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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의 노래'로 의기투합... 마당놀이 대가 3인방의 포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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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개막하는 '세종의 노래:월인천강지곡'은 국립극장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음악극이다. 국립국악관현악단,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과 서양 오케스트라, 합창단 등 출연자만 총 281명이다. 해오름극장 무대의 중앙에서는 국립국악관현악단 단원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창극 배우들과 무용수들은 오케스트라를 빙 둘러싼 채 공연을 펼친다.

음악극 '월인천강지곡'을 함께 만든 안무 국수호, 작곡 박범훈, 연출 손진책(왼쪽부터). 삼총사는 1981년부터 현재까지 함께 마당놀이 작품을 만들어왔다. 사진은 지난 21일 서울 중구 국립극단 연습실에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 앞서 3인방이 포즈를 취하는 모습.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음악극 '월인천강지곡'을 함께 만든 안무 국수호, 작곡 박범훈, 연출 손진책(왼쪽부터). 삼총사는 1981년부터 현재까지 함께 마당놀이 작품을 만들어왔다. 사진은 지난 21일 서울 중구 국립극단 연습실에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 앞서 3인방이 포즈를 취하는 모습.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대작을 만든 3인방의 면면도 화려하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초대 단장이자 작곡가인 박범훈(75)이 음악을 만들었고, 한국 연극의 대부 손진책(76)이 연출을 맡았다. 안무는 '국립무용단 1호 남성 무용수'인 국수호(75)의 작품이다.

지난 21일 서울 중구 극립극장에서 만난 '삼총사'는 '세종의 노래:월인천강지곡'을 "종합 시어트리컬(theatrical) 콘서트"라고 소개했다. "국악기와 서양 악기, 연극과 창(唱), 한국 무용과 독창·중창·합창이 어우러진 종합 예술"이라면서다.

작품은 567년 전 세종대왕이 직접 쓴 '월인천강지곡'을 바탕으로 했다. '천 개의 강에 뜬 달'이라는 의미의 월인천강지곡은 1447년(세종 29년) 세종대왕이 먼저 떠난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한글로 직접 지은 찬불가(부처의 공덕을 기리는 노래)로, 석가모니의 전 생애를 담고 있다.

박범훈은 월인천강지곡을 서곡과 8개 악장으로 구성했다. 기악 반주는 국악기 위주로 편성하고 부족한 소리는 서양 악기로 채웠다. 그는 "작곡에 꼬박 2년이 걸렸다"며 "월인천강지곡은 가사는 남아있지만 악보는 전해지지 않는다. 가사를 잘 전달하면서 어우러지는 음악을 만드는 작업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국립국악관현악단 단원들과 국립창극단 배우들이 작곡가 박범훈의 지휘에 맞춰 '월인천강지곡'을 연습하고 있다. 사진 국립극장

국립국악관현악단 단원들과 국립창극단 배우들이 작곡가 박범훈의 지휘에 맞춰 '월인천강지곡'을 연습하고 있다. 사진 국립극장

그는 "장편의 가사로 이뤄진 곡에는 소리와 연기와 춤이 모두 필요하다"며 "작업을 하다 보니 연출·무대·미술 등 종합적인 요소를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했다. "소리를 들려주는 것으로는 모자라다. '소리를 보여주는' 공연이어야 한다"는 결심이 섰다는 것. 그렇게 '어벤저스' 3인방이 의기투합하게 됐다.

이들 삼총사는 1973년 국립극장 남산 이전 개관 때부터 함께 마당놀이를 개척한 예술 동지다. 손진책은 "함께한 세월이 길어 눈빛만 봐도 원하는 걸 안다"며 "각자 생각한 것을 꺼내 놓으면 서로 욕하기 바쁘다. 그렇게 서로 솔직할 수 있어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했다.

손진책은 연출을 맡았다. 무대·영상·조명·의상 등 '소리의 시각화'를 위한 모든 장치가 그의 손을 거친다. "600년 전 노래가 동시대 관객에게도 와 닿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그걸 위해서 "소리와 음악을 신선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해서 고안 중"이라고 했다.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등 주요 캐릭터가 조선 시대 의상을 입지 않는 것이 한 예다. 통념을 깨기 위해 현대적인 의상을 기본으로 했고, 기존 음악극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무대 효과를 풍성하게 곁들였다.

손진책은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식 총감독을 맡았고 1988년 백상예술대상 대상·작품상·연출상을 비롯해 2003년 제13회 이해랑 연극상, 2005년 제1회 허규예술상, 2011년 제22회 고운문화상 등을 받은 한국 연극계의 대부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 설치될 '월인천강지곡' 무대. 무대 중앙에 오케스트라를 두고 이를 창극 배우들과 무용수들이 빙 둘러싸는 형태다. 사진 국립극장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 설치될 '월인천강지곡' 무대. 무대 중앙에 오케스트라를 두고 이를 창극 배우들과 무용수들이 빙 둘러싸는 형태다. 사진 국립극장

안무를 맡은 국수호는 60년 경력의 춤꾼이다. 국립무용단 1호 남성 무용수를 시작으로 국립무용단 단장, 국수호디딤무용단 이사장을 지냈다.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02년 한일 월드컵 등 굵직한 행사에서 개막식 안무를 도맡아온 그에게도 이번 공연은 어려운 숙제다.

국수호는 "대형 오케스트라가 중간에 있는 무대라 무용수들의 동선과 대형을 짜기가 쉽지 않았다"면서 "무용극이 아니기 때문에 무용수만 돋보여서는 안 되고, 모든 파트가 어우러져야 한다. 화합과 사랑을 모토로 생각하고 안무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사랑을 주고받는 느낌의 안무가 많은데 관객들이 그 점을 알아봐주면 좋겠다"면서다.

'월인천강지곡'에서 국립무용단은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표현한다. 30여 명의 국립무용단원이 배우의 분신이 돼 우아하면서도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관객의 몰입을 높인다. 손진책은 "천 개의 달이 비추는 것 같은 화엄(華嚴) 세계를 만들겠다는 세종의 다짐이 월인천강지곡에 담겨 있다"며 "군주로서의 외로움, 지아비로서의 순정, 애민 정신, 통치 이념과 같은 세종의 정신세계가 모두 담긴 대작"이라고 설명했다.

가사가 중요한 작품인 만큼 작사에도 공을 들였다. 시인 박해진이 원문을 현대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을 맡았다. ‘도솔래의’는 ‘흰 코끼리 타고 오신 세존’으로, ‘쌍림열반’은 ‘세존, 열반에 들다’로 고치고 에필로그와 프롤로그를 넣어 작품의 메시지를 강조했다. 박범훈은 "노래로 부를 수 있을 만큼 쉽고 직관적이면서 철학적인 메시지도 담을 수 있도록 작사와 편곡에도 많은 시간을 썼다"고 했다.

'국악 아이돌' 김준수가 세존(석가모니), 국립창극단 간판스타 이소연이 소헌왕후 역을 맡았다. 이외에도 세종대왕 역의 김수인을 비롯해 민은경‧유태평양 등 창극단 주역 배우들이 무대에 올라 다양한 인물을 노래한다. 공연은 29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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