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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king&Food] 신선한 재료 발효시켜 얻은 산미와 수고로움이 만든 감칠맛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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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면

북유럽·아시아 요리 결합시킨 아시안 노르딕 레스토랑 ‘마테르’


자연스러움 속 멋과 맛 지닌 음식
모든 메뉴에 직접 발효한 재료 사용
당근 요리는 인기메뉴로 자리잡아

“예전에는 그저 맛만 좋은 음식이 최고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손님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없으면 텅 빈 요리라는 걸 깨달았죠. 지금은 자연에서 뿌리를 둔 요리, 어머니의 품처럼 언제나 따뜻한 요리를 선보이는 것이 목표예요. 모든 메뉴에 직접 발효한 재료를 써서 ‘사서 고생한다’라는 말도 듣지만, 한 분이라도 더 음식을 즐길 수 있다면 바랄 것이 없습니다.”

땅 위로 얼굴을 내민 어린 당근에서 영감을 받은 ‘당근’.

땅 위로 얼굴을 내민 어린 당근에서 영감을 받은 ‘당근’.

추수 후 볏짚이 세워진 한국 가을의 논밭을 떠오르게 하는 ‘비트 크래커’

추수 후 볏짚이 세워진 한국 가을의 논밭을 떠오르게 하는 ‘비트 크래커’

시드니·덴마크서 경험한 발효 조리법에 한국적 터치를 더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개척한 ‘마테르’의 김영빈 오너 셰프. 사진 김성현

시드니·덴마크서 경험한 발효 조리법에 한국적 터치를 더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개척한 ‘마테르’의 김영빈 오너 셰프. 사진 김성현

‘힙한 감성’과 젊음의 뜨거운 열기가 살아 숨 쉬는 강남구 신사동의 압구정 로데오거리. 발 디딜 틈 없이 시끌벅적한 골목 뒤 싱그러운 녹음으로 채워진 도산공원, 마치 공원을 닮은 듯 차분하면서도 점잖고 의젓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식당이 있다. 레스토랑 ‘마테르’다. 지난해 10월 문을 연 이곳은 발효와 산미를 활용해 뻔하지 않은 요리를 선보이며 빠른 속도로 탄탄한 단골층을 모으고 있다.

문을 연 지 갓 1년이 넘었지만 미쉐린 가이드가 ‘2024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 등재를 예고할 정도로 업계 안팎에서 관심을 받고 있다. ‘마테르’의 김영빈(32) 오너 셰프는 호주 시드니 레스토랑 ‘마스터’의 오픈 멤버이자 수셰프를 거쳐 덴마크 ‘108’과 ‘노마’의 발효연구소 등에서 착실히 경력을 쌓았다. 틀에 갇혀 있지 않은 자연스러움 속에 아름다운 멋과 맛을 지닌 음식. 김영빈 셰프의 요리 철학이다.

발효 통해 나온 산미가 다양한 풍미 만들어

그런 그를 매료시킨 게 바로 북유럽 요리의 매력과 아시아 음식을 결합한 ‘아시안 노르딕’이다. 국내에서는 다소 낯선 장르였지만, 자연 그대로의 발효와 여기서 나오는 산미의 다양한 풍미는 한국인의 입맛에도 제격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시안 노르딕을 알리고 싶었던 그가 처음 선보인 곳이 와인바 ‘마인어스’다. 무겁지 않고 캐주얼한 분위기를 지향한 와인바로 손님들과 소통하며 ‘아시안 노르딕’이 누구나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장르라는 확신이 들었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바로 ‘마테르’의 문을 열었다. 대지의 어머니 혹은 자연의 어머니라는 뜻처럼 ‘마테르’의 음식들은 자연 그대로를 추구한다. 신선하고 생생한 원물과 더불어 시간이라는 마법이 빚어내는 발효의 독특한 풍미가 이곳의 가장 큰 무기이자 어디서도 쉽게 맛볼 수 없는 독창적인 매력이다.

