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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 유통 혁신하는 온라인 도매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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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춘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

김춘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

동양에서는 “백 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게 낫다”, 서양에서는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눈으로 보지 않고 물건을 거래하는 시대가 됐다. 스마트 기기를 통해 가속화된 디지털 거래의 흐름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비대면 문화가 확산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온라인쇼핑몰 거래액은 2022년 210조원으로 2017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올해 들어 지난 10월까지 이미 186조원에 이르면서 또다시 최고치를 경신할 전망이다.

농·축·수산물 부문 온라인쇼핑 거래액도 2022년 9조5000억원으로 2017년 대비 5배까지 늘어났다. 먹거리도 보지 않고 구매하는 시대가 활짝 열린 것이다.

디지털 거래 흐름에 발맞추어 세계 최초의 ‘온라인 농산물 도매시장’이 우리나라에서 문을 열었다. 시공간 제약 없이 24시간 자유로운 거래가 가능한 온라인 도매시장은 윤석열 정부에서 국정과제인 ‘농산물 유통의 디지털 혁신’으로 중점 추진한 과제이기도 하다. 온라인도매시장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의 탄생으로 생산자와 소비자들은 보다 넓은 선택지를, 유통업계는 새로운 기회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1985년 가락시장 개장으로 시작된 국내 공영 도매시장은 어지럽던 농산물 도매 거래에 질서를 만들고, 기준가격을 통한 농산물 가격 안정을 꾀했다. 그리고 이제는 공영 도매시장의 역사를 새롭게 업그레이드할 시점이다. 온라인과 농산물 도매 거래의 결합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고, 기존 오프라인 거래의 제약을 해소해줄 새로운 온라인 도매시장은 더는 유예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세계 첫 온라인 도매시장 개장
유통단계 축소로 비용 절감 가능
농산물 유통에 디지털 혁신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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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가락시장으로 몰려드는 운송 트럭들, 사람으로 북적대는 경매장은 완전히 새로운 공영 온라인 도매시장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기존 오프라인 도매시장에서는 상물일치형(商物一致形) 거래에 따라 거래가 일어날 때마다 산지-도매시장(경매장)-중도매인 점포-소비처 단계로 상품이 함께 움직이는 반면, 온라인 도매시장에서는 다양한 거래 주체 간 거래 발생 후 상품이 판매자에게서 구매자로 바로 전달되기 때문에 유통단계가 1~2단계로 축소된다.

지난해 10월부터 11월까지 2개월간 운영한 파일럿 사업에서 오프라인 도매 거래 대비 농가 수취 가격은 4.1% 상승했고, 출하·도매단계 비용은 7.4% 절감된 것으로 확인됐다. 온라인 도매시장은 농가 소득을 늘리고 유통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 외에도 유통단계 축소를 통해 물류 효율화 및 푸드 마일리지 감소를 통한 탄소 배출 저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이처럼 유통단계 축소가 가능해진 것은 거래 주체 간의 장벽을 제거했기 때문이다. 기존 오프라인 도매시장에서는 개설자의 허가를 받은 도매시장법인 혹은 공판장, 그리고 중도매인 간의 지정구역 내 거래만 가능했으나 온라인도매시장에서는 지역이나 시장 공간의 제한 없이 산지 출하조직, 유통업체, 식자재 업체, 가공업체 등 다양한 유통 주체가 직접 판·구매사로 참여하여 누구와도 자유로운 거래가 가능하다.

생산자는 기존 거래선을 유지하는 가운데 새로운 출하처를 확보할 수 있게 되어 출하 선택권이 확대되며, 구매자는 전국의 상품을 플랫폼에서 비교·구매할 수 있어 합리적 가격으로 농산물을 조달할 기회가 커진다. 게다가 24시간 언제든 원하는 시간에 상품을 올리고 구입할 수 있으니, 시간·공간·주체 3가지 제약이 사라진 것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시작이 곧 반이다. 온라인 도매시장이 반을 나아간 만큼, 나머지 절반은 업계의 관심과 참여로 채워나가야 한다. 정책적 지원을 위해 ‘농산물 온라인 도매 거래 촉진에 관한 법률’도 현재 국회에서 입법 절차가 진행 중이다.

온라인 도매시장의 성장이 유통 비용 절감으로 이어지고, 이로 인한 혜택은 모두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시장 운영자인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목표다. 앞으로 온라인 농산물 도매시장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켜 전 세계 온라인 도매시장의 표본이 되고, 대한민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농산물 유통의 디지털 혁신을 선도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춘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