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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선 넘었다!" 연 10만명 찾는 '아트부산'의 성수동 나들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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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2012년 시작된 아트부산은 국내외에서 연 10만 명을 부산으로 불러모으는 아트페어입니다. 아트마켓도 없는 부산을 세계 유수 갤러리가 참여하는 아트페어의 도시로 만든 비결이 뭘까요? 부산 출신인 정석호 아트부산 이사는 '냉정한 자기파악'과 '진정성'이라 말합니다. 최근에는 서울로 무대를 옮겼습니다. 지난 11월 성수에서 새롭게 디자인을 주제로 '디파인 서울'이라는 프로젝트를 열었죠. 부산에서의 성공 비결을 서울에서는 어떻게 풀어냈는지, 서울로 확장한 이유는 무엇인지 정석호 이사를 만나 물었습니다.

※ 이 기사는 '성장의 경험을 나누는 콘텐트 구독 서비스' 폴인(fol:in)의 '이렇게 된 이상 서울로 간다'의 2화 중 일부입니다.

모두가 '어렵다'던 부산, 10만 명이 찾게 만든 비결

 아트부산이 열리는 5일간 부산 전체가 페어의 장이 된다. 사진 아트부산

아트부산이 열리는 5일간 부산 전체가 페어의 장이 된다. 사진 아트부산

아트부산, 이제는 연 10만 명이 찾는다고요.

처음에는 '예술계 출신도 아닌 너희는 누구냐' 이런 눈초리도 있었어요. 부산에서 아트페어를 한다고 했을 때 '부산 거기는 어렵다'는 얘기도 숱하게 들었고요.

그런데 해외 박람회에 가보면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와요. 베를린이나 뉴욕 같은 대도시가 아닌 곳에서 열리는데도요. 박람회를 중심으로 지역 전체가 축제하듯 들썩이고요. 로컬 뮤지엄과 작가, 콘텐츠가 다같이 부흥하는 거죠.

저랑 이사장님이 부산 출신인데요. ‘부산에는 왜 이런 게 없을까’ 생각했죠. 공연 하나 보려면 서울에 가야 하니까요. ‘부산에도 보여줄 거리, 문화 콘텐츠가 많은데’. 부산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 싶었어요. 일종의 문화운동처럼요. 처음부터 돈을 좇아 시작한 게 아니었어요. 그랬으면 벌써 접었겠죠.

글로벌 아트페어와 비교한다면, 아트부산의 현 위치는 어떤가요?

12년 전에 비해 브랜드파워는 분명 성장했어요. 그런데 냉정하게 보면 아트부산은 아직 K리그 1등이에요. 아트바젤이나 프리즈는 챔피언스리그에서 순위를 다투고 있죠. 국내 아트시장 규모가 올해에야 1조 원을 넘었어요. 아트바젤이 5일간 만들어내는 매출이 2조 원인데요. 숫자가 냉정한 파악을 도와줬어요. 다음 할 일이 정해졌죠. 다른 페어들과 경쟁할 게 아니라 한국 아트시장부터 키워야 한다.

어떻게 키우나요?

차별화되는 우리만의 한 끗을 찾았어요. 마침 시장에서도 차별화에 대한 니즈가 커지고 있었고요. 글로벌 아트페어 브랜드가 지역을 확장하면서 한 해에 여러 번 다른 지역에서 페어를 열거든요. 스위스에서 열리는 아트바젤 끝나고 아트바젤 홍콩, 아트바젤 마이애미가 열리죠. 바젤에 굳이 갈 필요가 없어져요. 바젤에 왔던 갤러리가 마이애미에도 올 확률이 크니까요. 페어가 점점 로컬화하는 거죠.

이러면 콘텐츠도 로컬화돼요. 콘텐츠가 줄어든다는 뜻이에요. 오는 사람이 살 만한 것으로만 채워지니까요. 그 유명한 아트바젤도, 프리즈도 진부하다는 소리를 듣기 시작하죠. 이와중에 아트부산이 아트바젤·프리즈를 똑같이 벤치마킹 한다면, 의미가 있을까요? 없죠.

그럼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요?

우리를 들여다봤어요. '부산'이 툭 튀어나오더라고요. 부산이라는 로컬 콘텐츠 자체가 차별성이었어요. 한국 하면 서울이 먼저 떠오르지만, 서울은 이미 문화생활의 총집합이에요. 프리즈와 키아프도 서울에서 열죠. 그렇다면 부산은? 해외에서 볼 때 완전 다른 특색을 가진 신선한 로컬이에요.

