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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31년 만의 대중 적자…한국 무역, 더 유연해져야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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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무역수지가 100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1일 발표한 2023년 연간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수출액은 6327억 달러로 전년 대비 7.4% 감소했다. 수입(6427억 달러)은 12.1% 줄었다. 사진은 이날 부산 남구 신선대부두 모습. 송봉근 기자

지난해 우리나라의 무역수지가 100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1일 발표한 2023년 연간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수출액은 6327억 달러로 전년 대비 7.4% 감소했다. 수입(6427억 달러)은 12.1% 줄었다. 사진은 이날 부산 남구 신선대부두 모습. 송봉근 기자

중국 산업구조 고도화 속 ‘반도체 착시’ 사라진 영향

특정국·품목 쏠림 지양, 첨단 산업 경쟁력 제고해야

한국 무역이 생존을 위한 변화의 기로에 섰다. 우리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던 대중(對中) 무역수지가 지난해 180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31년 만에 처음이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수출국이자 무역수지 최대 흑자국이었다.

반면에 지난해 대미(對美) 무역 흑자는 445억 달러로, 미국은 21년 만에 한국의 최대 무역수지 흑자국이 됐다. 게다가 지난해 12월 대미 수출액(113억 달러)이 대중 수출액(109억 달러)을 앞질렀다. 연간 기준으론 여전히 전체 수출에서 중국(19.7%) 비중이 미국(18.3%)을 앞섰지만 격차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대중 무역 적자는 예견된 결과다. 중국의 경기 부진에 따른 수요 감소와 반도체 수출이 줄어든 상황에서 2차전지 소재나 광물 등의 수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역 적자의 진짜 이유는 중국 산업의 고도화로 한국 제품의 경쟁력이 사라진 데 있다. 31년 만의 무역 적자는 ‘반도체 착시’에 가려져 있던 한국 산업과 무역 구조의 약점을 드러냈다.

반도체를 제외한 대중 무역수지는 2021년부터 적자를 기록했다. ‘중국 제조 2025’ 계획과 내수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쌍순환 전략’ 등으로 중국의 산업구조는 달라졌다. 한국에서 중간재를 수입, 제조해 가공한 뒤 수출하던 중국은 이제 자국 기업을 통해 중간재를 자급하고 있다. 중국은 현재 30% 미만인 반도체 자급률을 2025년까지 70%까지 높인다는 목표로 달리고 있다. 10여 년 전 시장점유율 20%로 1위를 차지했던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점유율은 중국 기업의 공세 속에 1% 안팎으로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3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중국의 ‘리오프닝’ 뒤 경제가 정상화하고 무역 적자가 개선될 것이란 정부의 장밋빛 전망은 빗나갔다. 중국의 산업구조 전환에 안이하게 대응한 탓이다. 세계의 공장이자 시장인 중국의 성장은 한국에 축복이었지만, 이제는 상황의 엄중함을 직시해야 한다.

반도체와 2차전지, 전기차 등 우리 수출의 킬러 콘텐트는 한국 경제의 운명을 좌우한다. 정부는 규제를 완화하고, 기업은 약해진 기업가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 투자와 연구개발로 전략상품의 초격차를 유지하고 첨단 산업 경쟁력 제고에 전력해야 한다.

아세안 등으로 시장을 확대하는 한편, 특정 국가나 품목으로의 쏠림도 지양해야 한다. ‘차이나 리스크’를 피하려고 미국으로 섣부른 방향 전환을 하는 것도 위험하다. “고사양 칩은 대만에서, 범용 제품은 미국에서 생산하는 TSMC의 영리한 전략을 배우라”는 폴 케네디 예일대 교수의 조언을 기억하라. 거세지는 공급망 재편과 보호무역의 파고를 넘으려면 무엇보다 유연한 대응 전략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