“재료를 발효해서 산미를 찾아내고, 그 산미를 조합해서 새로운 맛과 향을 만들어내는 즐거움이 있어요. 상상만으로도 행복하고 재미있는 과정이죠. 파의 하얀색 부분만 발효하면 동치미 맛이 나거나, 산도보다 당도가 높은 딸기를 발효시키면 신기할 정도로 새콤달콤한 요거트 풍미가 나요. 콩도 발효 방법에 따라서 쿰쿰하고 무거운 된장이 아니라 아로마 틱하고 향기로운 느낌을 낼 수 있죠. 시간과 비용, 무엇보다도 많은 노력을 요하는 작업이지만 뻔하지 않은 맛을 낸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는 고기를 구울 때 사용하는 오일조차 직접 발효한 양송이로 만든 것을 고집한다. 발효한 양송이를 오일에 숙성시켜 특유의 향을 스며들게 하고, 이 오일을 고기에 코팅해 구우면 잡내는 사라지고 불향과 육향이 한층 더 진하게 표현된다고. 이처럼 오일을 시작으로 액젓, 드레싱, 콤부차 등까지 현재 그가 레스토랑에서 직접 발효해 사용하고 있는 재료만 해도 대략 50가지가 넘는다. 사소하게 여겨지는 작은 재료조차 모두 그의 손을 거치며 새롭게 태어난다.

발효 음식을 어렵게 생각하거나, 요리 속 산미를 즐기지 않는 이들에게 색다른 경험과 후회 없는 만족감을 선사하고 싶다는 김영빈 셰프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균형감을 유지하고 섬세함을 살려내는 것. 과하지 않게 누구나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음식으로 코스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먹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그의 목표다. 내년에 김 셰프는 누룩과 미소는 물론이고 액젓의 일종인 가룸(Garum)을 오징어와 관자 등으로 만드는 등 더 많은 도전을 통해 다양한 발효 음식을 선보일 계획이다.

발효와 산미를 전면에 내세운 만큼, 마테르가 선보이는 대부분의 음식에서는 기분 좋은 감칠맛과 함께 이를 살려주는 산미를 느낄 수 있다. 제철 재료가 지닌 고유한 풍미를 최대한 담아내기 위해 3개월마다 새로운 메뉴를 개발해 선보이지만, 레스토랑 오픈 초기부터 지금까지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당근’은 마테르의 간판과도 같은 요리다. 김영빈 셰프 역시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추구하는 방향이 이 요리 하나에 응축되어 있다고 말한다. 농장에 방문했을 때 땅 위로 빼꼼 얼굴을 내민 어린 당근에서 영감을 받아 개발한 메뉴라는 그의 설명 답게, 맛부터 생김새까지 ‘당근’이 가진 다양한 매력이 한데 담겨있다.

자연에서 느낀 아름다움을 접시에 담아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얇게 썰어낸 제주 흙당근의 정갈함 위로 자유롭게 자리한 헤이즐넛이다. 보는 순간, 땅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난 당근을 형상화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균일한 모양새를 자랑하는 당근은 마치 얇은 무 쌈처럼 아삭아삭 씹는 맛과 함께 새콤한 산도로 군침을 돌게 한다. 여기에 당근과는 대조적인 바삭바삭한 식감, 더불어 달콤하면서도 견과류 특유의 고소한 맛이 터져 나오는 헤이즐넛이 어우러지며 맛의 다양성과 복합성은 한층 더 풍부하게 완성된다.

달큰하고 짭짤하고, 고소한 감칠맛까지. 다양한 맛이 입 안에서 팡파르처럼 울려 퍼지는 ‘비트’ 역시 흥미롭다. 제철을 맞은 비트의 선명하고 진한 색채를 그대로 녹여낸 비트 크래커 속을 명이나물 장아찌, 본메로우, 크림치즈, 구운 비트 등으로 알차게 채워 넣었다.

김 셰프는 ‘당근’과 마찬가지로 ‘비트’ 역시 허브를 따러 농장에 가는 길, 추수를 마친 후 볏짚이 세워진 논밭을 보며 영감을 받았다고.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을에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정서를 시각적, 미각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이 요리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장독대 안에서 수분을 증발시켜 향과 맛을 응축시켜 만든 비트를 활용한 만큼, 그릇으로도 장독대를 활용하고 볏짚을 형상화한 장식으로 마무리했다. 바삭한 크래커 안과 밖 모두 비트가 들어간 덕분에 처음부터 끝까지 비트 특유의 느낌이 모난 곳 없이 길고 은은하게 유지된다. 여기에 더해 짭조름한 명이나물 장아찌와 감칠맛의 정수인 본메로우 등이 부드러운 크림치즈 속에서 균형감과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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