해운대, 기장, 광안리, 영도… 페어장 둘러보다 지쳐서 나가면 바다가 펼쳐져요. 항구와 해변, 섬과 산이 있고요. 고급 호텔뿐 아니라 로컬시장도 있어요. 아트부산을 중심으로 부산이 가진 모든 것을 총출동 시켜보자, 그래서 아트위크를 열었죠. 부산의 문화공간, 관광지, 로컬 브랜드와 협업해 아트부산 티켓으로 할인도 해주고요. 미술관과 갤러리를 순회하는 버스도 운영해요.

그래도 일반 대중들은 아직 아트페어에 대한 진입장벽을 느낍니다.

맞아요. 진입장벽이 있죠. 왠지 돈 많은 사람 아니면 못 갈 것 같고요. 페어를 즐기는 방법이 감상 아니면 구매, 두 가지밖에 없어서라고 생각해요. 전시처럼 가볍게 보러 왔다가 값비싼 작품들을 턱턱 사는 사람들을 보면 갑자기 이질감을 느끼죠. 아, 결국 손에 돈 쥔 사람만 즐길 수 있고 환영받는 곳이구나. 이런 인식이 생겨요.

즐기는 방식, 경험의 가짓수를 늘려야 한다.

콜렉터로서 다양한 아트페어에 직접 다니면서 느낀 거예요. 그래서 아트부산은 경험 설계에 공을 들였어요. 라운지 공간을 키운 게 대표적이죠. 부산이어서 가능한 시도라고 생각해요. 벡스코에서 한 아트부산 2023은 축구장 4배 정도 크기인 8000평 규모였거든요. 더 많은 갤러리에 부스를 팔 수 있다는 뜻이지만, 그렇게 안 했어요. 경험은 오래가니까요. 좁으면 빨리 나가고 싶고, 좋은 기억으로 안 남아요. 아이를 둔 어른들이라면 더 힘들 거고요. 다시 오고 싶지 않겠죠.

여기저기 편히 앉아 쉬면서 방금 본 작품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했어요. 키즈 체험을 구성해서 부모들의 편한 관람을 설계했고요. 아트숍의 퀄리티도 높였어요. 내가 피카소 그림은 못 사도 도록은 살 수 있으니까(웃음). 그 도록에는 페어의 경험이 담기겠죠.

이렇게 된 이상 서울 그 너머로 간다 

'올해 국내 1등, 관람객이 작년보다 몇 명 늘었다'는 수치는 큰 의미가 없다는 정석호 이사. 사진 폴인, 최지훈

'올해 국내 1등, 관람객이 작년보다 몇 명 늘었다'는 수치는 큰 의미가 없다는 정석호 이사. 사진 폴인, 최지훈

서울이라는 계단을 꼭 밟아야 하나요?

계단이라기보다 교차로예요. 기회가 모인 교차로요. 아트부산에 참여하는 갤러리와 파트너십 대부분이 서울에 있어요. 미팅하려면 서울로 와야 해요. 새로운 협업을 발굴하기 위해서도 서울로 와야 하고요.

테파프 마스트리히트라는 프리미엄 아트페어가 있어요. 네덜란드 남쪽 끝단에 있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열리죠. '여기에 누가 와?' 하지만 한 달간 내는 매출액만 4조 원이에요. 전세계에서 온다는 거죠. 페어기획팀은 1년 내내 이 작은 마을에서 어떻게 일하지? 하고 봤더니 11개월은 암스테르담에 있는대요. 협업 대상들과 기회가 거기 있으니까요.

살짝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어요. 우리의 모태는 부산이지만 일은 서울에서 할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죠. 핵심인 페어는 부산에서 계속 열되, 서울로 가서 기회를 더 넓히는 게 목적이었어요. 디파인 서울도 서울에서 발견한 기회고요.

어떤 기회를 발견했나요?

