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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서해 200발 포격…군, 두 배로 맞불 응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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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2호 01면

5일 오후 백령도 주민들이 대피소에 모여 있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북한군이 백령도 북방 장산곶 일대와 연평도 북방 등산곶 일대에서 200여 발의 해안포를 발사했다고 발표했다. [사진 독자]

5일 오후 백령도 주민들이 대피소에 모여 있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북한군이 백령도 북방 장산곶 일대와 연평도 북방 등산곶 일대에서 200여 발의 해안포를 발사했다고 발표했다. [사진 독자]

북한군이 5일 오전 서해 백령도와 연평도 부근 북방한계선(NLL) 수역 인근에 200여 발의 해안포를 발사했다. 이에 우리 군은 두 배인 400여 발의 해상 사격 훈련으로 맞대응했다. 이성준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북한이 지난해 11월 23일 일방적으로 9·19 군사 합의 파기를 주장한 이후 오늘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서해 완충 구역 내에서 포병 사격을 재개했다”며 “포의 탄착 지점은 NLL 북방(북한 수역) 일대”라고 밝혔다. 이 실장은 “이는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고 긴장을 고조하는 도발 행위”라며 “이번 위기 상황의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에 있음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덧붙였다.

북한군 포격 이후 우리 군은 이날 오후 북측 방향으로 400여 발에 달하는 대응 사격을 실시했다. 합참에 따르면 백령도 해병 6여단과 연평도 소재 연평부대가 이날 오후 3시쯤부터 K9 자주포와 전차포 등을 동원해 해상 사격 훈련을 했다. 서북도서에 배치된 해병부대가 해상 사격 훈련을 한 건 2018년 9·19 합의 후 처음이다. 반면 북한은 9·19 합의 후 지금까지 16차례에 걸쳐 해상 사격을 했다고 국방부는 밝혔다.

북한의 도발에 대응할 때 공식적으로는 유엔사 교전 규칙(AROE)에 의거해 ‘비례 대응 원칙’을 따르게 돼있지만 군 내부적으로는 ‘충분성의 원칙’이 반영된 교전 규칙을 준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북한의 도발에 대해 2~3배로 응징하는 방식을 뜻한다. 실제로 2014년 북한이 NLL 남쪽으로 포탄 100발을 발사했을 때 300발을 응사하기도 했다. 이 같은 방식에 따라 이번에도 두 배로 돌려준 셈이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이날 북한의 포 사격과 우리 군의 대응 사격으로 연평도·백령도에는 주민 대피령이 내려졌고 페리 운항도 전면 통제됐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북한의 무모한 도발에 우리 군은 적이 다시는 도발 엄두를 못 내도록 완전히 초토화하겠다는 응징 태세를 갖춰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북한군 총참모부는 이날 오후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연평도·백령도 북방에서 해안포를 발사한 것은 새해 한국군 훈련에 대한 대응”이라며 “우리 군이 서해 완충 구역으로 해안포 사격을 했다는 대한민국 군부 깡패들의 주장은 여론을 오도하기 위한 완전 억지 주장”이라고 비난했다. 총참모부는 그러면서 “적들이 소위 대응이란 구실 밑에 도발로 될 수 있는 행동을 감행할 경우 우리 군대는 전례 없는 수준의 강력한 대응을 보여줄 것”이라며 “민족·동족이란 개념은 이미 우리의 인식에서 삭제됐다”고 주장했다.

김정은, 작년 말부터 말폭탄 … 실제 행동 옮기며 한·미 압박

북한의 이날 기습적인 해안포 도발과 관련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단순한 일회성 도발 이상의 의도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한반도 긴장 고조를 겨냥한 북한의 도발이 ‘말 폭탄’ 수준에서 ‘실제 행동’으로 옮겨졌다는 점에서 적잖은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이에 더해 북한이 이날 도발로 포문을 연 뒤 수위를 점차 높여가며 한국과 미국을 동시에 압박할 것이란 관측도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전쟁과 평화 중 무엇을 선택하겠느냐’는 낡은 대남 심리전 수법을 다시 꺼내든 것이란 해석이다.

이와 관련, 군 관계자는 이날 “북한군의 포병 사격이 실시되기 전 이미 이상 징후가 포착돼 이날 오전 감시 태세를 격상한 뒤 만에 하나 벌어질 무력 충돌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군 내부에선 북한의 이번 도발을 예견된 수순으로 보고 있었다는 얘기다.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쏟아낸 일련의 도발적 발언은 예고편 성격이었다. 김 위원장은 지난 연말 “언제든지 무력 충돌이 생길 수 있다는 걸 기정사실화하라”고 지시하는 한편 남북관계를 ‘전쟁 중인 두 교전국가 관계’로 규정하는 등 연일 긴장의 강도를 높여왔다. 김 위원장이 직접 ‘영토 완정(完整·나라를 완전히 정리하여 통일함)’ 의지를 피력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 만큼 새해 한·미 양국의 주요 선거를 앞두고 ‘준비된 도발’을 통해 한반도 긴장 수위를 한껏 끌어올려 ‘몸값 높이기’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유력했다.

북한이 이날 선을 넘지 않는 수준에서 첫 도발 수위를 조절한 점도 주목된다. 실제로 이날 북한의 포병 사격 탄착 지점은 대부분 서해 북방한계선(NLL) 이북이었고, 장사정포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거리가 짧은 해안포가 주로 동원됐다. 일단 상황 관리가 가능한 수준으로 도발에 나선 셈이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이날 도발을 시작으로 저강도에서 고강도로 서서히 도발 수위를 높여나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김 위원장이 오는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정권 교체 가능성을 탐색하면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며 향후 미국과의 협상 국면에서 유리한 상황을 조성하려 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북한이 지난해 말부터 비무장지대(DMZ) 내 경의선 육로와 육로 인근 감시초소(GP) 일대에 지뢰를 매설하고 9·19 군사 합의에 따라 철거한 GP를 복원한 사실이 이날 확인됐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지난 연말 총화 기간을 거치면서 군사 도발과 관련한 시나리오가 완성됐을 것”이라며 “서해5도는 물론 군사분계선(MDL)과 공중까지 도발 영역을 확장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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