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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언어장애로 채용시험서 차별"…재판부 "불합격 취소"

중앙일보

입력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연합뉴스

언어장애인이 법원직 공무원 면접 과정에서 적절한 편의지원을 받지 못하고, 차별적 질문을 받았다면 불합격 처분이 취소돼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정용석 부장판사)는 11일 박모씨가 법원행정처장과 국가를 상대로 낸 불합격 처분 취소 소송에서 “불합격 처분을 취소하고, 500만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지체장애(양손장애)와 언어장애가 있는 박씨는 2022년 법원사무직렬 9급 공개경쟁채용시험 장애인 구분모집에 지원해 필기시험에 합격했으나, 이후 면접에서 불합격 처분을 받았다.

박씨는 법원행정처가 채용과정에서 장애인에 대한 편의 제공 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필기시험에 대한 편의지원 종류만 안내했을 뿐, 의사 전달용 컴퓨터 등 언어장애를 가진 원고의 특성에 맞는 편의를 제공받지 못했다는 취지였다.

박씨는 면접 과정에서 장애와 관련된 차별을 겪었다고도 했다. 면접관으로부터 ‘발음이 좋지 않은데 일을 할 수 있겠냐’, ‘민원인과 의사소통이 가능하겠냐’ 등 직무와 관련 없는 질문을 받아 직무능력이나 인성을 검증할 시간을 빼앗겼다는 주장이다. 박씨 측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행위를 판단하고 엄중한 기준을 제시해야 하는 법원이 정면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면접위원들의 장애 관련 질문들은 원고의 장애를 평가요소로 삼은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대다수 면접위원들이 원고에 대해 ‘의사표현의 정확성과 논리성’ 평가항목을 ‘하’(下)로 평가했다”며 “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금지하는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원고가 음성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에만 다소 불편함을 겪고 있을 뿐, 장애가 직업능력과 지적능력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런 질문들이 원고가 수행할 업무와 관련된 사항이라고 볼 수 없다”고도 했다.

재판부는 법원행정처가 언어장애에 대한 편의 제공이 가능한지를 명확히 공지하지 않았고, 지원 항목을 필기시험과 면접시험으로 구분해 안내하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사전달용 컴퓨터 등 편의 지원을 제공받지 못한 탓에 면접위원이 원고의 발음을 지적하는 등 의사소통에 문제가 발생했고, 원고로서는 위축된 상태로 시험에 응시할 수 밖에 없었다”며 “도저히 비장애인 응시자와 동등하게 면접시험에 참여할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날 선고 후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와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등은 행정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 차별금지법의 취지에 부합하는 판결”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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