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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한슬이 소리내다

어르신들 키오스크 공포증…이런 일 없게 할 '5분 묘책'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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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박한슬 약사 출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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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당ㆍ카페 등 키오스크를 활용한 주문과 결제가 늘어나면서 고령자들이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래픽=김지윤 기자

식당ㆍ카페 등 키오스크를 활용한 주문과 결제가 늘어나면서 고령자들이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래픽=김지윤 기자

노인분들이 식당이나 카페 같은 곳에서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갈등의 원흉 중 하나가 키오스크(Kiosk)다. 노인이 이를 제대로 쓸 줄 몰라 직원들과 주문과 결제 방식을 두고 다툰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연말을 맞아 커피나 한잔하려다 현금 없는 매장에서 키오스크도 쓸 줄 모르는 사람이 된 당혹감과 모멸감이 얼마나 클까.

노인들의 키오스크 접근성 문제가 지적된 지도 이미 몇 해를 넘겼다. 디지털 기기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일컫는 ‘디지털 리터러시’라는 개념도 소개됐고, 일부 지자체에서는 노인들의 디지털 리터러시를 교육하는 복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렇지만 키오스크가 늘어나는 속도는 노인이 사용법을 배우는 속도보다 빠르다. 더구나 매장마다 키오스크 화면도 천차만별이라 특정 매장을 기준으로 배운 키오스크 사용법은 다른 곳에선 무용지물이 되기에 십상이다. 그런데 이 모든 키오스크 사용법을 언제 다 배우나.

급격한 확산에 이용 방식 갖가지

한편으로는 노인들에게 이런 짐을 떠넘기는 것도 황당한 일이다. 인건비 증가에 구인난까지 겹치자 ‘차라리 사람 대신 기계를 들이자’라고 키오스크를 도입하는 자영업자들의 마음을 모를 수는 없다. 그런데 비용 절감과 이득은 모두 가게가 누리는 상황에서, 소비자가 아둔하여 기계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식의 주장이 버젓이 이루어지는 게 타당한가? 새로운 기술도입의 책임을 소비자가 몽땅 짊어지는 요즈음이 이상한 것이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키오스크 허가제를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복잡한 인허가 과정을 거치며 폰트 크기 하나까지 제약하는 촘촘하고 까다로운 규제를 도입하자는 게 아니다. 그런 옛 방식의 규제가 아니라 새로운 방식의 규제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안전 문제로 훨씬 복잡하게 고도화됐지만, 20세기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의약품 임상시험은 명쾌한 원칙 하나만 충족하면 약을 허가받을 수 있었다. 간략히 설명하면 이런 식이다. 내가 새로운 진통제를 개발했다고 하면, 환자 100명을 모아다가 절반한테는 가짜 약을 먹이고 나머지 절반한테는 내가 개발한 진통제를 먹인다. 그리고 두 집단에서 통증이 얼마나 줄었는지를 비교해보면, 새 진통제의 약효가 확인된다는 식이다. 실제로 20세기 초반부터 진통제로 꾸준히 사용된 아스피린 같은 약의 작용 원리가 명확히 밝혀진 건 약 사용으로부터 70년이 지난 1970년대다.

노인도 5분 내 주문할 수 있어야 

작용 원리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실제로 효과만 있으면 허가해주던 시절이라 그런 게 가능했다. 이런 방식을 키오스크 허가에도 접목하면 어떨까. 키오스크에 폰트 크기를 얼마로 정해야 한다느니, 노인용 버튼을 만들라느니, 음성 안내를 추가하라느니 하는 것은 다 집어 치워버리고, 딱 하나만 확인하면 되기 때문이다. 무작위 노인 100명 정도를 불러다, 이들이 해당 키오스크를 이용해 5분 안에 원하는 메뉴를 주문할 수 있을 때만 허가해주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규제 체계에서는 생소한 개념이겠지만, 실제로 도입되고 시행된다면 기존의 일괄적인 규제 방식보다 훨씬 더 장점이 많다.

첫 번째는 규제의 복잡성이 적다는 점이다. 정부에서 허가 등을 규제하는 경우, 규정집은 해를 거듭할수록 계속 두꺼워지기 마련이다. 누군가 규제를 우회하는 편법을 쓰면 그 편법을 막는 규정을 새로 신설해야 하고, 어떤 경우엔 규제 권력 강화를 위해 관료조직이 불필요한 절차를 더 만드는 경우까지 있다. 그런데 최종 사용자인 노인 100명을 불러다 실제로 기기를 사용케 하는 방식은 규제가 더 복잡해질 여지가 적다. 어디서, 어떤 노인을 데려올지 정도만 규정하면 바뀔 부분이 크게 없기 때문이다. 그 정도 감독으로도 충분한데 세세한 규제를 할 필요가 전혀 없다.

두 번째는 사용자의 편의가 실제로 증가한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방식의 규제를 시행한다면, 정부 당국자들 혹은 자문한 교수들이 생각하기에 ‘노인이 키오스크를 이용하기 편한 방식’을 규정집에 밀어 넣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이런 조치들이 정말로 노인들의 키오스크 이용 편의성을 높일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반면에 실제로 노인 100명을 불러다 기기 사용 경험을 확인하는 건 우회로 없이 명확하게 사용 편의성을 반영하게 된다. 당사자가 직접 확인할 수 있는데, 다른 사람이 대신 짐작해서 정해줄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규정 대신 사용 편의성만 심사 

마지막으로 이런 규제가 도입되어야만 자율적인 경쟁이 가능하다. 정부가 정한 천편일률적인 규정을 따르는 식이면 모든 키오스크 사업자들이 동일한 형태의 키오스크를 만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종적인 노인의 사용 경험만을 고려하면, 그 안에서 무한한 자율성이 생긴다. 누구는 대표 메뉴 몇 가지를 첫 화면에 꺼내놓을 수도 있고, 다른 이는 한 화면에 노출되는 버튼 개수를 줄이기도 할 것이다. 정답 없는 문제에서 치열하게 노인들의 사용성을 높이기 위한 경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기업 창의성을 말살하는 규제라는 비난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저출산 고령화라는 시대적 위기를 맞이하여 저출산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의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저출산 해결도 중요한 문제는 맞지만, 공회전을 거듭하는 저출산 대책보다 더 현실적인 질문은 늘어난 노인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우할 셈이냐는 것이다. 돌봄과 의료의 위기 같은 무거운 문제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가벼운 키오스크 문제라도 해결하려 노력하는 게 순리다.

박한슬 약사 출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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