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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시 1인분에 317만원…'사치 최고봉' 오사카 그집 메뉴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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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2023년 ‘가장 비싼 스시’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된 오사카의 ‘스시키리몬’. [사진 스시키리몬]

2023년 ‘가장 비싼 스시’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된 오사카의 ‘스시키리몬’. [사진 스시키리몬]

한국에서 최근 몇 년 사이 유행하고 있는 ‘오마카세’는 ‘맡기다’라는 뜻의 동사 ‘마카세루(任せる)’를 명사화한 말로 요리사한테 제공할 음식을 맡기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건 스시다. 그날그날 신선하고 맛있는 해산물이 달라지고 가격도 변동되기 때문에 오마카세로 시키면 그날의 추천 해산물 위주로 스시를 만들어준다. 제공하는 스시의 개수가 정해진 경우도 있지만 그만 먹겠다고 할 때까지 나오는 경우도 있다. 먹은 내용과 양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가격이 정해지지 않은 경우도 많다. 아예 오마카세밖에 없는 스시집도 있다.

오마카세 스타일의 스시집이 늘어난 건 1990년대라고 한다. 스시 오마카세는 기본적으로 1만엔이 넘는 가게가 많고 현재 최고로 비싼 가게는 오사카에 있다. ‘스시키리몬’이라는 스시집의 ‘극(極) 오마카세 코스’다. 1인분에 스시 20점이 제공되는데 가격은 무려 35만엔(약 317만원)! 2023년 ‘가장 비싼 스시’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록됐다. 최고급 참치와 전복·캐비어·트러플·푸아그라 등 고급 식재료를 써서 25년 이상 경력을 쌓아온 스시 장인이 만든다.

고급 프랑스·일본 식당에서 그때그때 제철 식자재로 나오는 오마카세 코스는 대부분 비싸지만 메뉴에 없는 것도 나오고 요리사가 자리에 와서 직접 설명해주는 등 특별히 대접받는 느낌이 있다.

일본에는 야키니쿠·덴푸라·디저트 등 오마카세가 없는 것이 없을 정도다. 내가 가장 자주 먹는 오마카세는 ‘쿠시카츠’다. 고기나 해산물, 야채 등을 꼬치에 꽂아 튀기는 요리로 오사카의 명물이다. 내가 주문하면 늘 비슷한 것만 먹게 되는데 오마카세는 뭐가 나올지 모르는 설렘도 있고 처음 맛보는 별종이 나오기도 해서 재미도 있다. 그 외에도 일본에서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오마카세로는 닭꼬치·오뎅 등 카운터에서 먹는 음식이 많다. 일본 오뎅은 어묵뿐만 아니라 계란·무·곤약 등 다양하다.

메뉴에 오마카세가 없어도 당연하게 오마카세로 나오는 가게도 있다. 도야마현은 물과 쌀이 맛있어서 사케로 유명한데, 이곳의 이자카야 중에는 사케 오마카세가 있다. 점주가 주는 대로 마시는 집인데, 어디에도 그렇게 쓰여 있진 않지만 손님이 뭘 마시고 싶다고 주문하는 건 안 된다. 대신 점주는 손님의 오늘 몸 상태나 1차로 뭘 먹었는지, 지금 기분은 어떤지 등 여러 가지 질문을 하고 “그럼 이거 마셔봐!” 하고 자신 있게 한 잔 내밀어준다. 처음 갔을 땐 당황스러웠는데 그 전까지 몰랐던 사케를 맛볼 수 있고, 왜 그 사케를 골랐는지 점주의 설명도 흥미로워서 도야마현에서 근무하는 2년 사이 자주 들렀다.

개인적으로 오마카세의 매력은 점주나 요리사와의 ‘대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뭐가 제철이고, 어떻게 조리했는지, 이 요리에는 무슨 술이 잘 어울리는지 등 음식을 둘러싼 이야기를 전문가한테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예 메뉴판이 없이 요리도 술도 오마카세로 나오는 가게도 있다.

오마카세가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라는 건 일본에서도 보도되고 있다. ‘사치의 상징’이라고 소개한 기사도 봤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중국·싱가포르에서도 유행이라고 한다. 다만 한국처럼 다양한 오마카세가 있는 건 아니고 대부분 고급 스시 코스를 가리킨다. 특히 미국에서는 영화 ‘스시 장인: 지로의 꿈’ 영향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스시 장인 오노 지로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장인에 대한 동경이 오마카세 인기의 배경이라는 건데, 한국에서는 이런 해석보다는 젊은 사람들의 ‘이벤트’에 가까운 것 같다.

원래 오마카세는 ‘맡기는 것’이라는 뜻으로 일본에선 음식 외의 분야에서도 쓰인다. 미용실이나 네일숍에서 “오마카세로 해 주세요”라고 말할 수도 있다. 전문가의 눈으로 나한테 어울리는 스타일로 해 달라는 얘기다.

일본 온라인 주문 사이트를 보면 꽃·케이크·과일·맥주 오마카세도 넘쳐난다.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기보다 가게에 맡기고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처럼 뭐가 올지 모르는 기대감을 즐기는 방법이다. 그 대표 격이 ‘후쿠부쿠로’가 아닐까 싶다. ‘행운의 가방’이라는 뜻으로 뭐가 들어 있는지 모르는 가방을 새해에 사는 풍습이 있다. 어떨 땐 지불한 금액의 몇 배 비싼 것이 들어 있는 경우도 있어서 복권을 사는 것과 비슷할 때도 있다. 이 또한 일본의 별별 오마카세 문화다.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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