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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게임 확률형 아이템의 종언? '20년 황금알'이 사라진다 [팩플]

중앙일보

입력

넥슨의 메이플스토리 이미지. 사진 넥슨

넥슨의 메이플스토리 이미지. 사진 넥슨

20년 간 국내 온라인·모바일 게임산업 성장을 주도해 온 '확률형 아이템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규제가 강해지고, 업계 트렌드가 변하면서다. 확률형 아이템 외 비즈니스모델(BM)을 찾으려는 노력이 가속화되고 있다.

무슨 일이야

한때는 게임 시장에 활력을 불어다 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하지만 업계 트렌드가 변하고 규제가 점점 강화되는 지금, 상황이 달라졌다.

◦ 지난 3일 공정거래위원회는 넥슨에 확률형 아이템 판매 관련 거짓·기만행위로 시정 명령과 과징금 116억4200만원을 부과했다. 넥슨이 게임 '메이플스토리'와 '버블파이터'에서 유료 판매 아이템의 뽑기 확률을 낮췄지만, 이용자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전자상거래법 위반 행위 기준 역대 최대 과징금이다. 넥슨은 이의신청 또는 소송을 검토 중이다.

◦ 오는 3월 22일부터 게임산업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된다. 게임 속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정보를 게임사가 이용자에게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하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는 여기에 더해 게임 서비스 종료 시, 이미 사용한 유료 아이템도 환불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 등이 담긴 모바일게임 표준약관 개정도 추진하고 있다. 게임사가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한 뒤 갑자기 서비스를 종료하는, 일명 ‘먹튀’를 막겠다는 취지다.

이게 왜 중요해?

확률형 아이템만으로 돈 벌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 확률형 아이템은 한국 게임사의 온라인·모바일 성장을 견인한 핵심 BM이다. 한국게임정책 자율기구가 최근 발간한 '게임 비즈니스모델의 모든 것' 보고서에 따르면 확률형 아이템은 2004년 6월 넥슨이 일본 시장에서 '메이플스토리'에 무작위로 아이템이 나오는 '가챠폰티켓'을 선보이면서 시작됐다. 세계 최초 온라인게임 속 확률형 아이템이었다. 이후 확률형 아이템은 진화를 거듭했고, 2010년 중반 이후 엔씨소프트의 리니지M 등 모바일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와 결합하면서 한국 게임사에 큰 수익을 안겨줬다. 하지만 지금은 이 BM에 온갖 규제의 칼끝이 향해 있다. '리니지 라이크'로 불리는 유사 게임 범람으로 수익성도 예전같지 못하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확률형 아이템 20년 전성기, 끝낸 건 

황금알을 낳는 거위,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규제 상황을 자초한 건 거위의 배를 가른 게임사들이다. 확률형 아이템을 남발했고, 남용했다. 확률형 아이템은 일종의 뽑기다. 확률에 따라 지금 내게 필요한 아이템이 나올 수도, 안 나올 수도 있다. 게임사들은 기존 아이템 성능을 강화하기 위한 ‘강화형’, 여러 아이템을 종류별로 수집해야 하는 ‘컴플리트 가챠(Complete Gacha·수집형 뽑기)’ 등 여러 종류 확률형 아이템을 만들었다. 대형 게임사가 주도했고, 수익성을 확인한 다른 게임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뛰어들었다. 적당한 확률은 재미를 줬지만, 극도로 낮은 확률과 끝없는 '현질강요'는 이용자 피로도를 높였다. 희귀 아이템이 고가에 거래되는 등, 사행성 조장 비판이 빗발쳤다.

그러던 차 2021년 넥슨 메이플스토리의 확률 조작 문제가 터졌다. ‘깜깜이 확률에 속아 돈을 퍼줬다’는 이용자 분노가 극에 달했다. 이후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는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 중 하나가 됐고, 이 내용이 담긴 게임산업법 시행령 개정안 시행을 앞두게 됐다. 개정안은 게임사가 확률형 아이템 유형과 표시사항(확률 정보, 아이템 제공 기간 등)을 이용자가 알아보기 쉬운 형태로 담도록 했다. 또 새로운 유형이 나올 경우, 문체부 장관이 고시로 확률 정보 등을 표시할 수 있게 하는 근거 규정도 마련했다.

변화하는 K게임 BM

이용자 반발이 커지고 규제가 강해지자, 게임사들은 다른 BM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엔씨소프트가 지난해 국내 출시한 PC·콘솔 게임 '쓰론 앤 리버티'(TL)에는 확률형 아이템 대신 게임 진척도에 따라 보상을 주는 배틀 패스 BM만 적용됐다. 엔씨는 아마존 게임즈를 통해 올해 TL을 글로벌 시장에 출시할 계획이다. 넥슨은 올여름 PC·콘솔 신작인 '퍼스트 디센던트'를 시장에 내놓는다. 아직 구체적인 BM이 정해지진 않았지만, 확률형 아이템 BM은 배제할 방침이다. 넷마블은 지난해 방치형 RPG '세븐나이츠 키우기'에 월정액제(9900원)를 도입했다.
다만 현재 게임사 매출에서 확률형 아이템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리니지' 시리즈, '메이플스토리' 등 매출 상위권 게임은 여전히 확률형 아이템 BM을 핵심 수익 모델로 활용하고 있어서다. 한 중견 게임사 관계자는 "확률형 아이템이 더 성장하긴 어렵겠지만, 여러 BM 중 하나로 계속 남아있을 것"이라며 "이번에 공정위가 넥슨에 역대 최대 과징금을 부과하며 게임사들에 '제대로 관리하라'는 강한 사인을 준 것"이라고 말했다.

엔씨소프트의 쓰론앤리버티(TL), 넥슨의 퍼스트디센던트 사진: 각 사

엔씨소프트의 쓰론앤리버티(TL), 넥슨의 퍼스트디센던트 사진: 각 사

다른 나라는

지난 2일 한국게임산업협회가 발간한 '2023 글로벌 게임 정책·법제 연구'에 따르면 유럽 국가 중에서는 벨기에가 확률형 아이템을 '도박'으로 간주해 금지하고 있다. 영국은 확률형 아이템 관련 법률이나 규정은 두고 있지 않지만, 현지 게임협회가 11가지 자발적 원칙을 마련해 관리하고 있다. 미국은 확률형 아이템 관련 규제가 따로 없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콘솔 게임 비중이 큰 미국·유럽의 게임 시장은 한국처럼 확률형 아이템이 주요 BM은 아니였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도 확률형 아이템 유형 중 하나인 ‘컴플리트 가챠’가 2010년대 초반에 ‘지나친 사행성 조장’이라며 뉴스에 나올 정도로 사회적인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후 이를 금지하는 ‘경품표시법’이 발의돼 2016년 통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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