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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급감한 한국 반도체 특허, 초격차 유지 가능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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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특허 비중 감소로 한국 반도체 산업 경쟁력 확보에 경고등이 켜졌다. 기업의 연구개발(R&D) 투자 필요성이 커지는 이유다. 사진은 지난 10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경기도 삼성전자 기흥 캠퍼스를 방문해 차세대 반도체 R&D 단지 건설 현장을 점검하는 모습. 연합뉴스

특허 비중 감소로 한국 반도체 산업 경쟁력 확보에 경고등이 켜졌다. 기업의 연구개발(R&D) 투자 필요성이 커지는 이유다. 사진은 지난 10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경기도 삼성전자 기흥 캠퍼스를 방문해 차세대 반도체 R&D 단지 건설 현장을 점검하는 모습. 연합뉴스

한국 특허 비중 20년 새 21.2%에서 2.4%로 급감

30년 전 삼성의 프랑크푸르트 선언 다시 새겨야

반도체 기술 패권 경쟁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선행 지표에 빨간불이 켜졌다. K반도체 특허 비중이 20년 사이 급감했다. 중앙일보와 대한상공회의소가 한국·미국·중국·일본·유럽연합 등 세계 5대 특허청(IP5)에 출원된 반도체 특허를 전수 분석한 결과 2003년 21.2%에 이르던 한국 비중이 지난해 2.4%로 떨어졌다. 반면에 같은 기간 미국과 중국에 출원된 반도체 특허 비중은 45.6%에서 92.9%로 급증했다. 특히 ‘반도체 굴기’에 나선 중국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이 기간 중국 비중은 14%에서 71.7%로 높아졌다.

우리의 구조적 약점은 여전했다. 한국이 인공지능(AI) 반도체에 들어가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을 선도하고 있지만, 한국 특허청에 출원된 반도체 특허 중 AI의 핵심인 시스템반도체 특허 비중은 낮았다. 경쟁국이 언제든 추격해 올 수 있다는 의미다.

경쟁국과의 반도체 기술 격차가 몇 개월에 불과한 상황이다. 특허는 후발주자가 넘볼 수 없는 초격차를 유지하는 게 핵심이다. 특허 출원 건수가 기술력을 절대적으로 반영하지는 않지만, 반도체 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 중요한 선행지표라는 점은 분명하다.

반도체 경쟁은 이미 국가 총력전이 됐다. 공급망 대란 속에 각국은 자국 내 반도체 생태계 구축과 복원에 사활을 걸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보조금과 세액공제 등 각종 지원을 통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반도체 설욕’에 나선 일본의 발 빠른 움직임도 눈여겨봐야 한다. 일본은 반도체 공장 투자 비용의 최대 50%까지 보조금을 지급하며, TSMC(파운드리 공장)와 마이크론(D램 생산라인) 등 해외 기업의 반도체 공장을 유치했다. 완공을 앞둔 TSMC 일본 공장의 대만 직원 자녀를 위해 국제학교를 옮기고 대만어 수업까지 새로 만드는 극진한 서비스를 하고 있다. 일본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업체도 대규모 투자에 나섰다. 10년 안에 일본이 한국을 제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정부와 기업 모두 긴장감을 가져야 한다. 메모리반도체의 초격차를 유지하고, 취약한 비메모리 반도체와 반도체 소재·장비 분야의 기술력 강화가 우리의 생존 전략이다. 이를 위해선 창의적인 기업가 정신과 함께 기업의 과감한 연구개발(R&D) 투자와 관련 인력 확보가 필수다. 정부도 반도체 초격차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보조금을 포함한 파격적 지원에 나서야 한다.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1993년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 다 바꾸라”고 했던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나온 지 30년이 지났다.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될 것이라며 뼈를 깎는 혁신을 주문했던 그의 메시지는 지금도 유효하다. 머뭇거리면 경쟁에서 밀리는 건 순식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