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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범준·성시경도 분노…"6만원 콘서트 티켓, 100만원에 팔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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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가수 장범준이 암표 거래가 횡행하자 공연 티켓 전석 취소라는 초강수를 뒀다. 사진은 지난 2019년 열린 콘서트에서 노래하는 장범준의 모습. 연합뉴스

가수 장범준이 암표 거래가 횡행하자 공연 티켓 전석 취소라는 초강수를 뒀다. 사진은 지난 2019년 열린 콘서트에서 노래하는 장범준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에 사는 남모(22)씨는 2일 오전 가수 장범준의 공연 예매표를 환불해준다는 안내 문자를 받았다. 장범준은 전날 “암표 문제를 해결 못 해 10회 콘서트 티켓 예매를 전부 취소한다”며 “공평한 방법을 찾아 추후 공지하겠다”고 전격 공지한 데 이어 개별적으로 환불을 통보한 것이다. 남씨로선 핸드폰으로 28분간 동안 버튼을 수십번 누르는 ‘피켓팅'(피가 튀길 정도로 치열한 티켓팅)’ 끝에 예매에 성공했는데 불법 암표상 때문에 다시 해야 할 처지가 됐다. 남씨는 “2년 만의 공연이라 2집 한정판 앨범을 들고 가려고 본가인 부산에도 다녀왔는데 못 가게 돼 정말 속상하다”고 말했다.

2일 멜론 측이 장범준 공연에 대해 "아티스트의 요청으로 공연 티켓 예매를 전부 취소하기로 결정했다"며 환불 절차를 안내했다. 독자 제공

2일 멜론 측이 장범준 공연에 대해 "아티스트의 요청으로 공연 티켓 예매를 전부 취소하기로 결정했다"며 환불 절차를 안내했다. 독자 제공

장범준씨 측에 따르면, 오는 3일부터 2월 1일까지 서울의 한 소극장에서 10회에 걸쳐 열리는 이번 콘서트는 표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전석 매진됐다. 몇 시간도 안 돼 중고거래 사이트에 5만5000원짜리 표를 30~40만원에 판매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암표 거래가 성행하자 장씨는 유튜브에 “정상적인 경로 외에는 표를 구매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지만, 전체 좌석 500석 중 70석 이상이 암표로 의심되면서 예매를 전부 취소하는 극약처방을 했다. 공연 주최 측인 온에어홀딩스는 “당장 이번 주 공연은 현장이나 구글폼으로 신청을 받은 뒤 무작위로 추첨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가수 장범준이 지난 1일 유튜브 채널 커뮤니티 공지를 통해 ″암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공연 예매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사진 유튜브 채널 캡처

가수 장범준이 지난 1일 유튜브 채널 커뮤니티 공지를 통해 ″암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공연 예매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사진 유튜브 채널 캡처

신년을 맞아 콘서트 등 공연이 늘면서 팬심을 울리는 암표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실제 온라인 티켓거래 사이트 ‘티켓베이’에는 오는 5~7일 광주에서 열리는 가수 임영웅의 콘서트 표가 정가의 4배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VIP석 기준 정가는 16만5000원이지만 65만원에 판매하는 글이 올라왔다. 오는 13일 예정된 가수 도경수 콘서트 겸 팬미팅의 경우 6만6000원 표를 100만원에 팔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임영웅 소속사 물고기 뮤직은 “온라인 암표 거래를 법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없다”며 “정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예매된 표인지 일일이 확인해서 강제로 취소하는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종식 이후 온라인 암표 거래는 매해 급증하는 추세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접수된 암표 신고 건수는 2020년 359건, 2021년 785건, 2022년 4224건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가 지난해 2월 28일부터 3월 8일까지 한국리서치를 통해 공연 티켓 예매를 경험한 전국 남녀 572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20대의 약 33%가 암표를 구매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암표상 대부분은 컴퓨터로 ‘매크로(macro)’ 프로그램을 활용해 표를 사재기한다. 한 번만 키를 눌러도 동일한 명령을 반복해서 내린 것처럼 인식해 짧은 시간에 여러 좌석을 예매할 수 있는 방식이다. 경찰 관계자는 “암표 사기의 99%가 온라인 매크로 프로그램을 통해 조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온라인을 통한 가수 등의 공연 암표 거래를 제재할 법 규정이 현재는 없다는 게 문제다. 경범죄처벌법 제3조는 처벌 대상을 ‘흥행장, 경기장, 역, 나루터, 정류장 등’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적발돼도 2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의 가벼운 형에 처한다. 다만 ‘정보통신망에 주문 명령을 자동으로 반복 입력하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입장권 등을 부정 판매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으로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개정 공연법은 올해 3월부터 시행된다.

가수 장범준 공연 관련 한 암표상이 온라인 중고거래 커뮤니티에 올린 판매 글. 정가의 세 배 가까운 가격을 제시하고 있다.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가수 장범준 공연 관련 한 암표상이 온라인 중고거래 커뮤니티에 올린 판매 글. 정가의 세 배 가까운 가격을 제시하고 있다.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온라인 암표 거래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보니 가수나 공연 관계사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달 29~31일 연말 콘서트를 연 가수 성시경은 티켓 판매사와 매니저까지 부정 거래 적발에 나섰지만 막지 못해 결국 1인당 1매씩 현장 판매했다. 지난해 9월 팬 콘서트를 진행한 아이유는 암표 거래 신고자에게 해당 티켓을 포상하는 '암행어사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일부 연예기획사는 암표 단속을 해주는 외주 업체까지 찾고 있다. 한 연예기획사는 "아이디 실명 인증 등 갖은 수를 쓰고 있지만, 한발 앞선 암표상들이 미꾸라지처럼 피해가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공연계는 대안으로 입장할 때 예매한 사람인지 실명을 확인하는 ‘티켓 실명제’도 도입했지만 암표상이 이른바 ‘아옮’(아이디 옮기기) 수법으로 기존 예매자 이름을 최종 구매자 이름으로 변경해 단속을 피하면서 유명무실화 됐다.

오는 13일에 열리는 도경수(디오)의 팬미팅 겸 콘서트 티켓 정가는 6만6000원이지만, 온라인 티켓 중고거래 사이트에선 최대 1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티켓베이 캡처

오는 13일에 열리는 도경수(디오)의 팬미팅 겸 콘서트 티켓 정가는 6만6000원이지만, 온라인 티켓 중고거래 사이트에선 최대 1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티켓베이 캡처

암표뿐만 아니라 '가짜 표' 사기도 번개장터, 당근마켓 등 중고거래 플랫폼을 중심으로 횡행하면서 팬들의 피해는 더 커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SBS 가요대전을 앞두고 아르바이트생까지 동원한 조직적인 가짜 표 판매가 일어나면서 행사장이 아수라장이 되는 사태가 벌어져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암표 거래가 횡행하자 가수 성시경 측이 부정 거래에 직접 나서 적발했다. 사진 성시경 인스타그램 캡처

암표 거래가 횡행하자 가수 성시경 측이 부정 거래에 직접 나서 적발했다. 사진 성시경 인스타그램 캡처

암표와 가짜표 등을 근절하기 위해 실효성 있는 제재와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오프라인 뿐 아니라 온라인 암표상을 규제하는 방법 논의가 필요하다”며 “암표 문제는 가요 업계 전반을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일부 K팝 팬들도 자발적으로 암표 근절 노력에 나서고 있다”며 “인터넷 예매 플랫폼들이 중간에 환불 외엔 예매자를 바꿀 수 없도록 시스템을 보완하는 등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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