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선 레이스에 마음 졸이는 韓배터리 업체들,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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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3일(현지시간) 미국 아이오와주 코럴빌 하얏트호텔에서 연설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아이오와주는 이달 15일 공화당 당원대회에서 지지 대통령 후보를 정한다. [AFP=연합뉴스]

지난달 13일(현지시간) 미국 아이오와주 코럴빌 하얏트호텔에서 연설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아이오와주는 이달 15일 공화당 당원대회에서 지지 대통령 후보를 정한다. [AFP=연합뉴스]

“사실 호재라고 보긴 어렵죠.”
국내 배터리 업체 관계자는 최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차기 대선 지지율 1위를 기록하는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현재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만든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폐기하겠다는 의지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시사해왔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2022년 8월부터 IRA를 시행하고 미국에서 생산한 전기차 배터리에 보조금을 지급해왔는데, 미국에 진출한 국내 배터리 기업들도 IRA 수혜를 입었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은 지난해 IRA로 얻은 영업이익이 1조원에 달하고, 2025년엔 10조원까지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돼 IRA를 폐기할 경우 이런 기대는 사라지게 된다.

특히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미국 투자를 확대한 상황을 고려하면 IRA 폐기 시 수익성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7조2000억원을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북미 최대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세우고 있다. 스텔란티스와의 합작 공장을 미국에 짓고 있는 삼성SDI는 공장 가동을 앞당겨 올해 말 대량 배터리 생산을 시작하기로 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지난 2일 공개한 ‘미국의 공급망 재편 정책에 대한 기업의 대응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될 경우 미국의 전기차 및 배터리 산업은 막대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미국에 투자를 진행 중이거나 계획 중인 한국 기업들은 의사결정 시 이러한 중대한 정치적 요인을 주요 변수로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유안타증권도 “배터리 기업의 저조한 실적은 올해 내내 지속할 것”이라며 미 대선 결과에 따른 IRA 불확실성을 그 이유 중 하나로 꼽았다.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LG에너지솔루션 공장. 사진 LG에너지솔루션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LG에너지솔루션 공장. 사진 LG에너지솔루션

“트럼프보다, 美의회 구성이 변수”

그러나 ‘트럼프 당선’을 곧 ‘IRA 폐기’로 보는 건 성급하단 분석도 있다. 조재필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에너지화학공학과 특훈교수는 “IRA 폐기라는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라며 “트럼프 공약의 핵심은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인데, 그 대표 격인 IRA를 폐기하겠느냐”고 반문했다.

IRA는 미국에서 제조한 전기차, 배터리 등에만 보조금을 주기 때문에 “미국의 첨단 기술 공급망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미국 내 제조업을 부양하고, 신규 일자리까지 만들어낸다”(뱅크오브아메리카)는 평가를 받는다. 게다가 IRA 폐기는 의회 상·하원의 과반수 동의를 얻어야 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의지보다는 의회의 구성이 더 중요한 면도 있다. 하원은 공화당이 과반을 차지하지만, 상원은 민주당(친민주당 성향 무소속 포함)이 과반이다. 그래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더라도 IRA를 폐기하기보단 일부 조정하는 데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내 배터리 업계도 미 대선 결과보단 시장 성장성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미국 배터리 공장은 IRA 때문이 아니라 북미 전기차 시장의 성장 가능성 때문에 건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는 미국 미시간주에 배터리 공장을 지어 2012년부터 배터리를 생산해왔다. 이 관계자는 “IRA 폐기 또는 축소가 현실화한다면 타격이 없진 않겠지만 ‘전기차 시장 성장에 따른 배터리 수요 확대’라는 큰 방향이 지속되는 한 사업 방향도 크게 바뀌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둔화되며 배터리 시장도 올해 타격을 입을 것이란 전망이 다수여서 정치보단 시장의 영향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보고서를 책임 집필한 조동희 계명대 경제통상학과 교수는 “반도체와 배터리 생산을 비교하면, 반도체는 운송 비용이 저렴해 생산 효율성이 높은 곳으로 생산지를 옮기는 경향이 있는 반면, 배터리는 운송 비용이 비싸 최종 수요처와 가까운 곳에서 생산하는 경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그렇기 때문에 IRA가 폐기 또는 수정된다 해도, 한국 기업들이 배터리 공장을 다른 곳으로 옮기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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