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태영건설 마련한 자구책 1조, 뒷날 갚을 빚이었다…산은 한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기업구조개선(워크아웃) 개시를 앞두고 태영건설이 추가 자구안 마련에 고심인 가운데, 태영그룹 자체 노력만으로 부채를 모두 감당하기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선제 자구안 1조2000억원 규모

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초부터 최근까지 태영그룹이 계열사 매각 등을 통해 마련한 태영건설 유동성 지원액은 1조1465억원에 달한다. 구체적으로 태영건설은 한국투자증권과 펀드 조성(2800억원‧3월), 목동 사옥 담보 대출(1900억원‧9월), 포천파워 지분 일부 매각(264억6000만원‧12월)을 통해 4965억6000만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2일 서울 여의도 태영건설 본사의 모습. 뉴스1

2일 서울 여의도 태영건설 본사의 모습. 뉴스1

태영건설의 지주사인 TY홀딩스는 에코비트 주식 담보 차입(4000억원‧1월), 인더스트리 지분 매각(1500억원‧12월), 싸일로 일부 지분 매각(600억원‧12월)으로 6100억원의 유동성을 공급했다. 금융당국도 이를 근거로 “태영그룹·대주주는 그간 1조원 이상의 자구 노력과 더불어 워크아웃을 위해 계열사 매각, 자산·지분담보 제공 등 추가 자구 계획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1조 先자구안 대다수는 ‘빚’

하지만 이 같은 태영건설의 자구안 상당 부분은 나중에 갚아야 할 빚으로 구성돼 있거나 향후 추가 자구책에 쓸 계열사 매각 대금을 미리 끌어다 쓴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한국투자증권과 함께 조성한 2800억원 펀드는 올해 4월에 만기가 돌아온다. 태영건설은 펀드 조성 당시 자기 자본 800억원과 골프장인 루나엑스 CC를 담보로 한국투자증권의 2000억원을 끌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및 보증을 위한 2800억원 펀드 조성했다. 올해 4월 만기가 연장되지 않으면 2000억원은 당장 상환해야 하는 돈이다.

태영그룹 계열사인 에코비트 주식을 담보로 한 차입금 4000억원도 앞으로 갚아야 할 돈이다. 태영그룹 측이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하며 추가 자구안으로 에코비트 지분 매각 계획을 밝힌 만큼, 지분을 실제로 팔 경우 매각 대금에서 이 4000억원은 빠진다. 에코비트 몸값은 시장에서 2~3조원 정도로 추산하는데, 이중 태영그룹의 지분은 50%이다. 이 때문에 매각 후 해당 차입금까지 상환하면 실제 태영그룹 수중에 떨어지는 자금은 1조원이 채 되지 않을 수 있다.

추가 자구안 쉽지 않아

산은과 채권단은 3일 “태영건설의 경영 상황, 자구계획, 협의회의 안건 등을 설명하고 논의하기 위해 채권자 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태영 측 계열주의 사재 출연 등을 포함한 추가 자구안이 공개될 예정이다. 인더스트리와 블루원 등에 들어가 있는 사주 측 지분 매각 예상 대금 약 3000억원이 자구안에 포함될 전망이다.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태영건설의 성수동 개발사업 부지 모습. 연합뉴스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태영건설의 성수동 개발사업 부지 모습. 연합뉴스

하지만 워크아웃 개시를 위해 채권단을 설득할 추가 자구안 마련이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주식을 담보로 이미 4000억원을 빌린 에코비트 지분과 싸일로 잔여 지분(약 1000억원 추정), 블루원‧문고리닷컴 지분 매각 등이 남아 있지만 이를 통해 위기를 넘길 만한 충분한 돈을 모으기 어려워서다. 다른 계열사인 SBS 매각에 대해서는 태영그룹 측이 일단 선을 긋고 있다. 한국기업평가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실제 현실화 될 가능성이 높은 태영건설 부동산 PF 관련 우발채무만 1조원으로 추산된다.

“갚는다” 공언, 451억 외담대 미납

태영건설 지원을 놓고 태영그룹 측과 채권단 및 금융당국 간 잡음도 나오고 있다. 앞서 금융당국이 태영건설이 갚을 거라고 공언했던 상거래채권 1485억 중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외담대)’ 451억원이 미납됐다. 태영건설이 이 대금을 갚지 않으면서 태영건설 협력사는 해당 채권을 담보로 받은 은행 대출 상환이 어려워졌다. 자금 사정이 급한 협력사 경우 30~60일 정도 되는 어음 만기까지 기다릴 수 없어 일정 부분 은행에 수수료를 내고 대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태영건설 측은 “외담대는 태영이 은행에 갚아야 하는 금융채권”이라며 “워크아웃으로 금융채권 상환이 일괄 유예되기 때문에 지급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금융업권 관계자는 “태영이 뚜렷한 자구안을 내지 못한다면, 결국 산은을 비롯한 채권단의 자금 투입이 커질 수밖에 없다”면서 “부동산 PF 시장이 극적으로 회복하지 않으면 부채는 더 쌓이고, 이럴 경우 워크아웃 졸업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고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