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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콜 사망인데…" 폭설에 오토바이 꽈당, 걸어서 배달 간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요새 평일엔 ‘콜사(콜사망·‘배달 주문이 없다’는 뜻의 은어)’가 허다해 악천후에도 일을 해야 월수입이 겨우 유지되는데…” 

오토바이 배달 일을 하는 A씨(25)는 8일 이틀 전 일을 떠올리며 한 숨을 쉬었다. A씨는 서울에 대설주의보가 발효된 지난 6일 오후 9시쯤 치킨과 라멘을 배달하다 서울 강서구의 눈 쌓인 한 이면도로에서 미끄러졌다. 혼자 힘으로 오토바이를 세우기가 버거워 A씨는 걸어서 음식부터 배달했다. 배달을 완료하지 못하면 음식값까지 물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A씨는 결국 근처를 순찰하던 경찰 도움으로 오토바이를 세워 귀가했다. 손·발목엔 파스를 붙였다.

지난 6일 눈이 쌓인 서울 강서구의 한 도로와 같은 날 운행 도중 쓰러진 오토바이. 사진 독자제공

지난 6일 눈이 쌓인 서울 강서구의 한 도로와 같은 날 운행 도중 쓰러진 오토바이. 사진 독자제공

배달주문 수요가 급감하며 일거리가 줄자 배달 기사들이 수입을 유지하기 위해 폭설·혹한을 뚫고 일을 나서고 있다. 배달대행업체 대리점을 운영하며 직접 라이더로 일하는 주모(27)씨는 서울 기온이 영하 12도까지 떨어진 8일 오전 “상·하의 기모 내복을 입고 그 위에 전신 방한 슈트, 패딩 점퍼까지 껴입고 출근했다”며 “이런 날엔 휴대전화 충전도 안 돼 열선을 넣은 케이스를 특별 제작해 휴대전화 방전을 막아가며 일한다”고 말했다.

눈이 내린 후 혹한까지 이어지면서 빙판길 사고도 잦을 수밖에 없다. 서울 관악구 일대에서 주로 활동하는 5년차 배달기사 강모(32)씨는 “눈 오는 날은 살짝 넘어져서 발목 삐끗한 건 다친 축에도 못 든다. 골절 정도는 생겨야 다쳤다고 한다”며 “눈 오는 날 서울대입구역 사거리만 해도 3건은 넘어지는 사고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배달기사 커뮤니티에서도 눈이 내린 지난 6~7일 사이 미끄러짐 사고 사례를 흔히 찾아볼 수 있었다. 한 배달기사는 파손된 오토바이 사진을 공유하면서 “택시타고 퇴근하려다 송정역 인근에서 1만8000원짜리 콜이 들어와 언덕길에서 브레이크 잡은 채로 30m 내려가다 공원 계단에 박았다. 8번 넘어지고 살아 돌아왔다”고 글을 남겼다. 수원에서 일한다는 또다른 라이더도 “픽업가는 도중 슬립하여 발등 골절이 됐다”며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운데 병원비만 300~400만원 나온다고 하더라”는 글을 올렸다.

지난 7일 오전 배달기사 권모씨(47)가 받은 한 배달앱의 프로모션 안내 문자. 박종서 기자

지난 7일 오전 배달기사 권모씨(47)가 받은 한 배달앱의 프로모션 안내 문자. 박종서 기자

기사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오토바이를 타는 건 ‘프모(프로모션)’로 불리는 건당·구간당 추가 수당을 받기 위해서다. 배달의민족·쿠팡이츠·요기요 등 3대 배달앱에서는 배달주문 수요가 늘어나는 주말이나 폭설 등 기상 상황이 악화돼 배달이 어려울 때 등 배달비 할증이나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지난 지난 7일에도 한 배달앱에서 기사들에게 ‘건당 3000원’의 프로모션을 지급했다. 배달기사 권모(47)씨는 “코로나 때는 추워도 고생한 만큼 벌었으니까 벌이가 괜찮았는데, 요새는 비슷한 시간을 일해도 프로모션 여부에 따라 수입이 30%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배달 기사들의 근무여건 악화는 코로나 엔데믹과 외식배달비 증가 등으로 인한 수요 급감이 근본적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앱 리테일 분석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배달앱 3사 결제추정금액은 1조5800억원으로 2020년 11월(1조2200억원) 이후 3년여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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