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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휴대전화 수거 말라" 인권위 권고, 교장 43%는 거부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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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9월 1일 교육부가 교권 확립 및 학생의 학습권 보호를 위한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가 교육 현장에 적용이 시작되면서 수업 중 휴대전화 사용 시 휴대전화를 압수할 수 있게됐다. 지난해 9월 대전 중구 동산고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휴대폰을 수거하고 있다. 이 학교는 학생회, 학부모와 협의를 통해 등교시 학생들의 휴대폰을 수거한 뒤 하교 시 돌려준다. 뉴스1

지난해 9월 1일 교육부가 교권 확립 및 학생의 학습권 보호를 위한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가 교육 현장에 적용이 시작되면서 수업 중 휴대전화 사용 시 휴대전화를 압수할 수 있게됐다. 지난해 9월 대전 중구 동산고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휴대폰을 수거하고 있다. 이 학교는 학생회, 학부모와 협의를 통해 등교시 학생들의 휴대폰을 수거한 뒤 하교 시 돌려준다. 뉴스1

“교육청이 지급한 태블릿 PC를 걷는 데 수업 시작 후 10분 넘게 실랑이합니다. 짜증 내고 욕하는 학생도 있고요. 여기서 스마트폰까지 소지하게 하면 수업 아예 못합니다.” (A고등학교 교감)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경남 소재 A고등학교 한 재학생이 “수업 전 휴대전화 강제 제출을 명시한 학칙은 인권 침해”라는 진정한 데 대해 해당 고등학교에 “교내 휴대전화 일괄 수거행위를 중단하라”고 권고했다. A고교 측은 이후 학내 심의를 거쳐 인권위 권고를 수용하지 않겠다고 회신했다. 인권위는 진정 사건에 대한 조사를 거쳐 해당 기관에 시정 조치를 권고할 수 있으나 강제력은 없다.

A고교 교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학교운영위에서 학부모·학생·교사 의견을 수렴해 불수용했다”며 “학습권·교권 침해 등 부작용이 커서 인권위 권고를 그대로 따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도 학생이 사정이 있으면 전화를 쓰게 해준다”고 덧붙였다.

인권위가 학교내 휴대전화 사용 제한과 관련한 학생들의 진정 사건에서 “등교 후 휴대전화 일괄 수거는 인권 침해에 해당한다”며 잇따라 시정을 권고한 데 대해 수용 거부하는 학교들이 늘고 있다. 특히 입시를 앞둔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이다.

8일 국가인권위에 따르면 지난해 인권위 산하 아동권리위원회가 교내 휴대전화 사용 금지 학칙 56건에 대해 이같은 취지로 시정 권고했지만 이 중 불수용이 24건(43%)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용은 17건(30%), 일부 수용 15건(27%)으로 나타났다. 휴대전화 사용 금지 학칙 개정 권고 불수용률이 2022년 연간 인권위 권고 불수용률(11%)보다 4배가량 높은 것이다.

인권위 측은 “수업 중 휴대전화 사용 제한은 정당성이 인정되나, 그 이외 시간까지 소지·사용을 제한하는 건 학생의 행동 자유권과 통신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교내 휴대전화 소지 자체를 전면 금지하거나, 등교 시 일괄 수거하는 학교들을 상대로 학칙을 바꾸라고 시정 권고를 내렸다. 하지만 고교 측에선 “수업 현실을 모르는 탁상행정식 시정 권고”라고 반발하고 있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광주광역시 B고등학교는 지난달 6일 인권위의 일괄 수거 학칙 개정 권고에 대해 ▶교육부 고시에서 학생의 휴대전화를 분리 보관할 수 있다고 규정한 점 ▶학부모 총회를 거쳐 결정한 사안인 점 ▶휴대전화를 수거하지 않았을 때 불법 촬영 및 사이버 괴롭힘이 계속 발생한 점 등을 이유로 권고를 수용하지 않겠다고 회신했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지난 5일 “교육부 고시는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일 뿐, 등교 시 학생들의 휴대전화를 일괄 수거하라는 뜻이 아니다”라며 유감을 표시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연합뉴스

국가인권위원회. 연합뉴스

인권위 권고를 일부 수용한 학교들도 휴대전화를 여전히 걷고 있는 곳이 적지 않았다. 지난해 5월 권고를 일부 수용한 경북 금성고등학교는 소지를 전면 금지하는 학칙 규정을 등교 시 일괄 제출로 완화했을 뿐이었다. 금성고 권용직 교장은 “인권위 권고는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며 “휴대전화를 미리 걷지 않으면 수업 중에 몰래 사용하는 학생을 일일이 제지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지난해 8월 권고를 일부 수용한 서울 소재 C고등학교 교장도 “등교 시 제출을 학부모는 물론 다수 학생도 원했다”며 “인권 만큼이나 다른 학생의 학습권도 중요하다”고 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스마트폰을 곁에 두고만 있어도 집중력과 성적이 20%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선진국에서도 스마트폰을 일괄 수거한 뒤 교육 목적으로 활용할 때만 배포하는 곳이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일부에선 학생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인권위 권고를 수용한 대구 D고등학교 교무부장은 “학칙을 개정해 소지를 허용해 쉬는 시간에만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며 “쉬는 시간에 쓸 수 있으니 알아서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 휴대전화 관련 마찰도 줄었다”고 말했다.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나왔다. 인천의 한 고등학교 교사 김모(30)씨는 “인강용 태블릿 PC 소지는 허용돼 그걸로 유튜브·SNS를 다 한다”며 “태블릿은 없는 학생도 많아 위화감만 조성되는 것 같다”고 했다. 고등학교 3학년 김모군은 "공기계를 제출하는 등 방식으로 몰래 쓰는 친구도 많다"고 전했다.

미국 교내 휴대폰 사용 금지 현황. 신재민 기자

미국 교내 휴대폰 사용 금지 현황. 신재민 기자

교실내 휴대전화 사용 제한은 해외에서도 논란은 있지만 사용 금지가 늘어나는 추세다. 미국 플로리다주 오렌지 카운티는 지난해 9월부터 공립학교에서 휴식 및 점심시간을 포함해 학생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아예 전면 금지했다. 크리스토퍼 럭슨 뉴질랜드 신임 총리는 지난달 1일 “뉴질랜드 전역에서 교내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앞서 “한때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뉴질랜드 학생들의 문해력이 위기”라며 등교 시 수거한 뒤 하교 시 돌려주는 공약을 내건 바 있다. 프랑스 역시 초·중교에서 교내 휴대전화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2018년부터 시행 중이다.

유엔(UN)은 지난해 ‘2023 글로벌 교육 모니터’ 보고서에서 “교실 내 혼란과 학습 부진, 사이버 괴롭힘을 막기 위해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권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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