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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핵에 돈 못쓰게… 국민 61% "제재 유지·강화해야" [외교안보 여론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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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달 31일 북한의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가 지난 26일부터 30일까지 당 중앙위원회 본부에서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뉴스1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달 31일 북한의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가 지난 26일부터 30일까지 당 중앙위원회 본부에서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무력을 동원한 남한 영토 점령”까지 거론하며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키는 가운데 우리 국민 열 명 중 여섯 명은 “대북 제재를 현 수준으로 유지하거나 더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핵을 동결만 해도 제재 완화라는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그 절반 수준이었다.

[중앙일보 2024년 신년 여론조사]

중앙일보가 2024년을 맞아 여론조사회사 갤럽에 의뢰해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17명에게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북한의 핵무기 개발 제재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가장 많은 45%가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돈을 더 이상 쓸 수 없도록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현재 수준의 제재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16%로 집계됐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핵 동결만 해도 선물’에 반대 두 배  

북한이 지난해 7월 12일 고체연료 기반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8형'을 시험발사하는 모습. 뉴스1

북한이 지난해 7월 12일 고체연료 기반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8형'을 시험발사하는 모습. 뉴스1

제재사(史)를 다시 썼다는 평가를 받는 지금의 고강도 대북 제재를 유지하거나 더 강화해야 한다는 응답이 61%에 이른 것이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12월 28~29일 무선 전화 면접 방식으로 이뤄졌다.

반면 “핵무기 개발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면 제재를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은 33%에 그쳤다. 이는 사실 핵을 동결하기만 해도 북한에 선물을 주자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미 개발해 놓은 ‘과거 핵’은 그대로 둔 채 핵무기를 더 진전시키지 않는 ‘미래 핵’ 포기만을 전제로 경제적 이득을 주자는 취지라 ‘북핵 용인론’과도 연결된다. 이번 조사에선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찬성보다 두 배 가까이 됐다.

이런 결과는 이번 조사가 김정은의 남한 점령 준비 지시가 보도된 12월 31일 이전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더 주목된다. “대한민국 것들”과는 통일도 추구하지 않겠다는 김정은의 위협이 공개되기 전인데도 제재 완화에 반대하는 강경 여론이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 북한이 지난해에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다섯 차례 감행하는 등 도발 국면을 이어가면서 북핵을 실체적 위협으로 보는 국내 시각이 많아졌다는 뜻이 될 수 있다. 이런 인식이 ‘섣부른 당근’을 경계하는 여론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정치 성향별로는 자신이 보수 성향이라고 응답한 이의 77%, 중도 성향의 60%가 제재 유지 또는 강화 의견이었다. 반면 진보 성향 응답자는 절반이 넘는 52%가 제재 완화에 찬성했다. 이념 성향에 따라 이처럼 극명하게 엇갈린 의견은 김정은이 ‘남남(南南) 분열’을 위해 공략하는 주요 지점이기도 하다.

세대별로는 18~29세에서 제재 유지·강화를 지지하는 응답이 가장 높았고(75%), 30대가 뒤를 이었다(67%). 젊은 세대의 보수화 경향과 함께 청소년기에 천안함 폭침 도발 등을 목격한 영향일 수 있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절반 이상 “미·중 간 중립·균형을”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022년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022년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뉴스1

이번 여론 조사에서 대미·대중 외교의 지향점에 대해서는 “미국과 중국 사이 중립과 균형을 중시해야 한다”는 응답자가 52%로 가장 많았다.

다만 이런 결과를 미·중 사이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등거리 외교’를 주문한 것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미국과의 동맹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응답이 37%인 반면 “중국과 협력을 강화하고 중시해야 한다”는 응답은 6%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한·미 동맹 강화’ 의견이 여섯 배나 많았다.

미·중 전략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현 정부의 외교 안보 정책 기조가 한·미 관계 강화에 다소 치우친 데 대한 불안감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할 여지는 있다. 한·미·일 협력이 어느 정도 본궤도에 오른 가운데 ‘차이나 리스크’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주문으로도 풀이된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尹 외교·안보팀 2기 숙제는

윤석열 대통령이 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2024년 경제계 신년 인사회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2024년 경제계 신년 인사회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제공

대미·대중 외교에 대한 의견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긍정·부정 평가와 연동되는 경향을 보인 것은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대통령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응답자 중 61%는 미국과의 협력 강화를 중시했고, 미·중 사이 균형을 바라는 의견은 32%에 그쳤다. 반면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 중에는 23%만 한·미 동맹 강화에 동의했고, 65%는 미·중 간 균형에 찬성했다. 단, 부정 평가자 중에서도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자는 의견은 8%에 그쳤다.

이번 결과는 최근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조태열 외교장관-조태용 국정원장’으로 진용을 새로 꾸린 윤 정부 ‘외교·안보팀 2기’의 과제로도 연결된다. 중앙일보는 이번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3일 15명의 국내 외교·안보 전문가들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를 물었다. 전문가들은 심화하는 북한의 도발에 대비해 한·미·일 협력 체제를 제도화·내실화 할 것을 주문하는 동시에 중국과의 ‘상황 관리’도 신경쓸 때라고 조언했다.

여론조사 어떻게 진행했나

이번 조사는 중앙일보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2023년 12월 28~29일 전국의 만 18세 이상 남녀 1017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가상번호) 전화면접조사 방식으로 진행했다. 응답률은 14.6%이며 2023년 11월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 기준으로 성별·연령별·지역별 가중값(셀가중)을 부여했고,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최대 ±3.1%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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