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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GB 정보는 오염됐었다…영화같은 정보전, 가스관 폭발 전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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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제3전선, 정보전쟁] 소련 ‘라인X’ 사건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왼쪽 셋째)이 지난 1981년 7월 19일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왼쪽 둘째)과 비공개 회담을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미테랑 대통령은 소련 스파이 관련 정보를 제공했다. [사진 미국 내셔널아카이브]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왼쪽 셋째)이 지난 1981년 7월 19일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왼쪽 둘째)과 비공개 회담을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미테랑 대통령은 소련 스파이 관련 정보를 제공했다. [사진 미국 내셔널아카이브]

1981년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서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도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에게 짧은 환담을 요청했다. 프랑스와 중요한 외교현안이 없어 가벼운 마음으로 환담장에 도착한 레이건과 달리 미테랑은 사뭇 진지한 표정이었다. 미테랑은 ‘작별문서(Farewell Dossier)’라고 적힌 문서봉투 하나를 건넸다. ‘작별’이라는 글씨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레이건에게 미테랑은 낮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프랑스 정보기관(DST)이 ‘작별’이라는 암호명을 가진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의 이중 스파이(본명: 블라디미르 베트로프)로부터 입수한 내용인데, KGB가 서방의 과학기술을 훔치기 위해 조직적인 정보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취지였다. 레이건은 귀국 후 문서를 윌리엄 케이시 중앙정보국(CIA) 국장에게 건넸다. 이를 받아본 케이시는 깜짝 놀랐다. KGB가 서방의 첨단기술을 훔치기 위해 과학기술 전문스파이 조직을 신설한 사실에서부터 그 동안의 주요활동 내용, 그리고 서방에서 침투한 과학기술 스파이 명단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케이시는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문서 내용대로라면 서방의 과학기술이 소련의 국방력과 산업을 키워줬다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이었다. 즉각 CIA, 국방부, 국무부의 극소수 관계자들을 불러 ‘작별문서’ 내용을 밤새 정밀분석했다. KGB의 과학기술 정보전 비밀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비밀의 문을 열고 들어간 CIA가 역(逆) 정보전을 펼치면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영화같은 과학기술 정보전이 시작되었다.

KGB, 이중 스파이 즉결 처형

모스크바 소재 KGB 본부 건물 전경. [사진 위키피디아]

모스크바 소재 KGB 본부 건물 전경. [사진 위키피디아]

소련은 1960년대 들어 군사 및 산업기술이 서방에 비해 점점 뒤처지자, 짧은 시간에 따라잡기 위해 서방의 첨단 과학기술을 훔치기로 결정했다. 이에 1964년 KGB는 과학기술 전담팀인 ‘라인X팀’을 창설했다. 300여명에 달하는 대규모로 모두 박사급 과학자들로 구성했다. 임무의 중요성을 감안해 KGB의 핵심부서인 제1총국에 배치했다. 라인X팀은 기대에 부응했다. 무엇보다 당장 산업생산력을 높일 수 있는 기초설비 기술을 대량 구해 왔다. 이에 고무된 소련 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는 1971년 정치국회의에서 1980년대초 서방의 과학기술력을 따라잡겠다고 공언했다. KGB도 자신감이 있었다. 1940년대 중반 미국의 핵개발프로그램인 맨하탄프로젝트에 침투해 핵무기 기술을 완벽하게 훔쳐 소련의 핵무기 개발을 성공시킨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소련 방문으로 조성된 데탕트 분위기는 라인X팀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닉슨은 미·소 냉전의 긴장을 완화하는 실천방안의 하나로 과학기술 교류를 제안했다. 라인X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공식적인 과학기술교류 채널을 이용하면 서방 첨단기술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정상간 과학기술 교류 합의 정신’을 내세워 컴퓨터·반도체 회사 방문에 필요한 미 국방부의 까다로운 승인절차를 무난히 통과할 수 있었다. 미·소 양국이 1975년 데탕트의 상징적 행사로 실시한 역사적인 아폴로·소유즈 우주선 도킹 이벤트는 미국의 우주기술을 수집하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됐다. 미국 당국은 그런 낌새를 눈치챘지만 데탕트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눈감아 주는 수 밖에 없었다. 이처럼 70년대 라인X팀의 과학기술 정보획득은 공식 교류 채널의 막후에서 과감하게 진행됐다.

