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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125만원 찾아가세요"…ATM 위 '돈다발' 주인 못찾은 사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창구 직원이 없는 은행 무인형 점포.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사진 신한은행

창구 직원이 없는 은행 무인형 점포.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사진 신한은행

지난달 18일 서울 강남구의 한 시중은행 무인 영업점에 들른 A씨는 현금 인출기에 놓인 돈다발을 발견했다. 주머니 모양의 현금 지갑에는 오만원권 수십장이 들어있었다. A씨는 곧장 은행 고객 상담센터로 “여기 주인 없는 수백만 원이 놓여있다”고 신고했지만, 은행 측에선 “무인점포이기 때문에 직원이 가는 데 1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그대로 놓고 가거나 112신고를 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ATM 위에 놓인 125만원…경찰 “CCTV 확인할 권한 없다”

시중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사진 연합뉴스

시중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사진 연합뉴스

이어 A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지갑과 안에 있던 현금 125만원을 접수했다. 하지만, 이 돈은 4일 현재까지 18일간 주인을 찾지 못하고 수서경찰서 유실물센터에 보관 중이다. 돈 주인을 찾으려면 무인점포 내부 폐쇄회로(CC)TV를 확인해야 하지만, 통상 절도 등 범죄 혐의가 있지 않은 이상 경찰로선 단순 습득물에 대해 은행 CCTV나 거래 내역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유실물 신고가 많지 않은 편인데도 하루에 평균 20~30건은 유실물이 들어온다”며 “현실적으로 경찰이 모든 유실물의 주인을 찾아주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125만원에 대해서도 경찰은 “이 경우 CCTV를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은행이 자사 고객을 위해 찾아주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해당 은행 측은 “분실자가 잃어버렸다고 연락하지 않는 한 우리가 주인을 찾아줄 수 없다”며 “다른 손님이 ATM 기기 위나 바닥의 현금을 습득한 경우 언제, 누가 떨어뜨린 것인지 바로 확인할 수가 없어 수사기관으로 이관한다. 이것이 업무 지침”이라고 밝혔다.

3주째 유실…은행 “분실자 판단 어려워”

문제는 현재 법률 해석상 현금인출기 관리 의무와 현금에 대한 소유권은 은행에 있다는 점이다. 만약 누군가 길에서 주운 돈을 주인을 찾아주지 않고 썼다면 점유이탈물횡령 혐의를 적용받는다. 반면 은행 점포에 놓인 돈을 가져간다면 절도죄가 성립할 수 있다. 현금인출기 등에 놓인 돈이나 지갑 역시 원칙적으로 은행의 소유물로 귀속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약 은행이 점포 안에서 발견된 현금에 대해 실제 주인이 나타나지 않고 은행도 점유권을 포기 또는 보류하면 A씨와 같은 습득자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 유실물법 제8조 2항에 따르면 ‘물건을 반환받을 각 권리자가 그 권리를 포기한 경우에는 습득자가 그 물건의 소유권을 취득한다’고 돼 있다. 사람들에게 자칫 무인형 은행 점포에 놓인 돈은 가져가도 된다는 유혹에 빠지게 할 수 있다. 통상 경찰이 유실물 공고를 한 후 6개월이 지나면 습득자가 소유권을 갖게 된다.

이에 해당 은행 측은 “은행이 개입할 경우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공신력 있는 수사기관에 신고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밝혔다. CCTV에도 사각지대가 있어 섣불리 분실자를 특정할 수 없고, 해당 ATM 기기를 이용한 고객 여러 명이 소유권을 주장한다면 은행 입장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기 곤란하다는 설명이다. 다만 “경찰이 CCTV나 거래 내역 등 공개를 요청할 경우 협조하겠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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