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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억 들인 저상버스, 휠체어 장애인은 30분간 타지도 못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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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달 29일 오전 경기 수원시 팔달구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중증 지체장애인 이영아(52)씨가 시내 노선 저상버스 승차를 시도하고 있다. 버스가 정류장에 바짝 진입하지 않아 리프트를 11㎝ 높이 연석 아래 도로변에 내려 탑승하기 어려운 모습. 손성배 기자

지난달 29일 오전 경기 수원시 팔달구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중증 지체장애인 이영아(52)씨가 시내 노선 저상버스 승차를 시도하고 있다. 버스가 정류장에 바짝 진입하지 않아 리프트를 11㎝ 높이 연석 아래 도로변에 내려 탑승하기 어려운 모습. 손성배 기자

수원에 사는 소아마비 장애인 이영아(52)씨는 지난달 29일 오전 수원 매교역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저상버스 탑승을 시도했다. 하지만 차량에 달린 리프트가 보도에 닿지 못한 탓에 이씨는 30분 동안 저상버스 4대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5번째로 도착해 겨우 붙잡은 저상버스도 처음엔 정류장에서 멀찍이 섰다. 버스기사 문전식(50)씨가 2~3차례 전진과 후진을 반복한 끝에 버스를 정류장 가까이 붙이긴 했지만, 리프트가 도보까지 닿진 못했다. 리프트를 접고 버스 위치를 재조정한 끝에 리프트가 보도 위에 펼쳐졌지만, 보도와 차도의 높이 차가 11㎝에 불과해 리프트 왼쪽 끝이 허공에 떠 제대로 고정이 되지 않았다. 이씨가 겨우 버스에 올라 교통약자석에 휠체어를 고정하고 다시 출발하기까지 약 3분30초가 걸렸다.

가까스로 버스에 탄 이씨는 “휠체어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도록 저상버스를 도입했다지만, 실제 이용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버스를 가까이 대지 않고, 출퇴근 시간엔 휠체어가 들어갈 공간이 없을 뿐 아니라 타고 내리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눈치가 보인다. 버스는 장애인들에게 대중교통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버스기사 문씨는 “버스 운행 7년 동안 리프트를 3번 작동해봤다”며 “장애인 승객도 당연히 태워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탑승한 승객이 많거나 배차 간격이 벌어지면 사실 모시기 힘들다”고 했다.

교통약자를 위해 도입한 저상버스가 정작 장애인들에게 ‘그림의 떡’이 되고 있다. 버스정류장 보도의 높이가 제각각이라서다. 저상버스의 리프트를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보도와 차도의 높이 차이는 18~22㎝인데, 10㎝ 안팎으로 너무 낮거나 반대로 25㎝ 안팎으로 너무 높아 리프트를 대기 힘든 경우가 많다고 한다. 교통약자법 시행규칙으로 정한 보도와 차도간 높이차(15㎝ 이하)가 리프트를 이용하기 위한 안전 높이(18~22㎝)와 엇갈리는 등 법령에도 허점이 있다.

지난달 29일 오전 경기 수원시 팔달구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중증 지체장애인 이영아(52)씨가 시내 노선 저상버스에 오르고 있다. 경기도 이동편의시설 기술지원센터에 따르면 버스정류장의 도로 경계석 높이가 18~22㎝ 사이여야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안전하게 저상버스에 탑승할 수 있다. 손성배 기자

지난달 29일 오전 경기 수원시 팔달구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중증 지체장애인 이영아(52)씨가 시내 노선 저상버스에 오르고 있다. 경기도 이동편의시설 기술지원센터에 따르면 버스정류장의 도로 경계석 높이가 18~22㎝ 사이여야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안전하게 저상버스에 탑승할 수 있다. 손성배 기자

교통약자를 위해 저상버스 도입 예산 수천억원을 쓰고도, 정작 버스 정류장 문제로 장애인들이 제대로 이용을 못하는 셈이다. 정부는 앞서 지난해 1월 교통약자법 제정에 따라 시내·마을버스 교체시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했다. 지난해 국비 보조금 1895억1900만원을 책정한 데 이어 올해 1674억9500만원이 배정됐다. 그러나 경기도 이동편의시설기술지원센터가 저상버스 정차 버스정류장(관공서 주변 등 제외) 7007곳을 조사한 결과, 교통약자 편의 적합도가 100%인 지점은 15개소(0.2%)에 불과했다. 50개소는 적합도가 0%로 나타났다. 센터 관계자는 “정류장 15곳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불편한 시설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29일 오전 경기 수원시 팔달구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중증 지체장애인 이영아(52)씨가 정류장에서 멀리 떨어져 정차한 시내 노선 저상버스를 바라보고 있다. 손성배 기자

지난달 29일 오전 경기 수원시 팔달구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중증 지체장애인 이영아(52)씨가 정류장에서 멀리 떨어져 정차한 시내 노선 저상버스를 바라보고 있다. 손성배 기자

경기도에는 전국의 장애인, 고령자, 임산부 등 교통약자 1550만명 중 374만명(24.1%)이 거주하고 있다. 경기도에 사는 휠체어 장애인 조봉현 세무사는 “정류장과 버스 사이의 거리, 보도와 차도의 높이가 조금이라도 안 맞으면 휠체어 장애인은 도로 위로 추락하고 만다”며 “저상버스를 전면 도입하기로 한 이상 버스정류장과 보도 사정도 함께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기도 관계자는 “저상버스 의무 도입에 발맞춰 교통약자의 평범한 일상 활동을 위해 정류장에 대한 지속적인 점검과 개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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