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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 살해 뒤 체코 최악 총기난사…모범생의 끔찍한 두 얼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1일(현지시간) 체코 프라하 중심부 카렐대 예술학부 건물의 난간에 무장 경찰이 서 있다. AFP=연합뉴스

21일(현지시간) 체코 프라하 중심부 카렐대 예술학부 건물의 난간에 무장 경찰이 서 있다. AFP=연합뉴스

체코의 수도 프라하의 도심 한복판에서 21일(현지시간) 대낮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나 최소 14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다쳤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다.

프라하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쯤 프라하 블타바 강에 접한 카렐대의 예술학부 건물에서 검은 옷을 입은 남성이 십여분 간 소총을 난사했다. 경찰과 대치하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범인은 이 학교 석사 과정생 다비트 코자크(24)로 밝혀졌다. 경찰은 “범인이 3시 20분쯤 심각한 부상 끝에 숨졌다”고 설명했다.

부상자 25명 가운데 10명은 중상이어서 사망자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로이터는 “총기 사고가 흔치 않은 체코에서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총격 사건이 벌어졌다”며 충격에 휩싸인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이날 X(옛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SNS)에는 카렐대 학생·교직원들이 혼비백산 대피하는 영상들이 다수 올라왔다. 코자크는 예술학부 건물 4층 내부와 바깥을 향해 총을 쐈으며, 학생들은 책상·의자 등으로 교실 문 앞에 바리케이드를 친채 공포에 떨어야 했다. 일부는 창문 밖으로 피신해 난간부를 붙든 채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모습도 포착됐다.

체코 프라하의 카렐대에서 21일 낮 3시쯤 총격 사건이 벌어지면서 학생들이 건물 꼭대기의 난간에 매달려 대피해 있다. X캡처

체코 프라하의 카렐대에서 21일 낮 3시쯤 총격 사건이 벌어지면서 학생들이 건물 꼭대기의 난간에 매달려 대피해 있다. X캡처

이 학교 학생 야콥 와이즈만은 자신의 X(옛 트위터) 계정에 “지금 학교에 갇혀 있다. 범인이 문을 열려고 해 문을 잠갔다”며 급박한 상황을 전했다. 또다른 목격자 이보 하브라네크(43)는 로이터에 ”두 번 쾅 하는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학생, 교사들이 건물 밖으로 뛰어나갔다. 사람들이 나에게 도망치라고 소리쳤다”면서 “프라하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인근 관광 명소인 루돌피눔 갤러리의 페트르 네도마 관장은 현지 언론에 “자동 화기 같은 무기를 손에 든 젊은이가 건물의 난간부에 서서 마네스푸 다리의 사람들을 골라 총을 쐈다”고 말했다. 범인 코자크는 소총에 조준경, 삼각대까지 갖춰 들고 있었다. 그가 소지한 총기는 합법적으로 등록된 것이었다.

체코의 카렐대는 1394년에 개교한 유서 깊은 국립 대학이다. 프라하 성을 강 건너편에 두고 마네스푸 다리·얀 팔라하 광장 등에 인접해 있고, 관광 명소인 카렐(카를)교와는 도보 8분 거리여서 인파가 몰리는 곳이다. 미국인 관광객 해나 말리코트는 영국 BBC에 “팔라하 광장에서 가족들과 함께 있었는데, 광장에서 약 9m 정도 떨어진 땅에 총알이 빚맞은 뒤 인근 상점에 박히는 걸 봤다”고 말했다.

한 여성이 21일 저녁(현지시간)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진 체코 프라하의 카렐대 앞에 초를 켜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한 여성이 21일 저녁(현지시간)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진 체코 프라하의 카렐대 앞에 초를 켜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다수의 희생자가 나오면서 체코는 23일을 국가 애도의 날로 선포했다. 페트르 피알라 총리는 성명을 통해 “무분별한 공격으로 너무 많은 젊은 생명이 희생됐다”면서 “이는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다”고 밝혔다.

현지 경찰은 이번 범행을 단독범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 체코 내무부는 “테러 단체의 연계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범인 코자크는 유럽사·폴란드 역사를 전공한 석사 과정생으로, 올해 5월 학사 논문이 프라하의 폴란드연구소에서 상을 받을 정도로 성과를 인정받는 학생이었다. 동종 범죄 전력도 없었다. 다만 그는 학교에서 내성적인 외톨이였다고 영국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코자크는 자신의 텔레그램 계정에 “나는 학교에서 총을 쏘고 싶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이다. 나는 항상 사람을 죽이고 싶었다”라고 쓴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러시아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들에 영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코자크는 2021년 러시아 동부 카잔의 한 학교에 난입해 9명을 총으로 살해한 일나스 갈랴비예프(19)를 언급하며 “일나스를 통해 나는 연쇄 살인보다 대량 살상이 훨씬 가성비가 낫다는 걸 깨달았다”고 적었다.

이달 초 러시아 브랸스크에서 알리나 아파나스키나(14)가 아버지의 산탄총을 학교에 들고 와 동급생 1명을 쏘고 5명을 다치게 한 사건에 대해서도 “마치 알리나가 하늘에서 나를 도우러 온 것 같다”고 적었다.

결국 그는 이날 오전 프라하에서 13마일(약 20.9㎞) 떨어진 고향 호스토운의 집에서 아버지를 총으로 살해한 뒤 프라하로 이동했다. 이번 사건과 별개로 경찰은 최근 프라하 인근 숲에서 부녀가 사망한 사건도 코자크가 벌인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유럽 국가들 가운데 체코에서는 총기 범죄가 상대적으로 드문 편이다. 앞서 2019년 체코 동부 오스트라바의 병원에서 한 남성이 6명을 총으로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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