KGB의 라인X 활동을 프랑스에 제공한 이중 스파이 블라디미르 베트로프. 그는 결국 이중 스파이임이 드러나 처형됐다. [사진 위키피디아]

KGB의 라인X 활동을 프랑스에 제공한 이중 스파이 블라디미르 베트로프. 그는 결국 이중 스파이임이 드러나 처형됐다. [사진 위키피디아]

1980년대 들어 KGB의 기술정보전은 당시 막 시작된 컴퓨터 해킹을 시도하는 등 더욱 도전적으로 전개되었다. 1980년 세계 최초의 사이버 해커인 독일인 마커스 헤스를 고용해 미국의 반도체, 인공위성, 우주개발 기술 등에 관한 기밀정보를 빼냈다. 1983년 일본 히타치(日立) 직원 포섭사건에서와 같이 첨단회사에 다니는 직원에게 퇴직 후 직장보장을 미끼로 접근하는 등 닥치는대로 첨단 과학기술을 빼내 왔다. 그 결과 1980년대 초반 소련 방산기술의 50% 정도는 서방기술에 의존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라인X를 내세운 KGB의 기술정보전은 눈부신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라인X팀의 호황은 여기까지였다. CIA가 레이건 대통령으로부터 건네받은 ‘작별문서’를 토대로 KGB의 과학기술정보전에 그야말로 작별을 고할 역(逆) 정보활동을 가동했다. CIA는 서방에 침투한 라인X 요원들을 즉각 추방하지 않고 역이용했다. 정밀하게 위조된 신제품을 만들어 라인X팀을 통해 은밀하게 소련으로 흘러 들어가게 해, 이를 사용한 소련의 산업 및 군수현장이 타격을 받도록 하는 전략이었다. 일종의 트로이목마 작전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82년 6월 30일 시베리아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폭발사건이다. 당시 CIA는 라인X팀이 가스 파이프라인의 압력을 자동 조절하는 제어 소프트웨어를 구하기 위해 캐나다 업체를 방문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CIA가 이 캐나다 업체를 먼저 찾아가 선수를 쳤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가스 파이프라인의 이음새와 용접 부분이 버틸 수 없을 정도로 큰 가스 압력을 발생시키는 소프트웨어를 미리 주문해 두었다. 이를 까맣게 모르고 있던 라인X팀은 이 제품을 구매해 시베리아 가스 파이프라인에 투입했다. 이 제품들은 미국의 의도대로 시스템 오작동을 일으켜 대규모 폭발을 일으켰다. 당시 시베리아 가스산업은 소련경제를 떠받치는 중추 산업이었기 때문에 소련 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다. 더욱이 이런 사건들이 산업현장에서 빈발하자 소련은 급기야 외국산 신기술 사용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산업현장의 혼란은 불 보듯 뻔했다.

미·중 정보전, 미·소 전례 반복할지 관심

이 즈음 라인X의 블라디미르 베트로프가 KGB에 의해 이중 스파이 행각이 드러나 즉결 처형됐다. 베트로프의 처형으로 종전과 같은 역 정보활동을 더 이상 가동하기 어렵게 되자, CIA는 ‘작별문서’에 적힌 라인X 요원들의 제거작업에 나섰다. 해당 국가들과 협력해 나토는 물론 일본, 태국 등에 침투한 소련 스파이들을 모두 체포하거나 추방시켰다. 라인X팀이 일망타진되자 소련의 산업은 더욱 흔들렸다. 고르바초프 시절 과학기술보좌관을 지낸 랄드 사그디브 교수의 지적처럼, 라인X팀에 의존한 소련의 산업 및 군수업계는 휘청거렸고 그 여파로 소련의 경제, 안보에 서서히 파열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정보전쟁

정보전쟁

미국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기술정보전 과정에서 쉽게 깨질 것 같지 않던 소련 체제의 취약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레이건 정부는 소련이 스스로 붕괴의 길로 가도록 종합전략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대(對)소 소진전략을 담은 1983년 국가안보결정지침 75호(NSDD-75)는 이 같은 배경하에서 수립된 것이다. CIA의 기술정보전은 레이건 정부가 대소 전략을 평화공존에서 붕괴 유도로 전환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레이건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을 지낸 리차드 알렌이 CIA가 역 기술정보전을 통해 소련의 산업공급망을 망가뜨려 놓았다고 평가한 것은 이를 뒷받침한다.

문명사적 관점에서 보면 과학기술은 인류 역사를 발전시킨 원동력이다. 두 말할 나위없이 과학기술은 인류의 공동 문화유산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정치, 안보, 국익과 만나면 양보없는 경쟁으로 변한다. 미·소간 과학기술 정보전은 이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더욱이 오늘날 과학기술은 국가생존이 걸린 첨단무기 개발의 핵심요소로 국가안보의 비책이 되고 있다. 여기에다 미·중 간 패권경쟁과 맞물려 과학기술 정보전은 더욱 심화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작년 5월 일본에서 열린 G7정상회의에 이어 10월 미국에서 개최된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정보동맹체 회의에서 미국과 서방이 중국의 첨단 군사기술 접근을 차단키로 합의한 것이 이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과학기술 전문스파이 조직을 만든 소련의 결단이나 이를 역이용한 CIA의 역 정보활동은 모두 정보사(史)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비책들이었다. 앞으로 미·중이 사활적 과학기술 정보전을 펼치면서 이 같은 전례를 반복할지 또는 새로운 정보전을 펼칠지 자못 궁금하다. CIA 홈페이지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우리는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간다.” 

최성규 국가정보원에서 장기간 근무하며 국제안보 분야에 종사했다. 퇴직 후 국내 최초로 비밀 정보활동의 법적 규범을 규명한 논문으로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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