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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성민 정치의 재구성

이준석 "왜 상계동? 보수가 여기서 당선될 만큼 개혁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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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대한민국 정치는 표 얻는 기술로 전락한 지 오래입니다. 공익보다 사익을 앞세운 정치인들이 야기한 극심한 갈등은 국민을 좌절케 하고 나라를 퇴행시키고 있습니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가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정치의 재구성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정치인들을 만나 그들의 진단과 해법을 들었습니다.

이준석 6시간 격정 인터뷰 ② #홍정욱 외 당선 경험없는 불모지 #정치인 발굴 시스템 혁신에 도전 #돈·세력 없이 가능한 창당 보여주고 #자존심 지키는 정치인과 함께할 것

오세훈 서울시장에 이은 두 번째 인물은 이준석 개혁신당 정강정책위원장입니다. 국민의힘 탈당 직전인 지난해 12월 1일과 26일 두 차례, 그리고 27일 탈당 선언 후 전화 인터뷰까지 6시간 넘게 이어진 인터뷰에서 이 위원장은 '정치의 재구성'을 묻는 말에 "우리 사회가 누적된 갈등 총량을 버티기 어려운 단계에 왔다"며 "무슨 주제든 성역 없이 토론해야 풀 수 있고, 그게 젊은 세대 방식"이라고 했습니다. 다음 주 인터뷰는 탈당 최후통첩을 한 더불어민주당 비명계 모임 '원칙과 상식'의 조응천 의원입니다.

인터뷰 주요 내용을 ▶보수 몰락의 원인 진단과 관료 동일체에 대한 문제 제기 ▶대한민국 정치 혁신을 위한 신당의 지향점 ▶세대와 젠더 갈등 해법, 크게 셋으로 나눠 소개합니다.

안혜리 논설위원

 이준석 개혁신당 정강정책위원장이 국민의힘 탈당 직전인 지난해 12월 1일와 26일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와 6시간 동안 만났다. 김종호 기자

이준석 개혁신당 정강정책위원장이 국민의힘 탈당 직전인 지난해 12월 1일와 26일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와 6시간 동안 만났다. 김종호 기자

(박성민) 지난해 12월 27일 국민의 힘 탈당 선언을 상계동의 고깃집에서 했는데, 어떤 의미입니까.

(이준석) 지난 대선 후 국민의힘 대표로서 혁신위원회를 만들 때 개혁의 기준이 상계동이었어요. 제가 상계동 출신이잖아요. 국회의원을 세 번 도전했던 지역구이기도 하고요. 노력해보니 상계동에서 하버드라는 학벌은 가질 수 있고, 또 보수당 대표라는 자리까지도 오를 수 있더라고요. 그다음 목표는 제가 상계동에서 당선되는 게 아니라, 나를 포함한 보수 정당 후보가 상계동 정도로 어려운 험지에서 모두 당선될 정도로 당을 개혁하는 거였어요. 당의 지향점이기도 하고 저 나름의 인생 실험이기도 했죠. 
지금까지 보수 후보가 당선된 건 지난 2008년 홍정욱 후보가 유일한데요. 당시 홍 후보 개인의 득표율도 물론 무시 못 하지만 그땐 민주당 쪽이 갈라져 3파전 구도 덕을 봤습니다. 보수 후보가 상계동에서 당선되는 방법은 국민의힘이 180~200석 정도 차지할 대세 분위기를 만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대선 이후 모든 행동은 이렇게 당을 변모시키는 데 집중돼 있었어요. 지금은 퇴행해버렸지만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 갈빗집에 탈당 기자회견을 했다. 개혁신당 정강정책위원장이 된 그는 야권 텃밭인 상계동에서 보수 후보가 당선될 정도로 당을 혁신하고자 했으나 좌절해 신당을 택했다고 말했다. 뉴스1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 갈빗집에 탈당 기자회견을 했다. 개혁신당 정강정책위원장이 된 그는 야권 텃밭인 상계동에서 보수 후보가 당선될 정도로 당을 혁신하고자 했으나 좌절해 신당을 택했다고 말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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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다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에 관해 얘기합니다만, 저는 다수당의 비토크라시와 제왕적 야당 대표가 지금 정치판에선 더 큰 문제라고 봅니다. 돌파할 방법은, 굉장히 어렵지만 대중적 언어로 대중적 매력을 끄는 대중 정치인이 되는 겁니다. 정치인은 권력에 맞춰 움직이는 사람과 대중에게 맞춰 움직이는 사람으로 나뉘는데 이 대표는 대중을 향해 있다고 봅니다. 개혁신당도 그런 방향입니까.

