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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안병억의 마켓 나우

유럽의회, 극우 약진하면 그린딜 철회할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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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안병억 대구대 교수(국제관계)

안병억 대구대 교수(국제관계)

2024년 청룡의 해는 ‘슈퍼 선거의 해’다. 지구촌 인구의 절반인 40억 명이 대선·총선·지방선거에서 표를 던진다. 유럽연합(EU)도 4억 명의 유권자가 오는 6월 6일부터 나흘간 자신의 이익을 대변할 유럽의회 선량(選良)을 뽑는다.

유럽의회 선거는 정치와 시장에 점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선거로 진화 중이다. 5년 전, 2019년에는 중도파와 녹색당이 의석을 크게 늘린 덕분에 유럽의회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 대륙을 만든다는 ‘그린 딜’을 적극 지지하며 유럽의 정체성을 강화했다.

마켓 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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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극우정당들의 정치그룹인 ‘정체성과 민주주의(ID)’의 약진 가능성이 주목된다. 지난 8일 정치·정책 매체 폴리티코(politico.eu)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극우정당들이 받는 지지는 23.8%로 석 달 전보다 2% 포인트 정도 올랐다.

705석 유럽의회에서 ID가 의석수를 현 60석에서 87석으로 늘린다면, 이민·이슬람·EU에 반대하는 정서가 EU 정책 결정에 어떤 형태로든 반영될 것이다. 극우정당들은 심사에서 탈락한 난민 신청자의 강제 추방 등 난민 제한을 강력하게 요구할 듯하다. 극우정당들은 그린 딜도 반대한다. 부패한 엘리트가 아니라 서민을 대변한다고 자처해 온 포퓰리스트 정당들이기에 서민에 큰 부담을 주는 그린 딜을 규탄해왔다.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 등을 EU에 수출하는 한국 같은 온실가스 순배출국은 2026년부터 추가 관세, 탄소세를 납부해야 한다. 현 지지율을 고려하면 6월 선거에서 중도 우파와 중도 좌파의 예상 의석을 합해도 과반에서 약 40여 표가 부족하다. 녹색당과 중도파가 행사하던 캐스팅보트 역할을 극우 정당이 맡게 되면 이들은 그린 딜을 거부할 수는 없지만, 시행을 최대한 늦추거나 수정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주류 정당들은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원하고자 하기에 이 문제는 유럽의회 선거 후에도 변화가 없을 듯하다. 게다가 극우 정당들의 대 러시아 정책은 분열돼 있다. 러시아를 규탄하는 포퓰리스트 정파와 러시아를 지지하는 또 다른 정파가 상이한 정치 그룹에 속해서 격돌 중이다.

유럽의회는 국경을 넘는 ‘초국적 민주주의의 실험장’이다. 국적이 아니라 이념에 따라 정치그룹(원내 교섭단체)이 형성된다. 중도 우파에 속하는 27개국의 유럽의회 의원들은 ‘유럽인민당(EPP)’, 중도 좌파는 ‘사회민주진보동맹(S&D)’ 소속으로 활동한다. 독일과 폴란드의 사회민주당 계열 의원들이 한 정치그룹에서 머리를 맞대고 의정 활동을 한다.

극우 정당들의 대두로 유럽의회의 정책 결정 과정은 더 복잡해지고 더뎌진다. 탄소세와 같이 우리에게 직접 영향을 미칠 이슈에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

안병억 대구대 교수(국제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