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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디 혐의 못 밝힌 뒤…경찰 '이선균 비공개 조사' 거부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배우 고(故) 이선균씨의 빈소가 마련되어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배우 고(故) 이선균씨의 빈소가 마련되어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배우 이선균(48)씨가 지난 27일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데 대한 후폭풍이 경찰 책임론으로 번지고 있다. 특히 사흘 전 지난 23일 마지막 조사 때 이씨의 사전 비공개 요청을 거부하고 다시 포토라인에 세우고 밤샘 조사까지 벌인 점에 대해서다. 이같은 비판에 대해 윤희근 경찰청장은 28일 “수사가 잘못돼 그런 결과가 나왔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사건의 발단인 이선균씨의 마약 투약 의혹은 지난 10월 19일 한 지역신문의 보도로 처음 제기됐다. ‘톱스타 L씨가 마약과 관련한 혐의로 내사를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다음 날인 10월 20일 이씨가 소속사를 통해 “앞으로 진행될 수 있는 수사기관의 수사 등에도 진실한 자세로 성실히 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이씨의 마약 투약 의혹이 공개됐다.

수사기관 등에 따르면 당시 인천경찰청 마약수사계는 ‘서울 강남의 한 유흥업소에서 마약 투약이 이뤄지고 있다’는 내용의 첩보를 입수해 유흥업소 실장 김모(29)씨 등을 조사하는 단계였다. “이씨와 마약을 투약했다”는 김씨의 진술에 대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씨에 대한 내사(입건 전 조사) 사실이 유출된 것이다. 이씨에 대한 통신영장(통신사실 확인자료) 신청이 법원에 기각되는 등 아무 자료도 준비되지 않는 상황에서 수사팀은 시간에 쫓겼다.

이어 10월 25일엔 아이돌 그룹 ‘빅뱅’ 멤버 지드래곤(35·본명 권지용)이 마약 투약 혐의로 입건됐다는 사실이 언론에 공개됐다. 수사 상황에 밝은 한 관계자는 “유아인씨의 마약 투약 사건은 7개월 수사 뒤에 알려졌는데 이씨 사건은 내사 단계에서 알려지면서 처음부터 삐걱거렸다”며 “마약 수사는 첫 안착이 중요한데 정보 유출이란 불안을 안고 출발하다 보니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마약 투약 혐의를 받고 있는 배우 이선균씨는 인천 남동구 인천논현경찰서에 출석해 19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 뉴스1

지난 23일 마약 투약 혐의를 받고 있는 배우 이선균씨는 인천 남동구 인천논현경찰서에 출석해 19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 뉴스1

인천경찰청 마약수사계는 10월 26일 이씨와 유흥업소 실장 김씨, 작곡가 정모(31)씨 등 10명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히는 등 수사를 이어갔지만 곧바로 난관에 봉착했다. 이씨가 10월 28일 첫 경찰 조사에서 소변에 대한 간이시약검사 결과 마약 음성 판정을 받은 데 이어 지난달 3일 모발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정밀검사에서도 마약 음성 반응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24일 추가 체모에 대한 정밀 감정 결과에서도 음성판정을 받았다.

이씨에 대한 1차(10월 28일), 2차 소환조사(11월 4일)도 각각 1~3시간의 탐색전에 그치면서 “경찰이 김씨의 진술에만 의존해 수사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경찰은 “김씨 진술 외에 포렌식 결과나 CCTV영상, 주변인 진술 등을 토대로 수사한 것(인천청 광역수사대장)”이라고 밝혔다. 이어 경찰 고위 관계자가 지난달 27일 “음성이라고 해서 여러 가지 정황상 마약을 투약한 사실이 분명한데 불기소로 송치하는 건 맞지 않다”며 수사를 계속하겠단 뜻을 밝혔다.

경찰은 지난 18일 지드래곤에 대해 아무런 혐의를 밝히지 못하고 불송치 결정을 내리면서 이선균씨 수사에서 성과를 내는 데 더 매달리게 됐다. 마약수사 경험이 많은 한 경찰 관계자는 “지드래곤 불송치란 오명을 쓴 상황에서 어떻게든 성과를 내야 하다 보니 이씨를 송치하기 위해 더 힘을 쏟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닷새 뒤인 23일 이씨에 대한 3차 조사를 진행했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이씨는 3차 조사를 앞두고 변호인을 통해 “지하주차장을 이용해 출석하면 안 되겠냐”며 비공개 소환 요청을 했다. 1·2차 소환 때 포토라인에 선 만큼 조용히 조사받고 싶다는 취지였다. 경찰은 하지만 “지하주차장 이용 시 모양새가 좋지 않으니 1·2차 조사 때처럼 (공개) 출석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고 한다. 지하주차장을 이용하더라도 조사실로 가는 동안 바깥 유리창을 통해 모습이 노출되고 취재진이 주차장 쪽으로 몰리면 안전사고 우려도 있다는 이유도 댔다는 것이다. 결국 경찰의 사실상 거부 입장에 이씨 측도 공개 소환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날 오전 10시에 시작된 3차 조사는 앞서 두 번과 달리 19시간 만인 24일 오전 5시에 마무리됐다. 장시간 조사에도 이씨는 “마약인 줄 몰랐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리고 사흘 만에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경찰의 석 달여에 걸친 장기간 수사는 구체적 물증 없이 비극으로 마무리됐다. 한 수사기관 관계자는 “3차 조사에서 장시간 예민한 부분에 대한 질의가 이뤄지다 보니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그러나 수사를 지휘한 송준섭 인천청 수사부장은 28일 기자간담회에서 “마약 혐의에 대한 조사 및 공갈 사건에 대한 추가 피해조사를 한 번에 마무리해달라는 요청이 있었고 이씨에 대한 진술을 충분히 들어주는 차원에서 장기간 조사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윤희근 경찰청창은 이씨 변호인의 3차 조사 비공개 요청을 거부한 것에 대해 “수사 관행과 공보 준칙을 이 기회에 되짚어서 문제가 있다면 보완이 필요할 것”이라면서도 “그런 수사를 비공개로 진행했다면 그걸 용납하겠나”라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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