(이) 다들 국회를 어떻게 바꿔야 하느냐만 얘기하는데요. 그보다 정치인 발굴 시스템을 먼저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 구의원이 시의원 되는 비율은 높아요. 하지만 시의원이 국회의원 되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에요. 그나마 현직 의원에게 줄 잘 서는 사람에게만 기회가 열리죠. 구의원에서 국회의원까지 올라가는 체계가 잡혀있다면 구의원 진입 단계부터 야심 찬 젊은 사람들이 많은 뛰어들 거에요. 서울 기초의원 세비, 그러니까 연봉 5000만원 원짜리면 꽤 괜찮은 직업인데도 도전하지 않는 건 국회의원까지 뚫고 올라갈 길이 안 보여서 에요. 선거 운동 기간 등 정치판 자체가 정치 신인에게 너무 불리하기도 하고요. 
대중 정치를 하고 싶은 정치인으로서 이렇게 얘기할게요. 저를 향해선 '그 말을 굳이 해야 했느냐'는 사후적 평가가 많아요. 여기서 '싸가지론'도 나오고요.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욱해서 한 발언은 없어요. 상대는 5, 나는 10의 타격을 받더라도 나는 상대보다 맷집이 세다는 자신이 있으니까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요. 다른 보수 정치인들은 단기적으로 손해나는 건 절대 안 해요. 정치에 0대 100식의 일방적으로 이기는 싸움이 몇이나 된다고요. 그러니 보수가 개혁과 관련해서 국민이 원하는 메시지를 못 내요. 당장의 이해타산만 따지니까요. 꼭 필요한 연금 개혁조차 어느 지지층이 좋아할지 ARS 여론조사 숫자만 보고 판단해요. 이 한심한 상황이 계속되는 한 보수는 제대로 된 어젠다를 낼 수 없어요. 

※이준석 정강정책위원장은 지난 8일 개혁신당 1호 공약으로 공영방송 사장 임명동의제 도입을 내놨다.

(박) 지난 대선은 윤석열과 이재명이라는, 비록 보수·진보 정당의 후보지만 그 정당의 정체성이 없는 후보가 등장했죠. 그 과정에서 정치가 좋은 쪽이 아니라 나쁜 쪽으로 변질했는데, 이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봅니다. 개혁신당의 가치도 그런 데서 나오는 게 아닐까요.

(이) 네. 저는 우선 판 자체, 평가 기준 자체를 바꾸는 도전을 하고 싶어요. 그런 장이 열린다면 내가 그 판을 주도하지 않아도 좋아요. 결국 '싸가지 없는 놈'으로 끝나도 좋아요. 창당 전에 다들 '너 돈 있어, 조직 있어? ' 이렇게 묻더라고요. 이중 유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건 지지 기반뿐이에요. 잔고와 관계없이 정치하면서 돈이 부족하다고 느껴본 적 없어요. 지금 법적으로 돈 모을 수 있는 통장도 없고 후원회도 없지만요. 그런데 사람들은 계속 돈 얘기만 해요. 돈은 대중이 갖고 있어요. 과거엔 정치인이 유권자에게 돈 풀어 선거했다면 이젠 유권자가 정치인에게 돈을 모아줘서 선거해요. 
신당은 10석이든 20석이든 만드는 게 1차 과제입니다. 그다음엔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 같은 돌파를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죠. 마크롱처럼 젊은 정치인이기에 가능한 미래 설계를 보여주고 싶어요. 한국에선 다들 나이 60 넘어서 대통령이 되니 연금 개혁 등 당장은 인기 없지만 미래 세대에 꼭 필요한 모든 사안은 전부 이불 밑에 덮어두거든요. 

※개혁신당은 지난 1~2일 뉴시스 지지율 조사에서 지지율 10%로 국민의힘(37%)과 더불어민주당(33%)에 이어 3당 가능성을 보여줬다. 또 지난 3일 페이스북을 통해 당원 가입 안내공지를 올린 지 하루 만에 온라인 당원 수가 2만 명을 돌파, 현재 4만명을 넘어섰다.

