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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전쟁 위험 커졌다"...이란 폭발 테러에 '저항의 축' 움직이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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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관망하던 이란 본토에서 대규모 사상자를 낸 폭탄 테러가 발생하며 중동 전역으로의 확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란은 테러의 배후로 미국과 이스라엘을 지목하며 강력한 응징을 예고했다. 반면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런 주장을 부인하면서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이번 테러를 저질렀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외신과 국내외 전문가들은 "누가 배후이더라도 중동 전쟁의 위험이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전날 레바논에선 이스라엘의 드론 공격으로 하마스 서열 3위가 사망하고, 예멘의 친이란 반군 후티는 한 달 넘게 홍해상 선박을 공격하는 등 중동 정세는 격랑에 휩싸였다. 미국은 확전 차단을 위해 4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을 중동에 파견하기로 했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지난 3일 테헤란에서 가셈 솔레이마니 4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는 모습. AFP=연합뉴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지난 3일 테헤란에서 가셈 솔레이마니 4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는 모습. AFP=연합뉴스

이란 "혹독한 대가"...미·이는 연루 강력 부인 

CNN·AP통신 등에 따르면 아직까지 배후를 자처하는 집단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날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시온주의 정권(이스라엘)에 경고한다"며 "당신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보복을 다짐했다. 무함마드 잠시디 이란 대통령실 정무 부수석은 "이번 테러의 배후에 미국과 이스라엘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는 "이런 재앙은 반드시 강경한 대응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앞서 이날 2020년 미국에 의해 암살당한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정예군(쿠드스군) 사령관의 4주기 추모식이 케르만 지역에서 열리던 도중 폭탄이 터져 최소 84명이 사망하고, 284명이 다쳤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테러가 1979년 2월 이슬람혁명 이후 이란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 가운데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낳았다고 전했다.

미 정부는 이번 테러와의 연관성을 강하게 부인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이스라엘도 동맹국들에게 '이번 폭발과 우린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서방은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집단인 IS가 숙적인 시아파의 맹주 이란에 테러를 가했을 수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IS는 2018년 이란 혁명수비대 행진을 겨냥한 공격 당시 배후를 자처하는 등 그간 여러 차례 이란을 공격해왔다. 미 고위 당국자는 이날 "IS가 과거에 했던 것과 같은 종류의 테러인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2020년 미군에 암살되기 전까지 IS 격퇴에 앞장섰다는 점도 이런 분석에 힘을 싣고 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이 3일 브리핑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이 3일 브리핑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중앙일보에 "그간 이스라엘은 표적을 제거하는 '외과 수술식' 공격을 벌여왔다"며 "가뜩이나 가자지구 전쟁으로 국제사회의 압박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이런 테러를 벌였을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IS가 이번 일을 벌였다면 이·하 전쟁으로 중동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높을 때, 그것도 이란의 군사 영웅 추모식 시점을 골라 존재감 과시에 나선 것일 수 있는데 다만 아직까지 배후를 자처하지 않는 점은 의아하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이란 내 혼란 야기를 목적으로 한 이란 반정부 세력의 테러일 가능성도 제기한다.

"이란, 실제 배후 무관하게 이스라엘에 보복할 것"  

문제는 이란이 실제 개입 여부와 별개로 테러의 배후로 이스라엘을 지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란혁명수비대와 가까운 소식통은 NYT에 "특정 테러 단체가 배후를 자처하더라도 이란이 이스라엘을 테러의 가해자로 결론 내릴 것"이라고 전했다. 이란이 실제 보복 공격에 나설 수 있다는 의미다. 가디언은 "이란 폭탄 테러 배후가 누구든 중동 지역 전쟁을 촉발할 위험이 있다"고 평했다.

지난 3일 이란 남부 도시 케르만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AFP=연합뉴스

지난 3일 이란 남부 도시 케르만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AFP=연합뉴스

이·하 전쟁의 불씨는 중동 곳곳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이날 레바논 남부에 있는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근거지를 공격해 4명을 사살했다. 이스라엘군은 전날에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외곽에 있는 하마스 시설을 드론으로 폭격해 하마스 전체 서열 3위인 살레흐 알아루리 등이 사망했다. 3일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알아루리 사망과 관련 "적이 레바논에 대해 전쟁을 벌이려 한다면 우리는 어떤 제한도, 규칙도, 구속도 없이 싸우겠다"고 했다.

홍해를 둘러싼 후티 반군과 서방의 긴장도 고조되고 있다. 미국·독일·일본 등 12개국은 이날 공동성명을 내고 "후티 반군이 계속 지역의 중요한 수로에서 생명과 세계 경제, 무역의 자유로운 흐름을 위협한다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후티 반군은 지난해 11월부터 하마스 지지를 명분삼아 미사일과 드론으로 홍해에서 민간 선박을 잇따라 공격하고 있다. 지난달 31일엔 미군이 홍해에서 후티 반군과 교전을 벌여 반군 10명이 사망했다. 이스라엘과 전쟁 중인 하마스와 헤즈볼라, 후티 반군 등은 '저항의 축'으로 불리는 친이란 군사 세력이다.

후티 반군의 군용 헬리콥터가 지난해 11월 홍해에서 화물선 위를 날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후티 반군의 군용 헬리콥터가 지난해 11월 홍해에서 화물선 위를 날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동전쟁 확률 높아져" "가능성 낮아"  

중동의 이같은 일촉즉발 정세와 관련 제임스 스타브리디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전 사령관은 NYT에 "중동 지역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15%에서 이제 30%로 올라갔다"고 말했다. 반면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대우교수는 "이란이 이스라엘과 미국을 상대로 전격적인 공격을 벌이거나 저항의 축이 규합해 전쟁에 나설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다만 이스라엘 인사 표적 암살 등은 벌일 수 있다 "고 전망했다.

지난 2020년 미국이 솔레이마니를 제거한 후 이란은 보복 차원에서 이라크 내 미군 기지 두 곳에 미사일 공격을 했지만, 일부러 사람이 없는 모래 사막을 타격해 확전을 피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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