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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한동훈 비대위’가 총선 특효약 되려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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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2호 31면

이정민 칼럼니스트

이정민 칼럼니스트

4월 총선의 향배를 가름할 가장 큰 변수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다. 민주당 의원은 “한동훈 비대위가 혁신하면 민심의 흐름이 바뀔 것”이라고 봤다. 여야를 통틀어 한 위원장만큼 존재감을 드러낸 정치인을 찾기 힘들다. 불과 6개월여만에 차기 대선 후보 선호도 여론조사(중앙일보-한국갤럽)에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22%)를 누르고 1위(24%)에 올라설 만큼 상승세가 뚜렷하다. 깔끔한 외모와 패션 감각, 스마트하고 정의로운 검사 이미지, 야당 의원들을 KO패로 몰아붙이는 속사포 설전을 통해 노쇠하고 나약한 보수도, 낡고 부패한 운동권 진보도 모두 밀어내며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눈앞의 총선이 급한 여당이 “아껴 쓸 때가 아니다. 보석이라면 빨리 써야 한다”며 그를 조기 등판시킨 건 이런 스타성 때문일테다.

대선 후보 지지 1위 오른 한동훈
“운동권 특권 정치 청산” 앞세워
정부 견제론, 특검 찬성 여론 부담
이준석 “윤석열 키즈 벗어나야”

선데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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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한동훈 비대위’가 총선 특효약이 될수 있을까. 현재로선 의문이다. 뛰어난 개인기에도 불구하고 ‘한동훈=세련된 윤석열’이라는 이미지를 털어내지 못하고 있어서다. 우선 한 위원장이 들고나온 “운동권 특권 정치 청산” 구호는 윤 대통령이 입에 달고 사는 “이권 카르텔과 약탈 정치 청산”과 한 묶음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곳곳에 둥지를 튼 권력의 새로운 적폐, 부패의 카르텔을 혁파하겠다”(2021년 대선 후보 수락 연설)며 야당을 범죄 집단시하고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독불장군식 국정 운영을 해왔다. 비리 수사와 국정 운영을 구분하지 못하는 아마추어리즘이 초래한 정치의 실패, 국정의 실패는 정부 견제론(53%)이 정부 지원론(39%)을 압도하는 참담한 성적표를 남겼다(중앙일보-한국갤럽 조사).

한 위원장은 윤석열 대 이재명 대결이 아닌, 한동훈 대 이재명 구도를 원할 것이다. 정권심판론을 희석하고 30%대 지지율에 갇혀있는 ‘윤석열 리스크’를 걷어내야 한 위원장에게도, 국민의힘에도 승산이 있다. 그런데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운동권 특권세력과 개딸전체주의와 결탁해 자기가 살기 위해 나라를 망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부각한 게 패착이다. 아젠다 세팅에서 윤 대통령과 차별화하지 못하면서 되레 야당의 ‘아바타’ 공세만 더 부각시켜준 셈이 됐기 때문이다. 586 정치 청산에 대한 시중 여론이 높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특정 세력을 청산하기 위해 정치한다는 발상은, 검사의 직업윤리로썬 훌륭할지 모르나 사회 통합을 통해 국민적 역량과 에너지를 극대화해야 할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아닐 것이다. 야당 비난에 앞서 새정치에 대한 비전과 꿈을 제시하는 게 그토록 혐오해온 ‘여의도 정치’와 차별화되는 ‘X세대 정치’ 아닐까.

한동훈 비대위는 국민에게 실망과 피로감을 끼친 데 대한 반성도, 사과도, 이렇다 할 청사진을 제시하지도 못하고 있다. 2011년의 ‘박근혜 비대위’가 당명과 색깔을 바꾸고, 김종인의 경제 민주화를 수용하고 20대 이준석을 영입하는 등 “뼛속까지 바꾸겠다”는 말을 실천해 총선 승리를 이끌었던 것과 비교하면, 아쉬운 대목이다. 사실 집권 2년도 안된 여당이 비대위 체제로 총선을 치르게 된 것부터 정상은 아니다. 윤핵관의 오만, 이준석-김기현-인요한 지도부의 볼썽사나운 다툼, 최근의 부산 엑스포 사태에 이르기까지 독선과 독주의 리더십과 수직적 당정 관계가 낳은 재앙이다. 그런데도 성찰도 반성도 찾아볼 수 없다. 기껏 “상대가 초현실적인 민주당인데 왜 국민의힘이 압도하지 못하는지 반성하자”거나 “국민들에게 정말 달라지겠다고 약속드리자”는 정도가 반성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겠으나 이조차도 무엇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쌍특검’(대장동 50억 클럽+김건희 여사 특검) 논란은 총선 판도는 물론 한 위원장의 정치 생명과도 직결되는 뇌관이다. 예상대로 윤 대통령은 어제 거부권을 행사했다. 여야 대치는 더 격렬해질 참이다. 정부 여당이 특검법을 반대하는 건, 논리적으론 맞다. ▶총선을 노린 여론조작 ▶여야 합의 관례를 무시한 야당 단독 처리 ▶관련자들의 인권 유린 소지 등 문제가 수두룩하다. 문제는 거부권 행사 반대 여론이 60~70%에 육박할 만큼 민심이 싸늘해지고 있다는 데 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데는 그때 그때 국민들 앞에서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불거진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만 해도 여태 “답변하지 않겠다”며 뭉개고 있지 않은가.

한 위원장의 책임이 가벼워 보이지 않는다. 그가 윤 대통령 내외와 친분이 각별한데다 주무부처 장관을 지냈기 때문이다. 특별감찰관이든 뭐든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일을 막을 수도 있었다. 한 위원장은 비대위원장 수락 직후 ‘총선후 특검’을 내비친 적이 있지만 웬일인지 그 후론 말을 아끼고 있다. 그가 내심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여당의 선거 총사령탑으로서 60~70%의 반대 여론엔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 위원장의 고심이 깊어지는 이유일 테다. 신당 창당을 선언한 이준석 전 대표의 훈수에 해답이 있을지 모르겠다. “한동훈은 윤석열 키즈고, 나는 박근혜 키즈지만 이를 넘어섰다. 한 장관도 윤석열 키즈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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