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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민근의 시선

최상목 경제부총리의 ‘연장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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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조민근 기자 중앙일보 경제산업디렉터
조민근 경제산업디렉터

조민근 경제산업디렉터

윤석열 정부의 2기 경제팀이 닻을 올렸다. 지난달 29일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하면서다. 그로서는 6년여만의 친정 복귀다. 엘리트 경제 관료였던 그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비서관을 거쳐 말기엔 기획재정부 1차관을 지냈다. 당시에도 경제정책의 ‘조타수’ 역할을 했다. 하지만 결국 배는 탄핵 정국이란 폭풍에 휩쓸려 좌초했다. 그리곤 한동안 야인생활을 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경제팀의 명실상부한 선장으로 부활한 그의 일성은 ‘임중도원(任重道遠)’이었다. ‘임무는 무겁고 갈 길은 멀다’는 의미인데, 의례적인 인용구처럼 들리진 않았다. 박 정부에서 마무리 못 한 임무가 있었던 만큼 각오 또한 남다를 것이란 생각에서다. 그에겐 일종의 ‘연장전’인 셈이다.

그가 맞닥뜨린 경제 상황은 그때만큼이나 녹록지 않다. 아니, 훨씬 어려워졌다. 급격한 금리 인상 사이클이 이제 마무리 국면에 들어섰다지만 그 후폭풍은 이제 막 불어닥치기 시작했다. 최 부총리가 취임 직후 참석한 첫 회의의 안건도 태영건설 워크아웃의 뒷수습이었다. 실물은 물론 금융시장을 흔들 수 있는 뇌관으로 꼽히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고금리와 고물가에 놀란 내수는 잔뜩 움츠려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2년 4.1%에 달했던 민간 소비증가율은 지난해 1.9%로 쪼그라들었고, 올해에도 비슷한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1기 팀에 비해 그나마 사정이 나은 건 수출이다. 반도체가 회복 국면으로 들어서면서 3개월째 증가세다. 하지만 이 또한 순항을 점치기엔 변수가 너무 많다.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보호무역주의의 파고는 갈수록 거칠어지고, 국지적 충돌도 빈발하며 공급망은 수시로 출렁인다. 말 그대로 ‘복합위기’다.

문제는 동원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은 박 정부 때보다도 넉넉지 않다는 것이다. 금리를 얼른 낮춰 압력을 좀 줄여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당장은 기대난망이다. 자칫하면 물가를 다시 들쑤실 수 있는 데다 부풀 대로 부풀어 있는 가계부채가 발목을 잡고 있다. 경제 부총리의 최대 무기인 재정 역시 마찬가지다. 전임 정부의 재정 확장과 이어진 세수 급감에 나라 곳간은 바닥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예상한 올해 관리재정수지 적자만 92조원이다. 최 부총리가 차관이던 시절, 기재부 관료들조차 “세금이 왜 이렇게 많이 걷히냐”며 어리둥절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여건이다.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기재 차관
윤 정부 ‘경제 수장’으로 재등판
‘관리’넘어 구조개혁 승부 걸어야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 환경 역시 요동치고 있다. 여야 구분 없이 각종 선심성 포퓰리즘에 대한 요구가 빗발치는 상황에서 ‘곳간 지기’인 경제 부총리의 맷집은 줄곧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관료들이 ‘라면 과장’ ‘빵 사무관’이란 비아냥까지 들으며 눌러놓은 물가가 총선 이후에는 일시에 터져 나올 위험도 있다.

그렇다고 방어만 하면 될까. 연장전을 마무리하려면 결국 득점을 해야 한다. 1기 경제팀에 대해 “어려운 상황에서 큰 탈 없이 선방했다”는 평가 한편으로 “상고하저(上高下低)의 ‘희망 고문’ 밖에 기억 나는 게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건 그래서다. 위기 대응과 관리에 집중하다 보니, 고꾸라지는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구조개혁에선 뚜렷한 성과가 없었다는 얘기다.
결국 승부처는 구조개혁이다. 저출산·고령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 덩어리를 이대로 둔다면 한국 경제가 나락으로 빠지는 건 예정된 미래다. 물론 경제팀만으론 역부족일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부담스러워하는 개혁 과제를 놓고 정부 내에서 앞장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건 예산과 세제를 쥔 경제 부총리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기재부가 추진했던 서비스산업발전법안만 해도 그때나 지금이나 국회의 벽에 가로막혀 한치도 전진하지 못했다. 그 사이 저성장 고착화 우려는 현실이 됐다. 박 정부 당시 3% 언저리의 경제성장률에 그런 걱정이 나왔는데, 이제는 2%대 성장률이 목표다. 0.7의 합계 출산율을 들어 외신에선 공공연히 ‘피크 코리아(Peak Korea)’, ‘한국 소멸론’을 언급하고 있다.

최 부총리의 경제팀은 이번 주 올해 경제정책 방향을 내놓을 예정이다. ‘역동 경제’를 키워드로 한 구조개혁 방안들도 담길 것이라 한다. 박 정부 시절 ‘창조경제’의 좌초를 교훈 삼아 거창한 구호보다는 내실과 면밀한 실행 전략에 신경 써 주길 바란다. 또다시 좌절할 여유가 없다는 건 최 부총리도 잘 알 것이다. ‘갈 길은 먼 데 날도 저물고’(日暮途遠·일모도원)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