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강(强對强)’으로 치닫던 미·중 갈등은 각자 상황에 따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기점으로 ‘전술적 휴전’ 상태에 들어갔다. 미국으로선 내년 대통령 선거 캠페인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는 취지라 한다. 미 대선과 관련, 한국에선 트럼프 재집권 가능성과 이것이 가져올 미·중 관계 변화 여부에 관심이 크다. 미국의 동맹이자 지리적으로 중국과 이웃한 한국에게 이는 중요한 문제다. 이것과 더불어 현 미·중 관계 현안에 대한 진단을 데이비드 파이어스타인 (David Firestein) 조지HW부시 미중관계기금회 회장 겸 CEO로부터 들었다.
중국어가 유창한 외교관 출신인 파이어스타인 회장은 첫 해외 근무지가 주중미국대사관이었으며 미·중 지도자 및 고위 관리들의 통역을 맡기도 했다. 2019년부터 맡고 있는 현 직책을 맡기 전, 파이어스타인 회장은 뉴욕에 위치한 이스트웨스트 인스티튜트(EWI)에서 선임 부사장,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캠퍼스 (UT Austin) 중국 공공정책 센터(CPPC)의 창립 집행이사로 미·중 관계, 동아시아 안보 및 미·러시아 관계 분야에서 ‘트랙 2 외교’ 활동을 주도했다. 미국 의회에서 증언을 했고, 현재도 여러 현직 및 전직 미국 각료들에게 미·중 관계에 대해 자문하고 있다. 다음은 그와의 인터뷰 요지.
- 우선 다들 궁금해 하는 트럼프 재집권 가능성에 대해 먼저 묻고 싶다.
- 트럼프는 현재 모든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다른 경쟁자보다 앞서고 있다. 미 대선의 ‘풍향계’로 불리는 아이오와주의 경우 두 번째로 가까운 경쟁자 두 명의 지지율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트럼프 재선은 현실적인 가능성이다. 현 시점에서 그가 미국의 47번째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50% 이상이다.
- 트럼프 재당선 가능성이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미·중 관계 변화 가능성에 한국도 관심이 많다.
- 트럼프가 실제로 대통령이 된다면 미·중 관계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바이든 행정부가 사실상 관세 문제를 포함해 트럼프의 대중국 접근 방식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1년 1월 바이든이 취임했을 때 오히려 그는 트럼프의 정책을 여러 방면에서 더욱 심화시켰고 범위도 넓혔다. 바이든이 트럼프 재임 시 보다 더 트럼프다운 정책을 펼쳤다.
- 트럼프가 다시 백악관에 입성하면 바이든의 중국 정책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할까?
- ‘꽤 좋아 보인다’고 말할 것이다. ‘계속하자’고 할 것이다. 바이든이 한 것을 계속하자고 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트럼프 자신이 한 것의 연장선이니까.
- 그 말은 결국 11개월 후에 누가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되든 미국의 중국에 대한 기본 정책의 윤곽이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인데.
- 그것이 미 의회와 워싱턴의 초당적인 주류 견해라는 것이 더욱 근본적 이유다. 현재 미국에서는 중국이 미국의 사실상 ‘치명적인 적’ (mortal enemy)이라는 인식의 공감대가 있다. 누가 선출되든 상관없이 대중국 정책에서 큰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 그럼에도 APEC 정상회의에서 두 정상이 만났다. 파국을 피하자는 취지인데. 당신이 의사라면 미·중 관계를 어떻게 진단하겠나?
- 나는 미·중이 ‘근본적이고 해결할 수 없는 병’ (a fundamental and unresolvable illness)에 걸려 있다고 본다. 바이든과 시진핑의 직접적 만남이 그 병의 일부 증상을 대처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두 대통령조차도 우리가 다루고 있는 것이 영구적인 만성 질환이라는 사실을 근본적으로 변경할 수는 없다.
- 왜 그런가?
- 미·중 갈등의 많은 의제들이 근본적으로 해결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대만, 남중국해, 신장 문제. 인권, 홍콩 등의 문제에서 양국의 입장만 봐도 알 수 있다. 근본적인 문제의 극복이 불가능하니 근본적인 해결을 할 수 없다.
- 해결할 수 없는 지경이라면 관리를 잘 해야 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 나는 미·중 관계를 ‘말기 질병’ (terminal Illness)이라고 부르지는 않을 것이지만, 해결할 수 없는 만성 질환이라고 부를 것이다. 대증요법은 가능해도 근본적인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당뇨병처럼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은 개인의 평생 동안 존재하는 조건이다. 당뇨병을 갖고도 오래 사는 사람들이 있다. 관리가 중요하다.
- 시진핑과 정상회담을 마친 후 바이든은 기자들에게 ‘가장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논의’를 했다고 했다.
- 미국 정부의 대중국 정책이 수사(修辭)적으로는 더 건설적으로 들리지만 행동은 더 제한적이거나 견제 지향적이다.
- 현재의 중국을 어떻게 보는가? 미국에서는 특히 시진핑의 권력이 비대해지면서 정책 결정 과정에 있어 분석의 힘을 시진핑이라는 지도자에 집중하는 경향도 보인다.
- 많은 사람들이 시진핑이 마치 중국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것처럼 말한다. 예를 들어 중국의 ‘공세적 외교’를 거론하면서 이것이 시진핑 시기 들어 돌출된 것과 연계시킨다. 나라가 약하고 가난할 때는 그 나라가 자국의 이익을 매우 제한적으로 정의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나라가 강력하고 부유해질수록 자국의 이익을 더 넓게 정의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이 1970년대 말 개혁개방을 시작하면서 지난 50년여 동안 이러한 변화가 일어났다. 시진핑 역시 그런 시대의 산물이다. 시진핑 혼자 중국을 전혀 다른 것으로 완전히 변화시켰다고 과장하는 것은 전적으로 틀렸으며, 나는 그러한 서술에 동의하지 않는다.
- 그렇지만 시진핑 통치 하에 중국은 집단지도체제에서 1인독재체제로 바뀌었다는 시각이 있다.
- 미국의 많은 분석가들이 마치 시진핑 이전의 중국은 민주주의 국가였던 것처럼 말한다. 중국은 항상 한 가지 체제 유형만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의 헌법은 제1장 제1조에서 중국의 체제 유형이 ‘인민민주독재’ (人民民主專政)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핵심 단어는 독재다. 중국은 1949년 창립 이래로 근본적으로 같은 체제 유형을 유지하고 있다.
- 결국엔 미·중 간의 이 많은 구조적, 이념적 갈등 변수를 두고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 미·중이 이 많은 문제에 있어서 서로 간에 근본적으로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기 이익을 위해라도 함께 일할 수 있고 함께 협력해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이는 선택의 문제다.
글 이성현 조지HW부시 미중관계기금회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