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최훈 칼럼

‘퍼스트레이디 스트레스’ 해소하고 가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최훈 기자 중앙일보 주필
최훈 주필

최훈 주필

덕담 나눠야 할 새해 아침이다. 하지만 에두를 필요도 없이 정국은 혼돈의 블랙홀 속이다. 그 중심은 야권이 단독 통과시킨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다. 대통령실은 “이송 즉시 거부”다. 민주당·정의당이 정권의 아킬레스 건이라 본 김건희 여사를 고리로 치명타를 가하려는 총선용 전략 카드임은 분명하다.

사실 2009~2012년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디테일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별로 알고 싶지도, 중요하지도 않다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국민의 특검 찬성 여론은 매우 높다. 67%(서울경제)~70%(국민일보)가 거부권 반대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여당은 ▶야당만의 특검 추천 ▶수사 브리핑 허용 ▶총선 전후의 조사 시점을 들어 “국민 선택권을 침해하는 악법”으로 규정한다. 검사 출신답게 법규 해석에 초점을 맞춘 접근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국민의 70%는 과연 앞뒤 분간 못하는 바보일까. ‘법 해석’과 ‘국민 정서’의 사이. 상황은 왜 이리 흘러온 걸까.

윤석열 대통령은 “50살이 다 돼서 아내 만나 결혼(2012년)한 것”을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꼽았다. 그러나 대선후보 시절부터 아내의 사건들로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학력·경력 부풀리기 등으로 대국민 사과에 나선 김 여사는 “깊이 반성하고, 국민 눈높이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하겠다”며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고개를 숙였었다.

그에 앞선 2021년 여름,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야인인 윤 대통령의 국민의힘 입당을 권하려고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자택에 적잖은 정치인이 들렀다. 당시 이들이 고개를 꺄우뚱거리며 전해 준 얘기가 있다. “입당을 권유하자 옆 의자에 앉아 있던 김 여사가 ‘우리가 입당하면 저를 보호해 주실 수 있나요’라 하더라. ‘우리’ 라는 단어가 유독 기억에 남더라.” 다른 인사가 전한 장면. “바로 옆 김 여사가 ‘오빠는 (정치에 대해선) 잘 모르니 (이 분이) 시키는 대로 하세요’라 하더라.” 당시 ‘아크로비스타의 기억’은 여당 관계자들의 이런 해석을 낳았다. “김 여사 스스로는 윤 대통령의 오늘이 있기까지 적잖은 기여의 지분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더라. 정치적 창업 동업자쯤 여길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김 여사는 대선 직전 공개된 한 불법도청 녹음에선 “우리 남편은 완전 바보다. 내가 다 챙겨줘야지 뭐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었다. 하긴 모든 아내에게 남편들은 바보일 수도 있겠으니….

김 여사 특검법, 총선용 공세 맞지만
‘찬성 70%’ 여론의 이유도 성찰해야
사과, 특별감찰관제 등 제도 정비로
국민 납득할 ‘문제해결’노력이 우선

우리의 법엔 ‘대통령 부인’의 권리·책임·의무 규정이 없다. 이리 보면 공인, 저리 보면 사인이니 경계선에서 문제가 생길 수밖엔 없다. 이 정권 들어 “그 문제는 내게 맡겨 달라”는 대통령의 의중 따라 특별감찰관제나 제2부속실 등의 관리 시스템도 없었다. 그러니 사달이 이어진다. 2022년 6월엔 코바나컨텐츠 임직원 3명이 김 여사의 봉하마을 일정에 동행, 참배해 클릭이 몰렸다. 그중 한 명이 “무속인 같다”는 게 출발이다. 사실이 아니었지만 무슨 법사나 무속의 얘기가 끊이지 않던 탓에 대중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난 사건쯤이다. 그중 한 명은 대선 기간 논란이던 ‘개 사과’ 인스타그램을 올린 이였다.

지금껏 구설은 끊이지 않아 왔다. ‘김건희 라인’이란 인사 논란이 해외 출장의 행사 의전·홍보 등을 담당하는 대통령실 내부에서 불거져 나왔다. 김 여사가 여당 여성 의원들을 초청한 관저에선 한 영남 의원이 “오늘 온 여성 의원들은 다 공천되도록 여사께서 배려해 달라”고 농반진반 얘기를 꺼내, 관계자들이 “쉬쉬”에 애먹기도 했다. 대통령의 나토 순방 기간 중 리투아니아 언론은 김 여사가 경호원·수행원 등 16명과 나서던 중 명품 편집매장에 들른 사실을 보도, 야권의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그 두 달 뒤 재미교포 친북 목사에게 디올 백을 받은 건 아무런 변명의 여지가 없는 과오였다. 물론 불법 녹음의 덫에 경계와 긴장도 풀어졌을 터다. 하지만 유튜브에 뜬 당시 대화는 대통령 부인의 격(格)과 역할의 선(線)은 어디인지 심각한 성찰을 낳게 했다. “제가 이 자리에 있어 보니까 정치는 다 나쁘다고…” “저에 대한 관심이 끊어지면 제가 적극적으로 남북 문제에 나설 생각” “남북통일을 좀 해야 되고, 우리 목사님도 한번 크게 저랑 같이 할 일 하시고….”

내용도 잘 모르는 여사 특검법안의 ‘찬성 70%’는 바로 퍼스트레이디에 대한 국민의 스트레스 지수인 듯싶다. 늘 조마조마한 국민의 우려와 걱정을 해소해 달라는 주문이기도 하다.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할 특별감찰관제를 도입, 아예 야권이 추천하라고 하는 건 어떨까. 국가기밀 접근권을 제한한 제2부속실의 공적 울타리 안에서 여사가 떳떳하게 활동할 순 없는가. 무엇보다 디올 백 수수 만은 정중히 사과해야 옳다. 보수 진영에서조차 요즘 ‘6·29선언급 쇄신’만이 살길이라 한다. 한동훈 위원장 앞의 가장 높은 허들, ‘고양이 목 방울 달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