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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명이 일군 '성탄절 기적'…아이들 '500원 밥상' 지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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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방학 경남 창원시 진해구 '500원 식당'에서 단돈 500원에 아이들에게 제공한 소불고기덮밥과 만둣국. 사진 블라썸여좌사회적협동조합

지난 여름방학 경남 창원시 진해구 '500원 식당'에서 단돈 500원에 아이들에게 제공한 소불고기덮밥과 만둣국. 사진 블라썸여좌사회적협동조합

방학 기간 아이들에게 단돈 500원에 따뜻한 점심을 차려주는 식당이 있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 여좌천 블라썸커뮤니티센터 1층에 자리한 ‘아동·청소년을 위한 500원 식당’이다. 진해에 사는 아동·청소년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진해 블라썸커뮤니티 자리한 500원 식당 

가격은 500원이지만 차림은 인색하지 않다. 밥과 국(또는 찌개), 4가지 반찬이 기본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함박스테이크나 스파게티·돈가스 덮밥 등 별미도 나온다. 음식은 자원 봉사자들이 정성스레 만든다.

‘500원 식당’은 진해 지역 아이들에게는 이미 인기다. 방학 기간 돌봄 공백 등으로 편의점에서 라면·삼각김밥을 사 먹거나,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던 아이들의 입맛을 잡았다. 방학 기간 일주일에 월·화·목·금 4일만 운영하는데, 한 번에 50명 가까운 아이들이 찾는다.

지난 여름방학 경남 창원시 진해구 '500원 식당'에서 단돈 500원에 아이들에게 제공한 카레 정식. 사진 블라썸여좌사회적협동조합

지난 여름방학 경남 창원시 진해구 '500원 식당'에서 단돈 500원에 아이들에게 제공한 카레 정식. 사진 블라썸여좌사회적협동조합

하지만 올 겨울방학에는 하마터면 문을 열지 못 할 뻔했다. 운영비가 바닥나서다.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이웃과 시민들의 온정에 ‘500원 식당’은 다시 따뜻한 ‘밥’을 지을 수 있게 됐다.

전체 후원금 67%가 개인 기부 

24일 500원 식당을 운영하는 블라썸여좌사회적협동조합(조합)에 따르면, 현재 조합 계좌에 입금된 후원금만 약 5000만원에 달한다. 1년 운영비(여름방학 700~800만원·겨울방학 1000만원)를 훨씬 웃돈다. 전체 후원금의 67%에 달하는 약 3350만원은 230여명의 개인 기부라 의미를 더했다. 단돈 1원에서 200만원까지 금액도 다양했다. 입금자명에는 ‘응원합니다’ ‘후원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짧은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기업 후원도 뒤따랐다. ㈜로만시스가 1000만원, ㈜구구가 500만원, ㈜더유니콘이 150만원을 쾌척했다. ㈜마린로지텍은 20㎏짜리 쌀 10포대를 보내왔다. 조합은 이번에 쌓인 후원금을 바탕으로 다음 달 15일~2월 23일 사이 총 20회 동안 ‘500원 식당’ 문을 열 계획이다.

지난 여름방학 경남 창원시 진해구 '500원 식당'에서 아이들이 단돈 500원에 점심 식사를 먹고 있다. 사진 블라썸여좌사회적협동조합

지난 여름방학 경남 창원시 진해구 '500원 식당'에서 아이들이 단돈 500원에 점심 식사를 먹고 있다. 사진 블라썸여좌사회적협동조합

‘500원 식당’은 조합이 지난해 여름방학을 앞두고 처음 열었다. 경남도·창원시 ‘공유경제 활성화 지원사업’에 선정, 보조금 1000만원을 받으면서다. 그러나 지원사업은 일회성에 그쳤다. 그해 겨울엔 식당을 닫아야 했다. 당시 블라썸커뮤니티센터 2층에 있는 여좌작은도서관을 찾은 아이들은 “방학인데, 오늘은 식당 안 해요”라고 물으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다행히 올여름에는 창원행복신협이 700만원을 후원하면서 운영비를 해결할 수 있었다. 조합 측은 연말을 앞두고 곳곳에서 온정이 ‘500원 식당’으로 답지하면서 당분간 운영비 걱정은 하지 않게 됐다.

아이들 낸 500원은 ‘또 다른 기부’로

아이들에게 밥값으로 받은 500원은 다른 곳에 기부한다. ‘500원 식당 아이들’이란 이름으로다. 그간 쌓인 밥값은 초등학교 장학금(30만원)과 불우이웃돕기 성금(60만원)으로 쓰였다.

조합은 처음엔 무료로 식당을 운영했다. 하지만 혹시나 “공짜 밥을 먹는” 저소득·결손가정이란 꼬리표가 붙을 것을 염려, 500원이란 최소 금액만 받고 있다.

전수진 블라썸 조합 사무국장은 “돈을 안 받으니 아이들 1~2번 오다가 오지 않았다”며 “아이들이 오히려 ‘우리가 거지도 아닌데, 왜 그냥 밥을 줘요’라고 말하더라”고 설명했다. 이어 “‘아이들 자존심이 많이 상하겠구나’ 싶어 500원을 받기 시작했다”며 “아이들이 건강한 점심을 당당하게 먹을 수 있도록 식당을 운영하겠다. 성금 보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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