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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동훈 장관의 부적절한 언행, 비대위원장 잘할 수 있을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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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호불호 강한 공격 스타일 여전, ‘야당 무시’ 논란

여당 리더 책무는 외연 확장, 말하기 앞서 듣기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기용설이 도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야당을 겨냥해 지나치게 거칠거나 정제되지 않은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팩트와 논리에 기반한 직설적 단문으로 상대방을 저격하는 쾌도난마식 화법이 여권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될 것이란 분석도 있긴 하다. 하지만 받아치는 데 능한 것을 넘어 아무런 여백과 여운도 없이 상대방을 무시하고 몰아치는 인상을 주는 한 장관의 직설이 정치화법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 장관은 그제 국회 법사위에서 자신의 거취를 묻는 김영배 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혼자 궁금해 하시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논란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엔 “(민주당이) 이걸 물어보면 왜 내가 곤란할 거라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민주당이야말로 이재명 대표 옹호에 바쁘니 나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 건가”라고 받아쳤다. ‘암컷’ 발언으로 논란이 된 최강욱 전 민주당 의원의 “이게 민주주의다, 멍청아” 주장에 대해서도 “이게 민주당이다, 멍청아. 이렇게 하는 게 국민들이 더 잘 이해하실 것 같다”고 했다.

한 장관의 발언은 민주당 의원들의 막말이나 인신공격성 공세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들이다. 하지만 상대의 잘못을 같은 방식으로 되받는 것은 책임 있는 고위 공직자의 자세가 아니다. 더욱이 한 장관은 집권당 비상대책위원장에 1순위로 거론되고 있지 않나. 총선 정국에서 외연을 확장하고 중도층의 지지를 얻어내는 게 집권당 비대위원장의 핵심 책무다. 한 장관이 ‘자신감을 갖고 상대를 깔아뭉개는’ 식의 화법만을 고수한다면 비대위원장으로 성공을 거두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정치의 알파요 오메가는 말이다. 감정의 배설이나 상대방에 대한 조롱식의 말만으론 정치의 본질인 타협은 실종되고 소모적인 정쟁 프레임이 판치게 된다. 비아냥식 화법은 상대에게 모멸감을 안기고, 자기 편 강성 지지층을 일시에 결집시킬 수 있을진 몰라도 대다수 국민의 혐오를 초래해 결국에는 소탐대실을 부를 뿐이다.

게다가 한 장관은 정치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데다 검찰 출신으로 상명하복의 조직문화 속에서 21년을 보낸 사람이다. 안 그래도 설득과 공감이 필수인 정치화법에 익숙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이라 비대위원장이 될 경우 김건희 여사 특검 거부권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 공세에 시달릴 것은 불문가지다. 말 한마디에 천근의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는 게 여당의 리더다. 그런 만큼 한 장관은 앞으로 입을 열기에 앞서 귀를 세우고, 자신의 입장에 앞서 상대방 입장을 경청하며 역지사지로 배려하는 자세가 절실하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비대위원장 자리는 맡지 않는 게 더 현명할 것이다.