같은 현대미술을 다뤄도 서울에는 니치한 포인트에 초점을 맞춘 다양한 페어가 있더라고요. 2030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어반브레이크처럼 뾰족한 페어요. 서울에 와 그런 걸 접하면 저희 콘텐츠가 어떻게 뻗어나가야 할지 생각을 더해나가게 돼요. 혹은 반대로 아트부산처럼 큰 페어가 니치한 콘텐츠까지 파고드는 게 맞는가, 보다 큰 시장을 더 키워야 하는 건 아닌가. 이런 고민이 들죠. 그 결과 디자인 시장으로 가자는 판단을 하게 됐고요.

이렇게 새로운 것을 눈에 넣고, 관점을 바꾸게 하는 데 팀원 구성의 변화도 큰 몫을 했어요. 부산팀과 달리 서울팀에는 미술 전공, 갤러리 출신이 한 명도 없어요. 대기업 출신, 컨설팅이나 브랜드 디자인 경력자들로 채워졌죠. 시각이 다양해졌다는 뜻이에요.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이 우리 안에 고인 질문인가, 시장이 정말 원하는 건가를 다른 눈으로 볼 수 있게 된 거죠.

코엑스가 아닌 성수동에서 연 게 의외예요.

독일에서 유학하며 느낀 건 유럽은 도시 자체를 하나의 장으로 여긴다는 거였어요. 베를린에서 선정된 갤러리들이 일주일간 아트행사를 여는데 공식 행사장이 없어요. 갤러리 각자의 공간에서 전시를 열죠. 이때 선정 안 된 갤러리들도 저마다 전시를 해요. 슬쩍 끼는 거죠. 도시 전체가 페어장이 돼요. 도시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는 재미도 있고, 대중과 콜렉터가 뒤섞이는 매력이 있어요.

그런 매력을 가져오고 싶었어요. 그러기엔 성수동이 제격이었고요. 수제화거리도 있고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내던 동네여서 디자인페어와 잘 맞아떨어졌죠. 장소 세 곳을 거점으로 성수동을 누비면서 작품을 찾아다니는 재미를 줬어요. 거점 간 셔틀버스도 운영했는데요, 몇몇 분이 이러더라고요. "그걸 왜 타요! 걸어다니는 재미지." 저희가 의도한 콘셉트를 이해하고 즐겨주시는구나, 새로움에 대한 목마름이 컸구나를 느꼈어요.

2023년 11월 열린 '디파인 서울'. 지역 전체를 페어장처럼 구성하기 위해 성수동 일대에서 열었다. 사진 아트부산

2023년 11월 열린 '디파인 서울'. 지역 전체를 페어장처럼 구성하기 위해 성수동 일대에서 열었다. 사진 아트부산

잘하던 아트를 두고 디자인 시장으로 가자는 결정을 하게 된 이유는요.

한 해 한국에서 열리는 페어가 100개쯤 돼요. 거기에 하나 더 얹어서 101개로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그건 파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지금의 파이를 더 잘게 쪼개는 것밖에 안 되니까요. 새로운 것, 더 확장성 있는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2020년 아트부산에서 디자인을 작은 섹션으로 소개했는데요. '뭉뚱그려 하나의 콘텐츠로 소개할 게 아니라 비중있게 잘 다루면 의미 있겠다'는 피드백이 있었어요. 그래서 디자인시장을 들여다봤더니 개선해야 할 것들, 개선할 법한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예를 들어 아트는 세제 혜택이 잘 돼있지만, 그 혜택을 받으려면 '누가 봐도 미술품' 처럼 보여야 해요. 여기에서 디자인 제품은 벽에 막히기 쉽죠. 의자 디자인 제품은 '의자는 미술품이 아니다' 소리를 들으니까요. 혜택에서 제외되니 수요가 적고, 시장이 커질 수가 없죠.

이걸 해결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어요. 저희가 잘하는 것, 페어를 기획해 디자인에 대한 사람들의 장벽을 또 한번 허무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또 허물고자 하는 벽이 있나요?

부산이라는 선을 한번 넘었으니까 다음은 서울, 한국을 넘는 거요. 디파인 서울로 서울의 아트씬을 새롭게 정의해봤잖아요. 아트부산의 '부산'은 빠질 일이 없겠지만, 디파인 서울의 '서울'은 바뀔 수 있어요. 재정의(define)는 누구든 자유롭게 해볼 수 있는 거니까요. 디파인 방콕이 될 수도 있고, 디파인 런던이 될 수도 있겠죠. 지역적 확장성을 품고 네이밍했으니 다양한 선을 넘어야죠.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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