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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도 '이재명 피습'에 충격 "양극화 美정치도 극단 폭력 위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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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흉기 피습 사건을 놓고 미국 정치 전문가들 사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 양극화가 심화된 상태에서 상대를 향한 비방전이 본격화되면서 자칫 미국에서도 폭력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일 부산 가덕도 대항전망대에서 60대 괴한에게 습격을 당한 뒤 쓰러져 있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일 부산 가덕도 대항전망대에서 60대 괴한에게 습격을 당한 뒤 쓰러져 있다. 뉴스1

미국의 정치 석학들은 2일(현지 시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제히 “이 대표에 대한 테러는 충격적”이라며 “미국의 정치 환경도 한국 못지 않게 심각한 대립이 지속되면서 선거를 앞두고 상상을 넘는 폭력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美도 상대 진영 비호감도 높아”

대통령학 연구자로 고(故)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전기를 집필한 토마스 앨런 슈워츠 미 밴더빌트대 석좌교수는 이날 본지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정치적 분열이 깊고 상호간의 대립이 격해질수록 폭력 사태로 비화될 확률이 급격히 증가한다는 것은 전세계 정치 역사에 비춰봤을 때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학을 전공하고 미국 정치사에 정통하다는 평가를 받는 토마스 앨런 슈워츠 미 밴더빌트대 석좌교수는 2일(현지시간) 중앙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정치적 분열과 대립이 격해질수록 폭력 사태로 비화될 확률은 급격히 증가한다″고 말했다. 슈워츠 교수 홈페이지

대통령학을 전공하고 미국 정치사에 정통하다는 평가를 받는 토마스 앨런 슈워츠 미 밴더빌트대 석좌교수는 2일(현지시간) 중앙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정치적 분열과 대립이 격해질수록 폭력 사태로 비화될 확률은 급격히 증가한다″고 말했다. 슈워츠 교수 홈페이지

슈워츠 교수는 “미국에서도 3년 전 대선 결과에 불복한 쪽이 의회를 폭력 점거한 ‘1·6 사태’가 발생했다”며 “당시 테러를 부추겼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차 유력 주자로 부상한는 것은 이번엔 당시보다 더한 폭력 사태가 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한국에서 반대 진영에 대한 비호감과 반감이 높은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여론조사에서도 미국인의 4분의 3이 바이든과 트럼프의 재대결에 반대하며 새로운 리더십을 갈망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며 “링컨 대통령이 말했듯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가 극단의 대립에 저항하고 폭력의 벼랑에서 미국을 구해내길 기대해야 할 절박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美 갈등 고조…심각한 대립 비화 가능성”

50년 이상 미국 정치를 연구해 정계에서 ‘정치 박사(Dr. Politics)’로 불리는 스테펜 슈미트 아이오와대 교수는 “전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정치의 극심한 폭력성은 세계가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긴장된 환경에 따른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슈미트 교수는 이날 인터뷰에서 “현대로 올수록 정치인들이 활용하는 정치적 폭력 수준이 급격히 높아졌고, 정치적 분열이 깊고 대립과 양극화가 심한 환경일수록 극단적 폭력이 발생할 확률이 크진다”며 “올해 미국의 정치 환경은 민주주의 제도 자체를 불안정하게 만들 정도의 심각한 대립과 폭력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계에서 ‘정치 박사(Dr. Politics)’로 불리는 스테펜 슈미트 아이오와대 교수는 2일(현지시간) 중앙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재명 대표의 피습과 관련 “전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정치의 극심한 폭력성은 세계가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긴장된 환경에 따른 부수적 피해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아이오와대 홈페이지

미국 정계에서 ‘정치 박사(Dr. Politics)’로 불리는 스테펜 슈미트 아이오와대 교수는 2일(현지시간) 중앙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재명 대표의 피습과 관련 “전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정치의 극심한 폭력성은 세계가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긴장된 환경에 따른 부수적 피해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아이오와대 홈페이지

그는 이어 “현재의 미국이나 한국처럼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된 사회는 진영 간의 대립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일부 정치인들에게 동요하기 쉬운 구조”라며 “이러한 환경의 정치는 순기능을 잃고 오히려 사회 전반에 매우 큰 불안을 초래하는 심각한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美 언론도 ‘정치 양극화’ 주목

미국 언론들도 이 대표의 피습 사실을 일제히 비중 있게 보도했다. 특히 사건의 배경으로 한국의 대결 정치와 그로 인한 유권자 지형의 극단적 양극화를 조명했다.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이 워싱턴 의사당 건물해 난입, 로턴다홀에서 미국 국기를 흔들며 소동을 피우고 있다. EPA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이 워싱턴 의사당 건물해 난입, 로턴다홀에서 미국 국기를 흔들며 소동을 피우고 있다. EPA

뉴욕타임스(NYT)는 “이 대표는 2022년 대선 이후 부패를 비롯한 일련의 혐의와 관련해 지속적인 수사를 받아 왔다”며 “진보 지지자들은 이 대표가 약자와 사회적 소수자를 대변한다고 지지하지만, 보수 진영은 그를 부패한 포퓰리스트로 평한다”고 보도했다.

