한 게 대선 이슈가 되고 있다. [AP=연합뉴스]

2012년 리비아의 벵가지에서 일어난 테러리스트들의 미국 대사관 습격사건으로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대사와 3명의 미국인이 사망하는 테러가 발생했다. 2014년 하원의장인 존 베이너는 벵가지 대사관 습격사건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진상을 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사적인 e메일을 공적인 일에 사용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전문가들과 상·하원 의원들은 힐러리가 사적으로 사용한 e메일이 미국 연방법과 기록관리규정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힐러리는 국무장관을 그만두면서 관련 법상 개인 e메일을 모두 출력해서 사무실에 보관하거나 국무부에 제출해야만 했다. 3만여 건의 e메일을 제출하면서 개인용으로 판단한 그만한 분량의 e메일은 삭제했다. 그 삭제한 e메일에 관한 것을 연방수사국(FBI)이 추가로 조사를 진행했다.

힐러리가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한창 캠페인에 열중할 때인 2015년 6월 애리조나의 피닉스 하버 국제공항의 활주로에서 힐러리의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당시 법무부 장관인 로레타 린치를 만났다. 당시 ‘FBI가 힐러리의 e메일을 조사하는 걸 멈추어 달라’고 요청한 일이 제임스 코미 FBI 국장에게까지 전달돼 오히려 코미 국장의 심기를 건드린 상황이 되었다. 코미 국장은 힐러리를 직접 인터뷰 조사하면서 수사의 강도를 높였다. 대선전이 한창인 2016년 6월에야 코미 국장은 힐러리의 e메일 스캔들이 문제는 있지만, 기소는 하지 않겠다는 발표를 했다. 이 스캔들로 선거운동 과정에서 엄청나게 시달리던 힐러리는 그 정도에서 일단락되는 것에 안도했다.

힐러리에겐 혈육 이상으로 여기는, 그녀의 침실까지 드나드는 단 한 명의 최측근 보좌관이 있다. 후마 애버딘으로 힐러리의 수양딸로 불린다. 7선의 연방 하원의원을 지낸 앤서니 위너가 그녀의 남편이다. 둘은 2010년 클린턴 전 대통령의 주례로 결혼을 했다. 이듬해 위너는 미성년자와의 섹스팅(sexting·휴대전화로 성적 문자나 영상을 보내는 것) 스캔들로 하원의원직을 사임했다. 2016년 9월 위너의 별건 섹스팅 수사 과정에서 FBI가 위너와 후마가 주고받은 e메일에서 힐러리의 e메일을 대량 발견했다. 대선을 2주 앞둔 10월 코미 국장이 e메일 스캔들을 재수사하겠다고 발표했다. 선거 이틀 전인 11월 6일 FBI가 혐의가 없다는 발표를 했지만, 힐러리의 선거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3%포인트 내외로 앞서던 경합주 5곳이 모두 트럼프에게로 갔다. 만인의 예상을 뒤엎고 트럼프가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이 된 결정적인 배경이다. 캠페인 전문가들은 이 사건을 ‘코미의 순간(Comey Moment)’이라고 설명한다.

한국계 공화당원인 로버트 허 특별검사. 바이든 정부에서 특검에 임명됐다. [AP=연합뉴스]

한국계 공화당원인 로버트 허 특별검사. 바이든 정부에서 특검에 임명됐다. [AP=연합뉴스]

코미는 2013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로버트 뮬러 FBI 국장의 후임으로 임명됐다. 원래 공화당원으로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인 2003년 법무부 부장관이 됐다. 9·11테러로 인해 미국 사회에 민간인 감시의 광풍이 불던 시기인 2004년 네오콘을 지휘하던 딕 체니 부통령이 추진하는, 영장 없이 테러 혐의자에 대한 도·감청을 허가하는 도청프로그램법(NSA domestic wiretapping) 시행을 막아내며 강성 원칙주의자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네오콘들의 미움을 받았고 이듬해 법무부를 떠났다. 그로부터 8년 만에 오바마가 FBI 국장으로 기용한 것이다.

