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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새해의 시작은 도반과 함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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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송길영 Mind Miner

송길영 Mind Miner

“금주, 금연, 독서, 운동.” 연초의 단골 각오 리스트입니다. 시작은 쉽지만 지속이 왜 어려운지 되묻기보다, 거꾸로 그것이 어렵기에 늘 같은 각오를 반복한다 이해하는 것이 옳은 듯 합니다. 귀찮음과 나약함은 우리 종의 본성일지 모릅니다. 이 악순환을 끊고 ‘갓생’을 사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 해결책은 ‘무엇’을 할 것인가만 생각하기보다, ‘누구’와 ‘어떻게’ 할 것인가 전략적으로 설계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다양한 사람과 하는 공부 모임
나를 넘어 ‘우리’로 확장하는 길
홀로 공부보다 더 멀리 가는 법

빅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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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일주일 중 가장 한가로운 때는 언제이신지요? 토요일 저녁에 무한도전을 보며 가족들과 깔깔대는 시간에는 여유가 넘치지만, 일요일 밤 개그콘서트의 클로징 음악이 나오면 슬퍼진다는 우스개소리도 벌써 오래전 추억입니다. 무엇보다 TV 프로그램과 요일을 연계하는 표현이 낯설어지고 있습니다. OTT의 시대가 열리며 모두가 시간을 맞추어 같은 것을 보던 오래된 습관이 이제 옅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분들이 서로 시간을 맞추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조별과제나 스터디 모임처럼 다 함께 모여야 하는 일정을 언제로 할까 하는 난상토론의 끝은 대개 토요일 오전으로 귀결된다 합니다. 주중 낮에는 수업이 제각기 다르고, 저녁은 아르바이트나 친구와의 만남으로 저마다 사정이 있어 어렵습니다. 주말의 오후 역시 집안의 행사나 사랑하는 이와의 만남으로 가장 소중히 쓰이는지라, 소거법에 의해 가장 진공상태는 토요일 오전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때가 모두의 삶에서 조각난 자투리 시간이 유일하게 겹치는 때라는 말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일상의 혜안을 타인의 경험이 축적된 데이터로부터 얻는 습관으로 단련된지라, 저와 도반들의 공부는 항상 토요일 오전입니다. 혼자서 하는 공부는 엄청난 위인들이나 가능하다 믿기에, 스스로를 채근하고 감각의 확장을 통해 더 큰 혜안을 얻고 싶은 이들과 함께 서로를 독려하며 공부하는 습관을 들였습니다. 주중의 각자 생업의 피로도는 금요일 저녁에 한꺼번에 몰려오기 마련이라 토요일 아침 잠자리의 달콤함을 이기고 공부 모임에 나오는 것에는 큰 노력이 필요합니다. 가장 한가로운 때는 다시 생각해 보면 나에게 허락된 가장 소중한 시간입니다. ‘어떤 것도 안 할 수 있는’ 자유를 포기하는 것의 어려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듯 스스로를 이기려 서로를 묶어내는 약속을 일부러 만들어 ‘가장 소중한 시간’에 함께 모입니다. 주중의 꾸밈을 포기하고 가벼운 차림으로 만난 이들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동류’가 여전히 건재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일상의 고단함을 피하고 세속의 책무를 내려놓을 수는 없지만, 그 뜻의 치열함은 포기할 수 없는 이가 나 하나만이 아님을 확인하는 순간 세상은 더 이상 번뇌와 고통으로 가득 찬 사바세계만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도반의 모임은 성·나이·직업·가족 구성 형태는 물론 삶의 지향이 모두 다른 다양한 이들로 구성합니다. 삶의 표면적을 넓히기 위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물리적인 제한과 주어진 시간의 유한함은 나의 확장에 절대적 한계로 작용합니다. 이런 이유로 동시대에 살고 있는 수많은 각자의 세계관들은 나에게 인지되기 어렵습니다. 이를 살피고 이해하기 위해 도반들은 각자 연결된 서로 다른 네트워크로부터 인입된 신호를 자신만의 관점으로 구체화하여 서로에게 나누며 ‘나’를 ‘우리’로 확장합니다.

이 과정을 거치며 자투리 시간의 상상은 일상의 경험에서 어릴 적의 기억으로, 속해 있는 무리의 반응에서 공동체의 정서로 넘나듭니다. 변화의 조짐을 혼자만 느끼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모둠의 반응과 새로운 합의가 실시간으로 형성되고 있음을 이해하는 과정은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는 새로운 걸음마를 가르쳐 줍니다. 몇 시간의 공부가 끝나고 각자는 세상의 따뜻함을 조금씩 지니고 게릴라처럼 다시 생업으로 흩어집니다.

90도로 달궈진 사우나에서 젖은 수건을 덮어쓰고 숨을 참으며 견디는 이유는  인내를 배우고, 짧은 순간 나의 내면에 집중하고, 삶의 찰나를 감사히 여기는 마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무엇보다 일상의 차가운 공기로 돌아오는 순간 내가 견딘 어려움과 낙차 큰 청량함을 느낄 수 있기에 나를 단련하는 수련의 마음으로 우리는 또 다시 강렬한 열기로 나를 이끕니다.

다시 새해가 밝았습니다. 여러분의 공부 시작은 언제로 정하셨나요. 나이드신 분들의 일상을 올리는 블로그를 보면 공공 도서관이 빠지지 않아 공부에 대한 우리네 열정을 다시금 돌아보게 합니다. 이왕이면 은퇴 이전에 공부를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무엇보다 찬바람과 가는 비에도 산책을 미루기 십상인 나를 위해 도반과의 동행을 권해 드립니다. 혼자는 빨리 가지만 함께는 멀리 갈 수 있다는 예전 격언은 공부에서는 언제나 옳다 믿기 때문입니다.

송길영 Mind Mi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