(박) 어떤 사람과 함께하는지 아직 윤곽이 잘 보이지 않는다. 현직 의원 합류가 없어 생각보다 파급력이 크지 않다는 평가도 있는데.

(이) 평소 현직 의원 수로 세를 만드는 게 참 부질없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지지하는 의원들은 사실 언젠가는 홍준표의 사람이었고, 나경원의 사람이었죠. 가깝게는 대선 때 윤석열 사람들이 이제 한동훈 사람이 되려는 거에요. 제가 윤핵관인 장제원 의원더러 삼성가노(三姓家奴·2017년 대선 당시 장 의원이 반기문, 유승민, 홍준표 후보를 거친 걸 의미)라고 놀리기도 했지만 사실 국민의힘 주요 의원들은 기본적으로 4명은 다 거쳐 갔어요.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오세훈 안 될 줄 알고 안철수에 붙고, 전당대회 때 이준석이 대표 안 될 줄 알고 나경원에 붙고, 김기현 당 대표를 거쳐 지금은 한 위원장이죠. 그런 사람들을 내 편 만드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요. 대표 시절엔 오히려 이런 사람들이 내 주변에 많으면 더 위험하다고 생각했죠. 냉정하게 말해 남이 모아놓은 풀에서 내 사람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박) 신당 창당을 노아의 방주에 비유했는데, 방주에는 누굴 태울 겁니까.

(이) 이삭줍기는 당연히 합니다. 저쪽이 쭉정이를 버린 게 아니라 이삭을 버렸으면 당연히 주워야죠. 정상적인 정당이 공천할 정도의 다양성은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 할당제처럼 들리는데요. 이건 평소 주장과 배치됩니다만.

(이) 할당제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공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인구 구성을 따라갈 거라고 봐요. 대구가 참 특이한데요. 대구 국회의원 12명 면면을 보면 굉장히 대구 스타일입니다. 과거엔 경북고 나온 사람들 위주였고요. 이젠 판·검사, 지방 공무원, 경찰. 딱 관료당의 정석처럼 돼 있어요. (※이 위원장은 보수 정당과 관료가 한 몸인 동일체가 됐다고 비판했다) 이건 잘못된 거라고 봐요. 자연 비율대로 공천하면 절대 이렇게 될 수 없거든요. 다만 남녀 성비는 여성의 정치 참여가 적다 보니 자연 성비 대신 정치하는 풀 안에서의 성비를 따라갈 거라고 봅니다. 
이준석 정강정책위원장이 지난 1일 서울역 대회의실에서 열린 개혁신당 신년 하례회에서 천하람 개혁신당 창당준비위원회 위원장 등 참석자들과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뉴스1

이준석 정강정책위원장이 지난 1일 서울역 대회의실에서 열린 개혁신당 신년 하례회에서 천하람 개혁신당 창당준비위원회 위원장 등 참석자들과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뉴스1

(박) 좌파는 비도덕적 이슈를 도덕적으로 접근하고, 보수는 반대로 도덕적 이슈를 비도덕적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가령 문화판에서의 일은 거기에 맡겨야 하는데 법적 재단을 하는 식으로 논쟁을 다 봉쇄해버려요. 토론 없는 문화죠. 국민의힘 내부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 논쟁이 벌어지면 전 설득의 대상인가, 깨부숨의 대상인가를 우선 냉정하게 봅니다. 사람들이 관성으로 뭐뭐는 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하는 말에 거부감이 있고, 그런 터부를 깨고 싶습니다. 이건 제 정치 생명과도 직결돼요. 이걸 깨지 못하면 잡아먹혀요. 
기자들 질문 안 받기 시작하는 순간 정치인이 아니라는 얘기를 자주 합니다. 이번에 국민의힘에서 탈당해 개혁신당에 합류한 천하람 같은 후배들에게 '절대 너 자신을 싸게 팔아넘기지 마라'고 해요. 논쟁이 필요하면 성역없이 토론하는 자세, 살아있는 권력에도 당당히 쓴소리하는 용기, 이런 게 대한민국에서 젊은 정치를 하는 사람들의 스탠더드가 됐으면 좋겠어요. 대통령하고 싸워도 별일 없더라, 오히려 바른 소리 하면 국민은 챙겨주더라, 이런 걸 보여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