바이든에게 소위 ‘코미의 순간’은 지난주 목요일(2월 8일) 오후에 발생했다. 바이든의 기밀문서 취급에 관한 특별조사관으로 임명받은 한국계 특별검사 로버트 허의 수사결과가 발표되면서다. 허 특검은 형사고발이 타당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바이든 대통령을 직접 인터뷰 조사한 결과, “선의를 갖고 기억력이 나쁜 노인”이라고 바이든의 기억 감퇴 문제를 주장했다. 지난 8일 폭스뉴스를 통해서 허 특검의 보도를 지켜보던 바이든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작지 않은 충격에 휩싸였다. 재선에 나선 고령(81세)의 대통령에게는 파괴적인 서술이었다. 대통령이 직면하고 있는 연령 문제를 촉발했고 바이든과 그의 팀이 극복하기 위해 기진맥진 애를 쓰고 있는 약점에 대해서 또 다른 부정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것은 공화당의 기존 공격 라인을 강화했고 바이든이 4년을 더 봉사하기엔 너무 늙었다는 민주당의 진정한 우려를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각종 언론이 바이든이 코미의 순간을 맞이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2016년 의회에 출석해 증언하던 제임스 코미 당시 FBI 국장. [AP=연합뉴스]

2016년 의회에 출석해 증언하던 제임스 코미 당시 FBI 국장. [AP=연합뉴스]

8일 저녁 백악관은 바이든이 특검의 보고서를 강력하게 반박하려는 기자회견을 급히 소집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허 특검에 대해 명백하게 화가 났고 그가 감히 아들의 죽음 문제까지 언급한 것에 분노했다. 바이든은 기자들에게 자신의 나이 문제가 언론에 의해서만 촉발된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바이든은 직전 한 주 동안 외국 지도자를 잘못 식별하는 실수를 연발해서 저질렀다. 오래전에 사망한 헬무트 콜 독일 총리와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를, 그리고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현 대통령을 혼동했다. 기억력을 묻는 기자 질문에 기억력은 괜찮다고 하면서 이집트 대통령과 멕시코 대통령을 혼동했다. 물론 트럼프도 비슷한 실수를 빈번하게 저지르고 있지만, 고령과 기억 감퇴 문제에 관해선 모든 언론이 유독 바이든에게 주목한다.

최근 백악관과 바이든 캠페인으로부터 바이든이 참석하는 행사의 규모를 의도적으로 줄이고 있다는 말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큰 규모의 행사를 대신해서 중소기업 소유주들, 흑인가족 등 소규모 인원과의 토론과 회의에 집중했다. 바이든이 가장 활발하게 느끼고 그에게 가장 친밀한 환경에서 유권자들과 만나는 기회만을 만들고 있다. 심지어는 미국인들이 가장 많이 시청하는 수퍼볼TV 중계 직전에 대통령들이 전통적으로 하는 인터뷰를 불과 며칠 전에 포기하기로 결정하면서 그의 기억력과 허약함에 대한 의구심을 더욱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1월 말 ABC뉴스와 입소스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중에 28%가 바이든이 대통령으로서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는 정신적 예민함을 갖고 있다고 답한 반면에 47%는 트럼프가 그렇다고 답했다. 한편 지난해 11월의 마켓 로스쿨 여론조사에서 등록유권자 중 57%가 “대통령이 되기엔 너무 늙었다”는 문구가 바이든을 매우 잘 묘사한다고 답했고 23%는 트럼프가 그렇다고 답했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나 바이든 현 대통령이나 둘 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를 나이가 많고 말실수를 많이 하고 미래보다는 과거를 더 많이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미국인들은 변화가 없다면 그 둘 중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둘의 캠페인은 전적으로 부정적인 영역에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부정적인 방식은 트럼프의 특징이다. 독설·불만·피해·증오·분열·모욕의 캠페인이다. 백악관 사수를 위한 바이든의 최선은 성취를 강조하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 나이와 예민함에 대한 깊은 우려에 맞서기 위해서는 체력과 능력의 이미지를 구축해야 하고 가능한 한 날카롭고 예리하게 트럼프를 가차 없이 공격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지금부터 할 일이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가 학업을 마치고 1996년 한인유권자센터를 설립해 한국계 교민·교포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활동해 왔다. 2008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대선 캠프에 참여하는 등 워싱턴 정계에 인맥이 두텁다. 한·미관계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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