NYT는 이어 “최근 들어 한국의 정치는 갈수록 양극화 양상을 보이고 있고, 윤석열 대통령과 이 대표 사이의 대립은 4월 총선을 앞두고 깊어지고 있다”고 부연했다.

CNN도 “(한국의)민주당은 이번 사태를 테러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전하면서 2022년 당시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유튜버에게 망치 공격을 받은 사건, 박근혜 전 대통령 및 리퍼트 전 대사 피습 사건을 언급했다.

호응 얻는 ‘대선 불복’ 프레임

전문가들의 우려처럼 대선을 앞둔 미국에서는 특정 진영의 일방적 주장에 따라 여론의 급변하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2021년 1월 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워싱턴 의사당 건물을 습격한 장면. 로이터=연합뉴스

2021년 1월 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워싱턴 의사당 건물을 습격한 장면. 로이터=연합뉴스

워싱턴포스트(WP)가 메릴랜드대와 공동으로 실시해 이날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2020년 선거에서 바이든의 당선이 적법했는가’라는 질문에 62%만 “그렇다”고 답했다. 이는 ‘의사당 폭동’이 발생했던 2021년 12월 조사 때 기록한 69%보다 7%포인트 낮아진 수치다. 특히 공화당 지지자는 같은 질문에 31%만 “바이든 당선이 적법했다”고 답했다. 또 당시 의사당 폭동이 폭력적이었는지를 묻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 50%만이 “폭력적이었다”고 답했고, 공화당 지지자 중 폭력성을 인정한 비율이 18%에 그쳤다.

이러한 인식이 강화되면서 당시 대선 결과 뒤집기를 시도한 혐의로 기소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전체 유권자의 53%만 ‘유죄’라고 밝혔고, 공화당 지지자들의 경우 68%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무죄”라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출마 불가’ 법정에 총기 난동

이런 가운데 이날 콜로라도주에선 한 남성이 주(州)대법원 건물에 난입해 총기를 난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총을 지닌 남성은 대법원 건물을 지키던 비무장 경비원에게 건물 열쇠를 탈취한 뒤 대법원 건물 내에서 총기를 여러차례 발사했다.

2일(현지새벽) 콜로라도주 대법원에서 총기를 난사한 범인이 체포됐다. 현지 경찰은 이번 사건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콜로라도주 대법원의 판결과 무관하다고 밝혔지만, 미국 언론들은 콜로라도주 대법원이 미국에서 처음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후보 자격을 박탈한 판결을 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CBS뉴스 캡쳐

2일(현지새벽) 콜로라도주 대법원에서 총기를 난사한 범인이 체포됐다. 현지 경찰은 이번 사건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콜로라도주 대법원의 판결과 무관하다고 밝혔지만, 미국 언론들은 콜로라도주 대법원이 미국에서 처음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후보 자격을 박탈한 판결을 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CBS뉴스 캡쳐

다행히 총기 난사범은 스스로 경찰에 투항하면서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현지 경찰은 "콜로다도주 대법관에 대한 위협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미국 언론들은 콜로라도 대법원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판결을 한 법원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콜로라도주 대법원은 지난달 19일 주 대법원 중 처음으로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 투표용지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제외할 것을 명령하는 판결을 했다. 해당 판결을 한 대법관 4명의 이름은 온라인상의 선동적인 게시물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CNN은 “판사들에 대한 구체적 위협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판결에 대응한 단독 행위자나 소집단의 폭력 등의 불법행위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정치 여론 전문가인 장승모 보스턴대 교수는 이날 통화에서 “양극화가 가속화 되면 정책이 아닌 일방적 편가르기에 따른 정치적 선택 확률이 높아진다”며 “특히 SNS에서 인공지능(AI)를 활용한 가짜뉴스까지 보편화된 상황에서 정당들이 경쟁적으로 대중의 양극화에 호소하는 선거전략에 치중하면서 감정적 혐오가 쉽게 극단적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 상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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