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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총선 앞 봇물 터진 금융 포퓰리즘에 경제 원칙 무너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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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주식 부자 양도세 감면, 자영업자 이자 환급 등

총선 겨냥한 선심성 조치, 더는 선 넘지 말아야

정부가 상장 주식에 대해 양도세를 물리는 ‘대주주’ 기준을 ‘종목당 10억원 이상 보유’에서 ‘50억원 이상 보유’로 크게 높인다. 현재는 특정 종목당 10억원 이상, 또는 일정 지분(코스피 1%, 코스닥 2%, 코넥스 4%) 이상을 보유하면 대주주로 간주해 20~25%의 양도세를 물린다. 2021년 기준 10억원 이상 주식 보유자 가운데 주식 양도세를 신고한 인원은 약 7000명이다. 주식투자 인구 1400만 명의 0.05%에 불과하다. 주식시장의 소수 ‘큰손’들에게 직접 혜택이 있다는 점에서 ‘부자 감세’란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물론 그동안 주식 부자들이 대주주 지정을 피하기 위해 연말이면 주식을 대거 매각하고, 이로 인해 주가가 하락해 ‘개미 투자자’들이 손해를 보는 일이 반복되곤 했다. 그러나 이는 과세 회피를 위한 일시적 현상이라는 게 증권가의 정설이었다. 주식 부자들은 연초에 다시 주식 매집에 나서기 때문이다. 정부는 불과 10여 일 전 대주주 기준 상향에 대해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지 않다”(추경호 경제부총리)고 했던 말을 뒤집었다. 이러니 정부에 대한 신뢰가 생길 수 있는가.

이번 조치는 무엇보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을 물린다는 조세 원칙을 도외시하는 것이다. 역대 정부는 진보·보수 정권 가리지 않고 양도세 기준을 낮춰 왔다. 2000년만 해도 ‘종목당 100억원 이상’이었던 대주주 기준은 2019년 ‘10억원 이상’으로 정해지기까지 일관되게 하향 조정을 거치며 과세 대상을 넓혀 왔다. 주식을 사고팔아 번 이익에 대한 과세가 조세 형평성을 높인다는 보편적 인식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어려운 세수 상황은 더 곤란해지게 됐다. 주식 부자의 양도세 완화에 따른 세수 감소 규모는 야당 추산 최소 7000억원이라고 한다. 결국 이번 조치는 지난달 글로벌 스탠더드를 거슬러 내놓은 공매도 전면금지에 이은 또 하나의 ‘금융 포퓰리즘’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날 은행권은 자영업자 187만 명에게 평균 85만원, 최대 300만원의 이자를 돌려주는 ‘민생 금융지원 방안’도 발표했다. 총 지원 규모는 2조원으로 은행권 당기순이익의 약 10%다. 야당이 입법 발의한 횡재세로 거두는 금액과 비슷하다. 정부는 은행 자율이란 점을 강조하지만, 감독 당국의 공공연한 압력이 있었다는 측면에서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지만, 환급 시기가 내년 2~3월로 총선 직전이라는 점도 개운치 않다. 일각에선 교묘한 선거용 현금 살포에 은행권이 동원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세금을 감면해 주가를 띄우고, 금융권에 완력을 행사해 이익을 토해내게 하는 것을 시장경제 원칙에 부합한다고 할 수는 없다. 포퓰리즘은 결국 경제를 골병들게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