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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석천의 컷 cut

이순신이 “꼭 이렇게까지” 했던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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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는 정유재란이 끝나가던 1598년 겨울을 그리고 있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과 함께 왜군이 철군을 시작하자 조선 조정은 따뜻한 아랫목에서 ‘사내 정치’에 골몰했어. “전하(선조)의 노력으로 명국이 조선에 친히 와주어 승리한 전쟁”이라면서…. 삭풍이 부는 순천 앞바다에 진을 치고 있던 이순신은 한탄하지. “하나같이 전쟁 이후만을 보는구나.”

그래. 맞아. 그때 온전히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던 이는 이순신뿐이었어. 그가 지겹도록 부딪힌 물음은 단 하나였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명나라 제독 진린은 “이제 그만 왜군에게 돌아갈 길을 터주자”고 종용해. 명령을 충실히 따르던 부하도 마지막엔 “꼭 이리까지 하셔야겠느냐?”고 묻지.

컷 c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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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이 호전적인 성격이어서 물러서지 않았던 것일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결코 이 전쟁을 이렇게 끝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어. 그는 “저들을 이대로 보내면 장차 더 큰 원한들이 쌓이게 될 것”이라고 해. 전쟁을 올바로 끝내야만 하는 이유인 거지.

때로는 어떻게 끝을 맺느냐가 어떻게 시작하느냐보다 훨씬 더 중요해. 끝이 어떻게 기억되느냐에 따라 그 일의 전체 의미가 달라지잖아. 대충 끝을 내려다 계속해서 똑같은 상황 속에 끌려들어 갈 가능성이 크지. ‘빨리, 쉽게’의 유혹을 뿌리치고 올바로 끝낼 수 있어야 비로소 마침표가 찍히는 거니까.

이순신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고? 영화는 그렇지 않다고 해. 그는 “왜군을 열도 끝까지라도 쫓아서 기어이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자”고 하거든. 그래야 진짜 평화가 온다고 믿었던 거 아닐까. 그런 그에겐 자신의 죽음마저 “이제 그 정도면 되지 않았느냐?”고 묻는 것 같았을 거야.

참혹한 전쟁이 이어진 7년의 시공간에서 그의 마음은 얼마나 사무쳤을까. 이순신, 그는 참 쓸쓸하고 외로운 사람이었어.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