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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중국 축구대표팀은 왜 해삼찜을 먹었을까?

중앙일보

입력

해삼은 바다에서 나오는 인삼이라는 뜻으로 중국 전통적으로 최고의 기력보충 음식 중 하나다.

해삼은 바다에서 나오는 인삼이라는 뜻으로 중국 전통적으로 최고의 기력보충 음식 중 하나다.

얼마 전 중국 국가대표 축구팀과 관련해 뜬금없는 해삼 논쟁이 벌어졌다. 대표팀 평가전과 항저우 아시안게임, 북중미 월드컵 예선전 등등 일련의 축구 경기가 펼쳐졌고, 일부 중국 축구 팬들은 경기 결과가 기대에 못 미쳤는지 자국팀에 대해 비난을 퍼부었다.

이 과정에서 중국 대표팀의 한 선수가 억울했는지 우리도 합숙할 때 해삼을 먹으며 열심히 훈련했다고 투덜거렸고 팬들은 그런 사치스러운 요리를 먹으면서도 졸전을 펼쳤으니 해삼이 아깝다며 반발했다.

인터넷을 비롯한 소셜 미디어에 보이는 중국 축구대표팀의 해삼 논쟁인데 이를 본 외국의 반응이 뜨악했다. 한 마디로 축구경기에 해삼이 왜 나오냐는 것인데 중국에서는 해삼을 먹으며 체력을 보충하냐는 물음이 적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중국에서 해삼, 특히 말린 해삼은 전통적으로 최고의 기력보충 음식 중 하나다. 무심코 넘어가기 쉽지만 사실 해삼(海蔘)이라는 이름 자체가 보통이 아니다. 바다에서 나오는 인삼이라는 뜻이다. 명나라 문헌인 『오잡조』와 『본초강목』 등에 해삼은 성질이 따뜻하고 몸의 기운을 보충해주는 것이 인삼과 버금가기에 바다에서 나는 인심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설명이 나온다.

해남자(海男子)라는 별칭도 있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바다 남자, 그러니까 바다 사나이라는 뜻이다. 별명에서부터 벌써 울퉁불퉁한 근육질 몸매에 거친 이미지가 느껴진다. 웃통 벗어제낀 상남자가 도끼 한 자루 들고 몸통만 한 통나무를 단번에 두쪽으로 갈라 패며 “마님~”을 외칠 것 같다.

오돌도돌 돌기가 돋은 해삼의 모양새 때문에 생긴 별명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옛사람들은 해삼을 먹으면 정력이 불끈 솟고 기운이 넘친다며 최고의 강장제로 꼽았다. 한의서를 비롯한 고문헌뿐만 아니라 현대 영양학도 마찬가지다. 해삼에는 단백질과 칼슘, 철분 요오드 성분이 많아 식욕을 돋우고 신진대사를 촉진하며 특히 심장을 튼튼하게 할 뿐만 아니라 피부와 혈관의 노화를 막아 동맥경화 예방에도 좋다고 한다. 중국 축구선수가 해삼을 먹으며 체력 보충을 했다고 말한 배경에는 해삼에 대한 중국의 전통적인 인식이 깃들어 있다.

해삼으로 기력보충한다는 말도 낯설지만 우리 운동선수가 홍삼 먹는 것처럼 중국 축구선수가 해삼 좀 먹었기로서니 ‘사치’ 운운하며 해삼이 아깝다고 비난을 퍼붓는 것도 선뜻 이해는 가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중국에서 해삼요리, 특히 말린 해삼요리는 단순한 강장음식 정도가 아니다. 

훨씬 고급스러운 요리다. 그렇기에 실력에 비해 과도한 연봉을 받는다는 평가처럼 기력보충을 위해 해삼을 먹었다는 말은 도를 넘는 음식 호사를 누린 것이고, 그래서 해삼이 아깝다고 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해삼 요리가 차려진 연회를 특별히 해삼석(海蔘席)이라고 부른다. 요리 전체가 해삼으로 차려진 것도 아니라 메인요리가 해삼이면 곧 해삼석이니 중국인이 해삼을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를 알 수 있다. 실제로 청나라 때 요리책 『수원식단』에서는 해삼을 최고 음식 재료로 꼽았으니 따지고 보면 해삼은 흔히 알려진 제비집, 상어 지느러미 샥스핀 등과 함께 최고의 자리를 놓고 다투었던 식재료다.

삼면이 바다여서 해삼을 그렇게까지 귀하게 여기지는 않았던 우리한테는 다소 의외지만 바다가 먼 중국에서 해삼은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여덟 가지 산해진미, 즉 팔진미(八珍味) 중의 하나였다. 팔진미는 보통은 곰 발바닥, 낙타 등, 사슴 꼬리, 바다제비 집, 상어 지느러미, 그리고 해삼, 시어라는 물고기, 생선 입술 등을 꼽았는데 대부분 멸종됐거나 지금은 식용을 금지 내지 제한하는 것들이니 해삼이야말로 마지막 남은 산해진미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해삼 중에서도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지금의 산둥성 옌타이의 펑라이(蓬萊) 해삼을 최고로 꼽았다. 해삼이 귀했던데다 산둥성 해삼을 최고로 여겼던 때문인지 해삼 요리는 공자 가문의 요리, 즉 공부채(孔府菜)의 대표 요리 중 하나였다. 공부채는 공자 가문에서 황제를 접대할 때, 그리고 손님을 대접할 때 차렸던 요리로 잔치 음식이면서 나중에는 궁중요리의 성격으로 발전한다.

공자 가문을 대표하는 해삼 요리에도 종류가 여럿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유명한 것이 펑라이 해삼으로 만든 총소해삼(蔥燒海蔘), 대파 해삼찜이다. 예전 중국의 국빈 만찬 때 심심치 않게 등장했던 요리인데 명나라 때부터 황제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마지막 남은 산해진미, 명청시대 궁중요리, 공자 가문의 특별 진미 등등 그러고 보니 옛날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인의 해삼 사랑은 각별했다. 뒤집어 보면 중국인의 무의식 속에 해삼요리는 아무나 먹지 못하는 산해진미이고 사치스런 요리의 대명사격으로 꼽히는 음식이다. 그런데 합숙훈련 중 다른 음식도 아닌 이런 해삼 요리를 먹으며 체력을 보충했다면서 중국 축구 팬의 기대에 못 미치는 졸전을 벌였으니 실망한 중국 축구 팬 입장에서는 이래저래 열 받을 만도 했을 것이다.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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